하버드 중국사 송 - 유교 원칙의 시대 하버드 중국사
디터 쿤 지음, 육정임 옮김 / 너머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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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즐겨 있지만, 개인적으로 역사를 전공해서 그런 진 몰라도 역사서 특히 이번에 읽은 하버드 중국사 같은 개론서 스타일의 역사책은 술술 읽히는 편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태사공 선생의 <사기>를 비롯해서 중국사에 관심을 많아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다 보니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시너지 효과가 생긴 모양이다. 서구 학자로 중국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책도 컬렉션하고 있는 중인데, 최근 서구 역사가들이 통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미시사적 차원에서 역사연구를 인도해 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독일 출신의 역사학자 디터 쿤 교수는 정통사 차원의 정치사와 사회경제사를 적절하게 잘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왕조마다 다른 연구자들이 저술해서 기존에 나온 청나라시대와 원명제국에 대한 기술은 또 어떨지 기대가 된다. 사실 작년에 하버드 중국사 청제국편을 사긴 했지만 지금까지 묵혀 두고 있었는데 왠지 왕조사를 역순으로 가기 보다는 차례대로 읽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서론이 길었다. 저자는 <송 유교 원칙의 시대>에서 천 년 전(자그마치 밀레니엄이로구나) 당말의 혼란기를 거쳐 오대십국 시절의 분열을 통일한 송제국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오대시절 중원의 마지막 패자였던 후주의 장군이었던 조광윤은 동료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중원을 차지한 왕국이 통일에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비록 무인 출신이긴 했지만, 제국의 영속적인 통치를 위해 당말 절도사들의 발호와 전횡을 똑똑히 목격했던 송 태조 조광윤은 사대부 엘리트에 의한 문치주의를 국시로 삼게 된다. 이를 위해 비교적 공정한 관료 선발을 위한 시스템이었던 과거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당나라 시대처럼 국가의 최고통치자는 황제였지만 제국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출중한 역량을 갖춘 사대부야말로 최고의 국정 파트너가 아닐 수 없었다. 지배층이었던 사대부 역시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정이 정호 형제와 주희로 대변되는 유교 철학자들은 한나라 시대 이래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유효했던 유학을 개조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신유학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신유학의 합리주의 정신과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사대부 엘리트들이 국정의 전반에 진출하게 되면서 당대까지 지속된 문벌귀족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 당나라가 세계적인 대제국을 이뤘다면 상대적으로 송나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화제국의 원형을 형성했다. 건국 초기부터 북방의 오랑캐인 거란족의 요나라와 여진족의 금나라 그리고 서방의 당항족의 서하 등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송나라는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적국에게 세폐를 제공하며 평화와 균형정책을 추구했다. 사실 북방민족에 비해 전쟁 수행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중화제국 송나라가 막대한 전쟁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신유학자들이라면 치를 떨 화이론을 압도했을 것이다. 사실 전쟁으로 오랑캐를 복속시키겠다는 일부의 주장은 이상론이었을 뿐이다. 북송 중기 신종 시대의 왕안석이 모두가 아는 신법으로 국가중흥을 시도했지만, 보수반동파의 역공으로 그가 추진하던 개혁들이 모두 엎어지면서 결국 북쪽 여진족의 남하로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양자강 남쪽의 항주(임안)로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디터 쿤 교수는 상대적으로 정치사보다 나머지 사회경제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송제국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들을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송대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신유학이었지만, 사회의 많은 부분에 불교와 도교가 침투해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완고한 성리학자들처럼 송대 신유학자들은 불교나 도교를 탄압하려고 했던 것 같지 않다. 상대성을 인정하고 북방민족들과의 그것처럼 공존을 선택했다고나 할까.

 

저자는 종래의 정사(正史)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과 풍속도, 회화 등의 다양한 자료를 통해 송대 역사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시도한다. 중원 중심에 자리 잡은 송나라 수도 개봉은 당나라 시대의 장안과는 달리 천자의 권위나 세계제국의 수도로서의 위용보다는 철저하게 계획된 수도로서 제국 신민의 경제적 효용 가치를 따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제국 수도 입안자들이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겠지만, 사방이 트인 평원에 위치했다는 방위상의 약점보다는 변하를 이용한 물산의 집결과 교역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했다는 장점을 중시했던 걸까. 방적기와 농업기술의 발달, 자작농의 활성화 등의 조건으로 제국의 재정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비록 막대한 세폐를 오랑캐 제국에 바치기는 했지만 그렇게 돈으로 산 태평성세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송나라 재정은 튼튼했다는 것이 저자 관찰의 핵심이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았던 11세기 송나라의 수도 개봉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정치의 영역을 뛰어넘는 경제활동 중심지로서의 경제수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개봉의 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화들이 거래되었고, 이러한 상업의 발전이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파악한 송대 관료들은 상품의 지불과 용역의 교환에 더 용이한 지폐나 태환이 가능한 어음 발행에 열성적이었다. 아울러 지폐와 화폐 주조에 따른 인플레이션 관리에도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국가에 충성한다는 신유학에 충실한 신유학 관료들의 사고방식은 그들의 사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금은 제기보다는 검소하면서도 실용적이고 뛰어난 미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었던 자기들을 송대 사대부들은 선호했다. 늘어난 경제력은 소비경제의 선순환을 촉진했고, 다양한 상인 조합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정치, 사 회 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사대부들은 당대의 환영을 쫓던 화려함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적이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예술을 추구했다.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사대부들의 긍정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상류 계층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서 사회 전반에 대유행하게 된 금련이라 불리는 전족 풍습은 당대에 말을 타고 격구를 할 정도로 활동적이었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남성에 예속시키기에 이르렀다.

 

디터 쿤 교수는 중화제국이었던 송나라 뿐 아니라 주변국가였던 요나라와 금나라 그리고 몽골의 풍습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서술을 이어간다. 다만 아무래도 기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중심 주제인 송나라에 비해 빈약한 건 어쩔 수가 없다. 거시사적 차원에서의 세법 문제라던가 신유학이 도입된 이래 사회전반에 걸친 인식의 변화 같은 이슈도 그렇지만, 몇몇 그림을 통해 드러난 보통 사람들의 미시적 삶을 다룬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강행초설도>에 나온 어부들의 고투에 대한 스케치를 비롯해서, 개봉 황궁에 설치된 천문 시계 장치 <수운의상대>의 기구한 운명, 개봉의 다양한 주루와 물레방아 그리고 변하의 수로를 오가는 대형 바지선들에 대한 분석은 역시 미시적 차원의 접근을 어떻게 디터 쿤 교수가 보여주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생각된다.

 

21세기에 천년도 더 지난 중국 역사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이웃 중국은 이제 대국굴기의 시대에 들어서 있다. 현재 중국은 아편전쟁 이래, 서양 열강의 침탈에 시달리던 굴욕의 시기를 벗어나 다시 한 번 세계의 중심(중화)이 되어 일로일대(신 실크로드 전략)에 매진하고 있다. 어쩌면 가깝지만 먼 이웃인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중국 원형의 모델이었던 송나라 역사를 읽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사회질서의 원천인 유교 원칙을 형성한 시대의 역사를 접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6권으로 구성된 하버드 중국사의 첫 도전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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