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을 읽었다. 시대적 배경은 1962년, 미국과 쿠바 사이의 미사일 위기가 한참 고조되던 크리스마스 즈음의 주인공 조지의 하루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은 서던 캘리포니아인가 보다. 겨울의 캘리포니아는 어떤 분위기일까. 주인공 조지는 올해 58세로(정확하게 1904년생인 크리스 아이셔우드와 동갑이다) 인근 주립대학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동성 파트너인 짐이 고향 오하이오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아침잠에서 깬 조지는 일상의 조지가 되기 위한 의례적인 준비에 나선다. 한 때 보헤미안 유토피아라고 불렸던 자신의 거처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이웃의 스트렁크 부인은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정중한 이웃이 그렇듯 내색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동물을 사랑하던 짐이 죽고 나자, 조지는 짐의 애완동물들을 하나씩 처분한다. 추억 혹은 기억 지우기에 나섰다고나 할까. 소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지의 심리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지구 종말론적 미사일 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물건사재기에 나서고, 방공호 구축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자신이 확보한 물자와 가족이 들어가 살아남을 방공호를 지키기 위해 자동소총을 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거란 조지의 예언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마친 조지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를 타고 자신의 일터인 샌토마스 주립 대학교로 향한다. 한때 전 세계 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한 미국식 속도와 캘리포니아 미국인들의 삶을 규정해 버린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 중년남자는 만끽한다. 그렇게 거의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차를 운전해서 학교에 도착한 조지는 벌거벗다시피 하고 테니스를 치는 젊은이들에게 알듯말듯한 눈길을 보낸다. 개인적으로 크리스 아이셔우드가 쓴 이 소설 내용 중에 그의 신성한 일과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After Many a Summer(1939)>에 대한 강의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솔직담백한 조지의 감정에 대한 서술도 인상적이었지만, 교수와 학생 간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강의실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마치 그 강의를 현장에서 듯고 있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에서 배우는 강의가 돈 버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내용의 조지가 한 모놀로그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 대학에서 진행 중인 구조조정을 예언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이비’(사이버가 아니다) 대학교육의 진실을 관통한다.

 

교수식당에서 미국식 패스트 식사와 동료 교수들과 짧은 대담을 마친 조지는 한 때 연적이자 지금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도리스를 방문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현장에서 그의 방문은 무채색처럼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체육관에 들러 십대소년 웹스터와 윗몸일으키기 경쟁을 하며 기분전환을 하기도 한다. 근육질의 남성성이야말로 그가 추구해야 하는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아침에 거절했던 같은 영국 출신의 이방인이자 싱글맘 샬럿의 초대를 다시 받아들인다.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패션디자이너 출신의 톰 포드가 2009년에 동명의 타이틀로 연출했다고 하는데, 과연 톰 포드가 샬럿의 집안과 그녀가 입고 있던 요란스러운 복장을 어떻게 영상화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아침에는 거절했던 샬럿의 초대를 다시 받아들여 파트너를 상실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이기적인 사악한 계산(vicious calculation)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오갈 데 없는 두 외로운 영혼의 의기투합으로 봐주어야 하나. 그렇게 인간의 관계란 복잡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말이다.

 

샬럿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현명하게 마무리한 조지는 한 잔 더 하러 인근 바에 들렀다 자신의 제자 케니 포터를 만나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이는 밤수영에 나선다. 내가 짧은 영화 트레일러에서 본 물 속에 잠긴 콜린 퍼스의 모습이 아마 이 장면을 형상화한 게 아닐까. 상황을 모르고 봤을 때는 약간 무섭기까지 했는데, 소설을 읽어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물에 흠뻑 젖은 케니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그와 그의 애인 로이스 야마구치에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제안하며 스스로를 추잡한 늙은이라며 은근한 유혹을 이어간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소설 <싱글맨>의 전개는 놀랍다. 주인공 조지의 마지막 하루의 동선을 쫓아가는 동안, 독자들은 크리스 아이셔우드가 인도하는 대로 그의 일생을 더듬게 된다. 주인공이 가진 고민과 갈등 그리고 삶을 대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말 섬세한 부분들이 대가의 기교로 독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것이다. 문제는 번역이다. 누가 말한 대로 번역을 하랬더니, 소설을 썼냐 정도는 아니지만 다름이 아닌 틀림의 번역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때마침 원서를 구해 비교대조해 가며 읽었는데, 많은 부분이 틀렸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시제는 물론이고, 역자의 임의적인 해석이 의심되는 부분은 어김없이 원서와 틀렸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번역한 걸까, 알 수 없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소설 <싱글맨>이 가진 장점들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는다. 상실의 시대를 사는 개인이 가진 고민들, 타인과의 관계 설정, 내 삶과 감정에 충실한 기술 등은 정말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품고 있다. 12월이 되면 어떻게 한 해가 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음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런 분주함 가운데 이런 걸작을 놓치지 않고 만나게 되어 반가울 따름이다. 이게 다 <베를린 이야기> 덕분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 이제 영화 <싱글맨>을 감상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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