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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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마사의 향취에 흠뻑 빠졌었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 음모 그리고 전쟁을 배경으로 한 로마의 역사는 하나의 텍스트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한때 역사학도였던 독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책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12년 전에 “SPQR”의 도시 로마를 방문했다. 시오노 나나미와 <마스터 오브 로마>의 저자 콜린 매컬로 모두가 찬양해 마지않는 진정한 로마의 일인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열변을 토하던 포로 로마노를 둘러보고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 이천년 전의 치열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뜨거운 오후를 보냈었다.

 

우리에게는 <가시나무새>로 더 알려진 콜린 매컬로 작가의 <마스터 오브 로마> 시리즈는 자그마치 사반세기에 걸쳐 출간된 역작이다. 400백년 가까이 진행된 공화국 로마 말기에서 내전기를 거쳐 제정 초기에 이르는 백여 년간의 격동의 시기가 <마스터 오브 로마>에서 다뤄지고 있다. 원로원이라는 과두정 시스템으로 지속돼온 공화정은 지속적인 팍스 로마나 정책으로 로마의 영역이 전 지중해를 거쳐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에까지 도달하게 되면서, 좀 더 효과적이면서 능률적인 통치 시스템으로 탈바꿈할 시대적 요청에 직면하게 됐다. 하지만 전통과 법률을 중시하는 공화정 로마의 유력한 네 개의 가문을 중심으로 구성된 원로원의 보수적인 인사들은 일련의 진보개혁적인 시도에 생래적 거부감을 표시해왔다. <로마의 일인자>의 전 시대에 그라쿠스 형제에 의해 시도된 일단의 개혁들은 그렇게 좌절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로마의 일인자에 도전하는 로마인이라기보다 이탈리아인에 더 가까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바로 개혁전도사의 입장에서 로마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된다.

 

군 출신으로 산전수전 모두 경험한 라티움 출신의 마리우스는 재무관을 역임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집정관(consul)의 대좌에 도전하고 싶지만, 공화정 로마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집정관에 도전할 수 있는 충분한 지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출에 도전하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부족한 점을 메워줄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을 가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해서 정략결혼을 통해 상부상조하기로 합의한다. 고위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카이사르는 자신의 장녀 율리아와 사십이 훨씬 넘은 마리우스를 결혼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이 훗날 로마의 진정한 프린켑스가 되는 손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미래를 결정했을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콜린 매컬로는 마리우스와는 반대로 유력한 코르넬리우스 집안의 술라를 등장시킨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술라는 파락호 뺨치는 캐릭터로 등장해서 의붓어머니와 그녀의 정부 그리고 동성애까지도 서슴지 않는 그야말로 에피쿠로스 철학의 철저한 신봉자로 살아온 경력을 자랑한다. 나이 삼십에 되어서야 비로소 로마 정계의 발을 들이게 된 이 정치신인은 행운아(felix)라는 별명답게 부유한 두 명의 여인에게서 물려받은 상속재산과 마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카이사르 집안의 사위가 되면서 로마의 일인자 자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2,000년 로마 역사를 기술했다면, 콜린 매컬로는 좀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로마 역사상 가장 멋진 영웅들이 등장해서 패권경쟁을 벌이는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으로 이행되는 기원전 1세기에 관심의 방점을 찍고 있다. 전자가 좀 더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을 했다면, 콜린 매컬로는 시력을 잃을 정도로 방대한 독서와 자료 조사를 통해 정밀하면서도 개연성 짙은 팩션을 만들어 내는데 정성을 다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던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마스터 오브 로마>와 <로마인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가 의도한 서사 구조와 내러티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온전하게 독자의 몫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을 읽을 적에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던 수동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천년 전 역사의 빈 공간을 채우는 상상력이라는 멋진 요소를 가미해서 새롭게 탄생한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 오브 로마>는 몇 가지 면에서 비교우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시오노 나나미가 정치적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면 콜린 매컬로는 로마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그런 정치사적 사건들을 뛰어 넘어 로마 민중들의 삶에 자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라티움 출신의 무장 마리우스가 카이사르 저택에 초대되어 만찬을 즐기는 장면을 보자. 콜린 매컬로의 묘사는 바로 우리 앞에 차려진 검소하면서도 정성껏 준비된 진수성찬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글쓰기로 독자를 현혹한다. 그 장면을 읽는 순간,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의 이부형제 보밀카르가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로마의 서민 아파트 지역인 수부라에 잠입해서 자객을 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뉴욕 대표적인 우범지대 할렘의 바에서 킬러를 찾는 격이라고나 할까. 콜린 매컬로가 직접 당대 로마의 지도를 그릴 정도로 미로 같은 로마의 뒷골목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할 정도가 아닌가. 무시로 등장하는 팩션 속 로마 여인네들의 복식은 물론이고, 원로원 의원의 토가 자락에 대한 묘사에도 작가의 내공이 담뿍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작가의 역사의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미 알려진 역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사후에 선언하는 방식이라면, 콜린 매컬로는 주요 인물간의 유의미한 대화라는 소설 특유의 방법을 동원해서 독자를 설득한다. 누미디아 전쟁에 나선 똥돼지 메텔루스의 무능함과 이기심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면서 동시에 한 때 유구르타와 전우였던 마리우스의 전쟁판을 읽는 판세분석과 정치적 감각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식견을 칭송한다. 마리우스가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개혁법과 17세 미만 청년들의 군역을 면제하는 법안 그리고 언제나 로마군단과 함께 참전하면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는 속주병들에 대한 처우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명확하게 지적한다. 이런 식으로 보통의 로마 인민과 동맹인 이탈리아 사람들을 계속해서 차별대우하게 되면, 로마가 지금까지 이룩한 팍스 로마나라는 공동운명체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경고는 향후 전개될 로마의 정치 시스템 선택투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책의 말미에 마리우스의 미래 정치구상을 본 술라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유능한 지도자가 기득권 세력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는 작가의 서술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콜린 매컬로가 공들여 설계한 개연성을 뛰어넘는 핍진성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 역사만으로는 팩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수로 이천년 전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수반한 개연성 넘치는, 그야말로 생선회처럼 팔팔 뛰는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가공된 것으로 보이는 술라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율릴라와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역시 시중에 떠돌던 소문을 픽업해서 창조된 것으로 보이는 술라의 미소년 애인 메트로비오스에 대한 이야기, 술라가 펠릭스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음의 천사’와 자해까지 무릅써 가면서 의붓어머니 죽음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부분들은 기존의 미스터리물들의 성과를 뛰어넘는 설정으로 보인다(정통 역사가의 기준에서 본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공들이는 술라의 치밀한 음모에 대한 핍진함이야말로 콜린 매컬로의 장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외에도 이부형제 유구르타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결국 배신하게 되는 보밀카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권력은 그 누구하고도 나눌 수 없다는 정치학 원론의 소설적 해석에 해당하는 스토리가 아닌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누미디아 전쟁을 질질 끌고 있는 메텔루스를 낙마시키기 위해, 수많은 클리엔테스(피호민)들을 동원해서 원로원에 메텔루스를 비방하는 청원 편지 공략을 성공시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집정관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군인 마리우스가 아닌 정치가 마리우스의 작전도 일품이었다.

 

텍스트로서 소설의 장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독법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로마의 일인자>를 로맨스 소설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정치학 입문서로, 혹자는 고대 전쟁사로, 혹자는 비교문화사로, 또 혹자는 배신과 음모 그리고 정략결혼을 매개로 한 스릴러 드라마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이천년이 지나도 로마의 역사와 그 시대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드라마가 여전히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마스터 오브 로마> 대원정의 순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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