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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을 왕창 빌려 왔다. 긴 연휴 동안 읽을 책이 혹은 읽어야 할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의 일탈을 하고 싶다고나 할까. 왜 시험 기간에 시험 공부 하지 않고 만화 보는 그런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망중한 가운데 난 그렇게 슬슬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열심으로 접하고 있다. 그게 뭐 어때서?
이 제목을 보자마자 난 삶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는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건 아마도 어떤 결정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아닐까. 아니면,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세상에 어느 순간 지고의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질문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어떤 해결책이 없다는 것 또한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고 바로 해결에 매진할 테니까. 물론 나도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또 하루를 살게 되겠지. 간바떼 ~
이 만화의 주인공 역시 내가 읽은 전작 <주말엔 숲으로>처럼 삼십대 중반의 여성 모리모토 요시코, 여기서는 수짱으로 통한다. 싱글 여성에게 절친은 필수요건처럼 비친다. 수짱에게는 이쁘고 똑똑한 영업부 사원 마이코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 그런데, 유부남과 교제 중인가 보다. 친구라면 다 털어 놓을 법도 한데, 선을 그어 놓고 서로에게 먼저 말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있는 모양이다.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기, 우리는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은근 생각보다 많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된다.
다시 수짱의 이야기로 돌아가 우리 수짱은 어느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친구나 친하다고 생각하는 직장 동료에게도 말하지 않는 은밀한 이야기들, 예를 들면 자신이 일하는 카페에 물건을 납품하는 나카다 매니저에게 반해 연정을 품기도 하지만 선뜻 용기를 내서 고백하는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다. 여성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들에게는 용감한 녀석이 미인을 얻는다 따위의 무용담이 있지만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결국 그렇게 키워가던 연심은 직장 동료 이와이 씨가 나카다 매니저와 몰래 연애하다가 결혼한다는 발표를 듣고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친구가 없는 미혼여성에게 결혼이란 참.
본 이야기가 끝나고 끄트머리에 한 컷으로 실린 만화가 너무 마음에 든다. 보통 때 같으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감행했겠지만 바로 옆에 꼬맹이가 서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는 둥,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가 누가 오는 걸 빤히 알면서 모른 척하고 슬며시 닫힘 버튼을 눌렀다던가, 귀찮아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연애비법 책을 몰래 샀다거나 하는 그녀들의 소심한 고백에 공감 한 표다. 누구나 다 한 번 정도는 해 보지만, 슬쩍 모른척하고 넘어가기 신공이라고 해야 할까.
만화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처음에 했던 질문인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라는 자문에 도달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며 살아도 아무도 우리의 용감한 수짱에게 뭐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현재에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안정과 자존감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절친인 마이코 마저 유부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남자와 만나 결혼을 결심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수짱도 카페의 점장으로 승진하긴 했지만, 쥐꼬리만큼 올라간 월급에 비해 하는 일은 많아 매일 같이 피로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며 사는 것도 괜찮다 아니 나쁘지 않다며 수짱의 이야기는 일단 마무리된다.
확실히 여자들의 싱글 라이프는 남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남자들이 어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서 맛있는 케이크나 사쿠라모찌 혹은 디저트 같은 걸 사가지고 갈까.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나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섬뜩할 일도 없지 않을까. 수짱의 어느 일기 문구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그만큼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