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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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루트로 해서 미야베 월드 제2막의 몇 권을 접할 수가 있었다. 역시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 덕분에 계속해서 출간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랄까. 때마침 에코인의 오캇피키 모시치 대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맏물 이야기> 애장본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전편에 해당하는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이하 기이한 이야기로 부르겠다)를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간이 가진 유혹 때문에 <기이한 이야기>를 마저 다 읽지 못하고 <맏물 이야기>부터 읽게 됐다. 물론 <맏물 이야기>를 다 읽는 대로 <기이한 이야기>도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기이한 이야기>는 실제로 에도 시대에 전승되던 <혼조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를 모티프로 해서 우리의 미미 여사가 쓴 시대물이다. 시대적 배경이 되는 에도 시대 중에서도 도대체 몇 년 정도일까라는 궁금증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따라 다녔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인 <꺼지지 않는 사방등>에서 결정적 단서를 얻을 수가 있었다. 에피소드에서 십년 전인 분카 4(1807)에 있었던 에이타이 다리 붕괴사건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해서 19세기 초반이란 추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미미 여사는 에도 시대 혼조라는 상인들의 공간을 바탕으로 해서, 전승되던 기이한 이야기에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라는 살을 붙여 독자 홀리기에 나선다.

 

궁금했다. 다른 직업군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상인들의 이야기일까 하고 말이다. 항간에 떠도는 풍문 같은 이야기(모노가타리)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인들의 특별한 성정 때문이 아닐까. 아무래도 상인들이 상품을 유통하다 보면 세간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미미 여사의 작품에는 국숫가게, 담뱃가게, 버선가게 같이 보통 사람들이 애용하는 친숙한 장소들이 다수 등장하게 됐다. 그리고 기이한 이야기의 마지막에 등장해서 사건에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에코인의 오캇피키 모시치 대장에게 맡겨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근간 <맏물 이야기>에서는 진화된 모시치 대장의 활약이 돋보이지만, 일본에서 사반세기 전쯤에 출간된 <기이한 이야기>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작아 보인다.

 

어느 미미 여사의 인터뷰에서 보니 실제로 매일 같이 두 편의 백물어(百物語:햐쿠모노가타리)를 연기하는 배우에게서 아마 영감을 얻었다지. 원래 <화차>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물에서 빼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미미 여사가 언제부터인가 시대 수사물에 치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도 그녀가 구사하는 소설 세계에 흠뻑 빠진 것처럼 이야기 공장장인 작가의 시대물 쓰기 중독은 가히 환영할 만하다.

 

상인들은 사람(고용살이)을 부려 돈을 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유통 단계(직접 대면)를 생략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니만큼 상업에서 인간관계는 필수다. 상인들이 다루는 각양각색의 물건 만큼이나 다양한 손님을 대하는 직업이니 만큼 스토리가 빠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미 여사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의 보물창고에 현미경을 대고 관찰하는 것 같은 관심을 보인 게 아니었을까. 또한 상인들이 최종 목표로 삼은 돈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력 중의 하나로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견실한 가게 주인의 후처로 들어가 가게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세우기도 하고, 오래 전에 딸을 잃고 실의에 빠진 부유한 상인을 위로하기 위해 가짜 딸을 수배하기도 한다.

 

물론 세상만사가 모두 돈 때문인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의심 때문에 전전긍긍(어쩌면 의부증?)하는 아가씨의 모습을 에도 시대 풍경에 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 하녀를 동원해서 기원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진정으로 돕는 것은 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작가는 은연중에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인 <외잎 갈대>의 인상이 길게 갈 것 같은 느낌이다. 한편, 사건의 해결사로 나오는 모시치 대장은 <맏물 이야기>에서 그 능력이 출중하게 발휘되긴 하지만, 냉정한 오캇피키로 그려지지 않는다. 자나 깨나 사건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시치 대장이지만, 마음 한 편에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중년의 멋쟁이 아저씨다. 자신의 관할 구역인 혼조 후카가와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니면서 서민들의 가려움을 긁어 주고, 때로는 선을 넘지 한도 안에서 자신의 재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기이한 이야기>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말이다.

 

최근 두 번째 에피소드가 개봉된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보면서 문득 미미 여사의 시대물이 떠올랐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미미 여사의 시대물 같은 시리즈를 다루는 작가가 없을까하는. 장르물과 시대물이 맥을 추지 못하는 우리의 출판 상황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하긴 미미 여사의 시대물도 우리나라에 연착륙하는데 마포 김사장님의 꾸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지간한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장르물과 시대물(사실 일반독자가 에도 시대의 풍습이나 관직 그리고 지명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옮긴이 주가 없었더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단어들이 횡행하는 것이 사실이다)을 적절하게 혼합한 연작 소설이 주는 심리적 장벽을 통과해서 미미 여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도달하기란 역시 쉽지 않은 미션이리라. 지레 짐작이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15편의 시리즈 중에서 최근작인 모시치 대장의 <맏물 이야기>가 가장 호성적을 내고 있다고 가정해 볼 때,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미야베 월드 제 2막 동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리딩데이트] 2015212~ 20일 오전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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