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물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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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에 책이 들어오는 대로 단박에 미미 여사의 신작 소설 <맏물 이야기>를 읽고 싶었으나 살이가 그렇듯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자투리 시간을 내서 바지런히 읽어서 4일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사실 좀 더 시간을 두고 읽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었지만, 읽다만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구입한 <메롱><흔들리는 바위> 그리고 도서관에서 막 빌려온 <얼간이><말하는 검>까지 밀려 있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혼조 후카가와를 누비는 에코인의 오캇피키(포리) 대장 모시치의 활약이 너무 재밌어서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맏물 이야기>는 편집 후기를 참조하니 자그마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비해 미미 여사가 쓰고 있는 에도 시대물은 한껏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작품의 연혁에 따른 구성과 확실한 캐릭터 그리고 시절에 맞는 에도 상가(商家)의 풍습이 어우러져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리라.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도 모시치 대장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에피소드의 개별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맏물 이야기>에서는 사건 해결에 나서는 모시치 대장을 화자로 캐스팅하고, 중년 곤조와 청년 이토키치라는 사이드킥까지 배치한 삼인조로 이야기(모노가타리)를 꾸려 나간다.

 

게다가 이번에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모시치가 취급하는 알쏭달쏭한 사건 해결에 영감을 해결하는 도미오카바시 다리 근처의 솜씨 좋은 유부초밥 노점 주인의 미스터리까지 곁들여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유부초밥 주인장은 미미 여사가 <맏물 이야기>에서 준비한 첫 번째 쿠션이다. 유부초밥 노점의 주인장의 내력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리의 요리사라고 치부하기엔 무언가 사연 있는 무사의 기운이 넘친다는 것이 미미 여사의 발상이다. 게다가 거리의 살모사라는 가지야의 가쓰조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포스마저 장착하고 있다. 요리 솜씨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계절 음식으로 독자의 구미를 돋울 정도로 빼어나다.

 

그렇게 미미 여사의 두 번째 쿠션은 <맏물 이야기>의 맏물/음식 혹은 계절요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미미 여사는 어떻게 모시치 대장의 사건과 맏물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배합한 걸까라고 독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두 번째 에피소드 <뱅어의 눈>을 살펴보자. 모시치가 관할하는 후카가와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그들이 모여 사는 신사에 독을 넣은 유부초밥으로 꼬여서 아이들을 상해케 만든 파렴치한 사건이 발생한다. 고지식한 정의파 모시치 대장이 그런 아이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라 그는 더더욱 분노한다.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전인 에도시대에 부유한 상인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받아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오캇피키 대장은 이 사건 때문에 좋아하던 팔딱팔딱 뛰는 뱅어회를 먹지 못하게 되었단다.

 

다음 에피소드인 <천 냥짜리 가다랑어>에서도 미미 여사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오월이 제철이라는 가다랑어 시즌을 맞아 난데없이 가다랑어를 손질하게 된 모시치는 자신이 없어 미요시초에서 생선 행상을 다니는 가쿠지로 씨에게 부탁해서 석쇠에 적당히 구워 먹음직스러운 가다랑어 요리를 맛보게 된다. 가쿠지로 씨에게 뜬금없이 천 냥짜리 가다랑어를 사겠다는 제안이 들어오면서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진다. 무가나 상가에서 불길하게 생각하는 쌍둥이의 엇갈린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의 <도깨비는 밖으로>에서도 비슷한 소재로 다시 등장한다. 좀 진부한 설정이긴 하지만, 가난하더라도 작금의 행복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냐고 작가가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도 초봄의 싱그러운 빛깔을 머금은 유채나물, 달달한 사구라모치 과자, 정월에 먹는다는 속풀이 나나쿠사죽 등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계절요리들의 향연이 <맏물 이야기>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미미 여사가 독자를 위해 준비한 세 번째 쿠션은 뭘까? 바로 영감 스님이라 불리면서 뛰어난 영시 능력으로 세간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해결사이자 기도사로 활약 중인 꼬마 니치도(조스케). 물론 모시치 대장은 니치도의 능력을 이용해서 원래 사업보다 더 열중인 니치도의 부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 하지만, 모시치 대장은 <맏물 이야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때로는 니치도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니치도가 테러 당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하는 방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의 정체를 대충 파악하게 된다.

 

사실 미시마야의 오치카가 등장하는 변조괴담 시리즈로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을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결을 달리 하는 모시치 사건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리얼리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어쩌면 특정 캐릭터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들을 기용하는 미미 여사의 전략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마치 배스킨 라빈스의 31가지 아이스크림 맛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수상쩍은 사연을 가진 유부초밥 노점 주인장의 정체를 파고드는 모시치의 활약을 기둥으로 삼아, 뚜렷한 특징을 지닌 캐릭터(이토키치와 니치도)를 적절하게 조합해서 만드는 모노가타리(이야기)야말로 <맏물 이야기>의 감칠맛[うま]가 아닐까 싶다. 말미에 등장하는 당돌한 몽타주 프로파일러 오하나 역시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에서 한몫 단단히 할 것 같다.

 

미미 여사는 <맏물 이야기>에서 에도 시대의 정치적인 요소들은 제외하고 오로지 사회 문화적인 요소 그 중에서도 유통산업을 담당하고 있던 상인들의 세계에 천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무사들의 존재는 그저 무슨 나리로만 표현되고, 하급관리자인 오캇피키를 대신 기용해서 당시 사회상의 이모저모를 들려준다. 에도 시대를 바탕으로 한 시대물이면서도 동시에 수사물이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건사고 해결 과정에 논리적이면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탐문수사와 증거 확보 그리고 검안 같은 현대 탐정물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점들을 고려해 봤을 때, 초기작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진화해서 정교한 짜임새에 방점이 찍힌 기분이라고나 할까.

 

마포 김사장님이 발행한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 8호에 소개된 미야베 월드 시리즈 분류에 따르면, <맏물 이야기>는 북스피어에 나온 미야베 월드 제2막의 15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제 달랑 세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에도 시대라는 한 뿌리에서 가지치기를 해서 사방으로 마구 뻗어 나가는 다양하면서도 기이한 이야기들이 너무 재밌다. 게다가 뒤늦게 컬렉션 재미까지 붙여서 부지런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나중에 미미 여사가 정성들여 만든 여러 캐릭터들이 한 편의 스핀오프에 등장해서 활약하는 크로스오버 작품은 또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5일하고도 반나절이나 되는 이번 설날에 읽은 첫 번째 책이다.

 

[리딩데이트] 2015215~18일 오후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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