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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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다. 요즘 유행인 경장편 분량의 글인데, 도대체 읽히지가 않는다. 하물며 책 읽는 사람도 이럴진대 글 쓰는 이는 오죽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한 번 읽다가 실패하고 나서 한참 있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34년 전에 빛고을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이렇게 현실적이고 가슴 저리게 기록해낼 수 있는 작가의 역량에 새삼 놀랐다. 내가 그녀의 작품과 처음 만난 것이 <희랍어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이만큼의 문학적 도약이 있었단 말인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한강 작가는 다양한 시각으로 1980년 광주를 독자에게 인도한다. 시민군으로 도청사수에 참가한 소년의 시각으로 혹은 그 소년이 목격한 친구 정대 혼(魂)의 시각으로, 참척한 슬픔을 지닌 어머니의 시각으로. 그 고통의 나락에서 살아남았지만, 죽음보다 삶이 더 고통스러운 이들의 시각으로 회피하고 싶은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선다.

 

소설의 소년은 동호다. 소년은 상무관에서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시민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정성스레 기록을 남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어린 소년으로 하여금 총을 들게 했을까. 헌정질서를 뒤집은 쿠데타 세력을 용서할 수 없어 일어선 시민들에게 폭도라는 누명을 씌우고, 군대를 동원해서 함부로 총질하고 살상한 이들에 대한 심판과 진실규명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한 번씩 반복된다고 했지만, 2014년 4월 세월호 비극에 대한 진실 규명 역시 공전하고 있는 마당에 한강 작가가 눈물로 쓴 기록들이 전혀 새롭지 않게 다가온다.

 

한강 작가가 쓴 그 도시, 열흘의 기억을 읽으며, 참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생산해낼 수 있는 참혹한 고통과 약솜이 상징하는 힐링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타이핑하는 손마디의 힘을 빼버렸다. 한때 유행하던 정의사회 구현 같은 거창한 구호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설 속 캐릭터들의 작은 외침의 가운데 소년이 있었다. 그런 비극을 겪고 나서도,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소용돌이 속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등장인물의 독백이 새삼스럽다.

 

지금 우리가 아무런 제재 없이 읽는 책들도 예전에는 검열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엄혹한 시절이 있었단다. 빛고을 그 난리 가운데 살아남아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하던 그녀에게 날아온 일곱 번의 따귀는 존재의 부정에 다름 아니었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가 무슨 권리로 주인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명령한단 말인가. 지금은 우스개처럼 들리는 일이지만, 검열관이 먹줄로 죽죽 그은 원고로 고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물리적으로 뺨을 맞은 치욕보다 자신이 애써 창작한 작품을 훼손당한 수치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렇게 극한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겐 광장의 분수대조차 들어설 심적 여유가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프리모 레비가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던 이것이 인간이냐는 질문은 1980년 빛고을의 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수부대 저격수의 총탄에 쓰러진 동료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비무장 시민들에게 저격수들은 주저 없이 총탄을 박아 넣는다. 이것이 인간인가? 오로지 단결된 다수의 힘만이 정의를 가로 막는 억압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조하지 않는 대다수의 침묵이 두렵다. 이것이 인간인가? 비루한 삶은 그렇게 연장되었고, 산 자는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에 대해 증언하라는 연구가의 압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압박하는 사람도, 압박당하는 사람도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양가적 감정이 스르륵 고개를 드민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열흘을 잊을 수 없다는 동호 엄마의 회상 부분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자식을 잃은 참척의 비극은 올해 다시 되풀이 되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소복을 입은 동호 엄마가 경찰서에서 내 아들 살려내라며 외치는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가 말도 안 되는 물질적 보상이나 명예회복 같은 신원(伸冤)을 바랬던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건의 책임 소재와 진실 규명을 원했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가 우발적으로 그런 조준사격을 했단 말인가. 현실계에서 다반사처럼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극이 문학적 허구를 능가할 판이다.

 

고통의 기억 속에서 한땀 한땀 새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80년 빛고을에 대한 진혼곡이다. 80년 5월의 빛고을을 읽기 위해선 깊은 심호흡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이에겐 생소한 과거의 사건일 수도, 어떤 이에겐 고통의 재연일 수도, 또 어떤 이에겐 불온한 선동으로 읽힐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지라도 대저 문자해독이 가능한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단언컨대 2014년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일말의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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