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 여씨와 유씨 - 건설과 숙청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냥 나는 작가에게 묻고 싶다. 초한쟁패를 다룬 한나라 이야기 3편 이후의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나 볼 수 있느냐고 말이다.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출판사와 저자가 땅파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닐진대, 흥행이 안되는 영화에 계속해서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다. 하지만, 열심히 한나라 이야기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로서 한마디만 하고 싶다. 한나라 이야기 3권이 나오고 나서 4년이 지났다. 나머지 시리즈를 도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김태권 작가는 <한나라 이야기>의 초반 이야기의 태반을 태사공의 <사기>를 원전 텍스트로 삼아 그리고 있는데, 이번 3부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캐릭터는 전반부의 유막둥이의 아내 여후(본명은 여치)와 후반부의 승상 진평이다. 여후는 유방 사후,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이 낳은 효혜를 황제의 자리 위에 올리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숙청을 주도하며 수많은 공신들과 유씨 일족의 원성을 사게 된다. 저자는 태사공 선생의 여성 비하도 한몫하고 있다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에 한해서는 냉혹한 면을 보여 주었지만 일반 백성에게는 선정을 베푼 지도자였다는 평도 잊지 않는다. 물론 그것도 태사공의 균형 있는 비평의 일부다.

 

다시 <한나라 이야기>로 돌아가서 1권과 2권에서 유방과 항우의 초한쟁패 끝에 결국 저자가 유막둥이라 부르는 유방이 대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4백년 역사의 한나라 건국 이야기가 끝난 건 절대 아니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처럼, 항우와의 처절한 전투 끝에 대권을 잡는데 썼던 사냥개들이 이제는 정권의 위협이 된 것이다. 태사공 사마천이 그 선두주자로 꼽은 인물이 바로 한초삼걸, 그 중에서도 뛰어난 군사전략으로 항우 격멸에 지대한 공을 세운 제왕, 초왕을 거쳐 회음후로 강등되어 비운에 살해당한 한신이다.

 

오래전 김팔봉 선생의 <초한지>를 읽으면서 왜 한신은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올린 것처럼 모사 괴철이 일찍이 자신에게 진상한 유막둥이, 항우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는 계획을 저버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항우 사냥에 성공한 유막둥이는 천하제패의 가장 큰 공을 세운 공신 한신을 역모 혐의를 씌워 죽이지 않았는가. 물론, 한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 유막둥이가 항우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신속한 출병으로 돕지 않고 오히려 제나라 왕위를 요구하는 등 배신의 아이콘 유막둥이에게 소위 찍히고 말았다. 간난신고의 시절, 자신을 돕지 않은 한신에게 유막둥이가 좋지 않은 감정을 품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신의 오판이 결국 멸문의 화를 불러온 셈이다.

 

건국공신 한신마저 그렇게 숙청당하는 마당에, 한 때 항우의 부장으로 유막둥이 편에 선 양왕 팽월과 구강왕 영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도둑 출신의 팽월은 유격전으로 항우의 병참선을 교란시키고, 한때 항왕의 오른판이었지만 유막둥이가 보낸 수하의 계책으로 유막둥이 라인이 된 영포 역시 건국의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신생국가 한나라의 위협이 되는 군벌이라는 이유로 제거된다. 하긴 한신과 더불어 한초삼걸로 꼽히는 소하 역시 유막둥이의 의심을 받아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으니까.

 

군벌집단으로 천하를 제패한 유막둥이 일당들은 제왕와 제후의 구분이 없어 궁궐 잔치에서 칼부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역시 진평 같은 처세의 달인 유학자 숙손통이 나서서 고대 예법을 부활시켜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유가적 통치규범을 내세우면서 이후 유교식 통치국가의 기틀을 잡기 시작한다.

 

영포 정벌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결국 유막둥이는 죽고, 오랫동안 불안한 황위 계승자였던 후계자 유영이 비로소 즉위하면서 여후의 시대가 열린다. 태사공 선생은 고조본기, 항우본기에 이어 여후본기로까지 다룰 정도로 여걸인 여후에 대해 비중 있는 서술을 했다. 유막둥이가 살아 있을 때부터 건국 공신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숙청을 감행했던 여후는 유막둥이 사후 정말 눈에 보이는게 없었던 모양이다. 유막둥이의 총애를 받았던 척부인은 물론이고 척부인의 소생으로 조왕 유여의와 유막둥이의 다른 아들들마저 모조리 숙청하는 일대 피바람을 일으킨다. 2대 황제 혜제 유영이 죽은 뒤에는 친위 쿠데타로 대신들마저 모두 죽이겠다는 엄청난 계획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나라 이야기 3권 전반을 여후가 맡았다면, 처세의 달인으로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진평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진평은 전형적인 음지에서 일하는 모사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서 항우 진영의 내분을 조장하고 항왕과 범아부(범증)의 관계를 파탄시켰으며, 한신에게 제왕 자리를 주어 달래고 훗날 그를 숙청하는데 앞장섰으며, 유막둥이가 흉노 정벌 과정에서 흉노의 대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기지를 발휘해서 탈출하는 공을 세웠다. 진평은 유막둥이처럼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 피아를 오가는 진영 변경은 물론이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유막둥이의 처남 번쾌 체포사건, 유씨와 여씨를 오가는 위험한 줄다리기에서도 대국을 읽는 탁월한 능력으로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저자는 태사공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대권 쟁취에 성공한 인물보다는 항왕이나 한신처럼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역사의 패배자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담뿍 담아 보낸다. 사마천이나 사마광 같은 역사의 기록자들은 하나 같이 그들을 패배자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매순간에 자신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 아니던가. 항왕은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우러러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고 외쳤다고 하는데, 자신의 오판과 실수, 인재등용에서 저지른 치명적인 오류 등에 대해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특히 인재 문제에 있어서는 한신, 팽월, 영포는 물론이고 진평 같이 유방 진영에 투항한 상당수 인사들이 원래는 항왕의 진영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 이야기 3권의 또다른 교훈은 성공까지 과정에서 고난을 함께 할 수 있지만, 부귀영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비정한 권력의 생리에 대해 리얼하게 그려냈다. 여후의 제거 목록에 올랐지만,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정계에서 은퇴한 장량의 뒤를 따르지 않는 이상 초한대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공신일수록 한제국의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여씨 일족을 제압하고 다시 한제국의 중흥을 이룬 문경지치 그리고 오초칠국의 난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쯤에나 보게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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