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엔가 일본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 참 도발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의 작가의 책을 읽은 독서모임에서 그녀보다 고수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다나베 세이코였다. 아마 <침대의 목적>과 <아주 사적인 시간>을 추천받았던 것 같은데 묵혀 두고 있다가, 지난주에 <춘정 문어발>로 다나베 여사의 문학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이 바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하 <조제>)이다. 이 책도 오래 전, 어느 여행지에서 우연히 어느 커플이 동명의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추천 받은 영화라면 바로 구해서 봤을 텐데, 이제 영화마저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라 그냥 안보고 버텼다. 그렇게 길게 돌고 돌아 이제야 <조제>와 만났다.

 

다나베 여사는 1928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87세다. 28세도 아닌 87세라니. 그런데 젊은 처자 못지않은 감각으로 여성들의 은근하면서도 오묘한 심리를 까발리는데 도가 튼 모양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 그녀의 관심은 오욕칠정의 세계가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남녀 관계에 있다고 했던가. <조제>에 실린 9편의 단편을 통해 다나베 여사는 우리가 즐겨보는 <사랑과 전쟁> 뺨치는 파격적이면서도 달달한 연애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매간에도 질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첫 번째 에피소드인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서는 일이나 연애에서 모두 잘 나가는 동생을 둔 언니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살림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요즘 말로 하면 모태솔로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 고즈에는 그마저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생 미도리가 어느 날 갑자기 먼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예비신랑감에 필요이상의 기대를 보이는 고즈에. 야릇한 갈등의 전조를 내비친다.

 

다음은 역시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조제는 이 단편의 여주인공 구미코가 프랑수아 사강의 소설의 주인공 조제를 본 따 지은 자신의 별명이다. 어려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 하반신마비의 장애를 가진 조제는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 츠네오에게 도움을 받아 인연을 쌓게 된다. 그런 조제를 돌봐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한 조제를 찾아간 츠네오는 동정과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츠네오는 그렇게 조제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야수의 왕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을 찾는다. 그리고 해변여행을 떠나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에게 자신들을 투영하며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완전무결한 행복이 죽음 그 자체라니. 너무 내냉소적인 게 아닐까.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짧은 단편을 가지고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각색 작업이 필요하겠지. 중요한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이벤트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러닝타임 두 시간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하지만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채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가능한 한 롱테이크로 촬영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떻게 새로운 버전의 <조제>를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영화를 봐야지 싶다.

 

<조제>에는 어쨌거나 다양한 사랑에 대한 버전이 실려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모와 조카의 관계를 다룬 <사랑의 관>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선언과 함께 진행되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워커홀릭으로 일에 미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통해 알게 된 연하남과의 줄타기 연애는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다나베 여사는 절제의 미덕에 대한 서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긴 무림의 절대고수라면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일에 미쳐서 나를 돌봐주니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바람피우게 되었다, 진부하다 진부해. 치키라는 손가락 인형의 입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고전적 수법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이 양반 대단하구나.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것을 알고는 있기나 하나? 열 살 연상의 남자는 연하의 여자를 자신의 별장에 고이 모셔 두고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찾지 않는다. 폭주족이 인근에 출몰하자, 자기 대신 조카를 보낸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즐기는 듯 한 태도가 영 마뜩치 않다.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밥타령을 하는 남편의 “욕망에 충실한 빛나는 에고”를 냉소적으로 찬양하기도 한다. 전처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두 집 살림을 하는 남편을 호색의 날다람쥐라고 부르는 에리코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썸타는 사이도 아니면서 내 것인 듯 아닌 듯한 그런 미묘한 여성의 감정선을 잡아내는 기술이 정말 유려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랑의 방정식을 통해 다나베 여사는 남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니들이 사랑이 뭔지 아냐고 말이다. 물론 이 질문은 남자는 소중한 취미라고 쓴 다나베 여사 정도는 돼야 물을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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