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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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그는 지난 세기를 규정한 문제적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세계 정복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 잡혀 전무후무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일으켜 결국 파멸에 도달한 유사(pseudo) 영웅에 대한 다양한 글들을 읽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히틀러에 대한 저술들은 그의 악명과 성공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파간다적인 성격이었다. 그의 행적을 되돌아 볼 때, 충분한 개연성이 느껴졌다. 1차 세계대전 패전의 굴욕으로부터 도이치 민족의 자존감을 되살려줄 메시아이자 초인(Übermensch)이었던 이 문제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결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 도달했다. 나의 이런 의문은 최근에 돌베개에서 출간된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라는 저자의 테제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유대인 약혼자와 영국으로 망명하고 이어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이 책에 앞서 저술된 에버하르트 예켈의 <히틀러의 세계관(1969)>과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1973)> 같은 정전에 주석을 덧붙인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가 정전으로 삼은 저작들이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면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문제적 인간 히틀러에 대한 개설서적인 성격을 띠면서 그의 본질에 접근하고 이해하는데 유용한 방법을 제공한다.


이 주석에서 하프너는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가 별다른 학력을 가지지 못했고,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이주해서 독일군의 일원으로 대량살육전이 벌어진 서부전선에 투입된 베테랑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혹자는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 초반의 전차부대를 활용한 전격전의 승리가 적들의 오판 내지는 순전히 독일군의 운이었다고 치부하지만, 하프너는 이 책에서 히틀러가 재능 있는 정치가이자 (결론적으로 실패했지만) 유능한 전략가였다고 밝히고 있다. 히틀러가 그저 시대를 잘 만나 출세한 보헤미안이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한 하프너의 응답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 저자는 히틀러가 그렇게 비판한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을 패전으로 귀결시킨 1918년 11월 혁명이 독일 전제군주정을 무너뜨린 동시에 외국인 신분의 히틀러가 ‘큰 도이치 민족주의’ 틀에서 제3제국 건설에 도달하게 될 권력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최대수혜자는 다름 아닌 히틀러였다. 이거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의 세계관을 다음의 두 가지 목표로 뚜렷하게 제시한다. 첫 번째 목표는 숙적 러시아의 스탈린을 공격하여, 도이치 민족의 동부에서의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러시아 정복이었고, 두 번째는 빈 시절에 확립된 독일 아리안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국제적 공조가 모두 유대인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에 기초한 유대인 학살, 방대한 규모의 홀로코스트였다. 종국에 파멸에 이르는 히틀러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자신의 첫 번째 목표가 1941년 12월 적도 모스크바 앞에서 실패하자 두 번째 목표에 치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히틀러 성공의 정점에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극적인 전환점이었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진중하게 논증한다.


가진 기술이라고는 연설에서 보여준 집단최면 능력 밖에 없는 무명의 정치가가 만성적인 실업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도이치 민족이 당명한 치명적인 경제문제들을 경제장관이자 독일은행 총재였던 ‘재정마법사’ 히얄마르 샤흐트를 기용해서 일거에 해결하면서 소위 경제기적을 달성하게 된다. 히틀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공산당 같은 그의 골수반대자들도 600만에 달하는 실업자에게 일자리와 빵을 준 히틀러 총통이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반대할 수가 없었다. 히틀러는 또한 긴축정책이나 통화안정보다 팽창이 경제문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뛰어난 경제정책의 본능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와 비교할 수 있는 역사적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레닌, 마오 쩌둥과 비교해 볼 때, 히틀러는 자신이 건설한 천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후계자를 세울 생각도 없었고 비록 선거로 집권하는데 성공했지만 스스로 총통에 자리에 올라 초헌법적인 존재가 되어 자신을 국가와 민족에 동일시하는 과대망상에 도달하게 되었다. 후반부의 <배신>편에서 기술하게 되지만, 이런 히틀러의 과대망상이야말로 도이치 민족에게 재앙이자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신봉자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아리안 도이치 민족의 종족전쟁을 주문했다. 히틀러에게 독일 국가와 민족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쟁기계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독일 민족을 정점으로 한 유럽 통합 혹은 세계 정복 과정에서 생물학적 무장을 통해 종족에 따른 서열화를 꿈꾸었다. 유대인이 세계지배를 획책한다는 망상에 빠져 유대인을 근절시키겠고 결정한 히틀러는 자신의 우호적 친구일 수도 있는 유대인을 적으로 돌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1938년 여름과 1940년 여름, 뮌헨 협정과 프랑스 전격전의 대성공으로 영국을 배제한 유럽 통합을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1941년 6월 22일 러시아 침공)을 개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접어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에게 부족했던 국가 건설 기술과 끈기를 언급하면서, 히틀러의 보다 건설적인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를 지적한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하게 마련인데, 의지력과 에너지 그리고 강력한 성과의 화신이었던 전쟁광에게 모스크바 공략 실패는 파멸의 전주곡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인류에 대한 범죄인 홀로코스트로 서방(영국과 미국)과의 화해 가능성이 사라져 버리자, 자포자기한 히틀러는 1944년 12월 가용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아르덴 산맥을 돌파하는 터무니없는 도박을 벌이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무모한 병력 운용으로 제3제국의 종말을 앞당긴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자신의 운명을 독일 국가와 민족의 그것과 동일시한 히틀러는 파국을 앞두고 전쟁 후에 다시 일어서야할 조국 독일을 잿더미로 만들 파멸 프로젝트를 명령하기에 이른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의 이런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중세 문학의 걸작 <신들의 황혼>에 비유한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종래에 알려진 히틀러 신화를 성과, 성공 그리고 오류 등으로 냉정하게 분류, 분석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식민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게 되었고, 미소 냉전으로 유럽은 두 개의 진영으로 맞서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민족의 참화로 이스라엘이 생겨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히틀러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오늘날 세계의 모습이 히틀러의 영향을 받았다는 하프너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울러 집요하게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격했던 독일 우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독일 연방공화국에서 히틀러 같은 캐릭터가 등장할 수 없을 거라는 선구적 전망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저널리스트로서의 냉철한 주관과 문제인식 그리고 논리전개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히틀러에 대한 기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가 있었다. 이후에 읽을 홀로코스트의 직접 피해자 프리모 레비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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