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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대부분의 사람이 따르며 사는 낮의 규칙이 아닌, 밤의 규칙에 따라 사는 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소설이나 영화라는 매개체가 아니고서는 대개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데니스 루헤인이 조(지프) 커글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들려주는 밤의 규칙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사는 치외법인의 이야기인 <밤에 살다-리브 바이 나이트>는 정말 재밌는 소설이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밤에 살다>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운명의 날>부터 읽었다면 하는 것이다. 어쩌겠나, 이미 다 읽은 소설을 뒤로 하고 되돌아갈 수는 없는 것을. 데니스 루헤인 작가는 자신이 집필하는 모든 소설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미 <밤에 살다> 역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조 커글린 역은 중년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 빼어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캐스팅되었단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감독은 갱스터 무비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틴 스코시즈가 맡으면 어떨까 싶다. 아니 벤 어플렉이 직접 연출을 한다고 했던가.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1920년대 보스턴의 찰스타운이다. 수정헌법 18조에 따라 여전히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금주법이 오랜 인간의 욕망마저 제어할 수 없는 법. 사람들은 밀주로 알코올을 탐했으며, 막대한 수입이 따르는 밀주사업에 범죄조직이 개입하는 건 당연지사다. 보스턴의 유명한 경찰서장의 아들로 이제 막 성인의 문턱을 넘은 조 커글린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직업에 대한 반발이라고나 할까, 낮의 규칙이 아닌 밤의 규칙에 매혹되어 범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뭐 부자간의 갈등이라는 요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일이기에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다만, 그 앞에 프리퀄 <운명의 날>의 여진이 있다는 점은 유념해 두어야 할 듯 싶다.
문제는 이 피끓는 청년 조가 에마 굴드라는 팜므파탈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 지역의 유명한 보스 앨버트 화이트의 애인이라는 점이 바로 문제였다. 그녀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던 조는 마지막 한탕을 크게 벌이고 도망가기로 마음 먹는다. 문제는 마지막 은행강도짓을 하다가 그만 세 명의 경찰이 죽는 불상사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 사실에 분노한 아버지 토머스 코글린은 부하 경찰들을 시켜 아들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다. 결국 찰스타운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 조는 감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투쟁에 나서게 된다.
교도소를 지배하는 거물 마소 페스카토레의 눈에 들지만, 라이벌 앨버트 화이트 일당을 처리해 달라는 거듭되는 청탁을 아버지에게 전달해야 하는 조는 좌불안석이다. 결국 그 와중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조는 건곤일척의 승부수로 마침내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보스턴 출신 풋내기의 생존기라면 2부는 무대를 한창 시가산업과 럼주밀래로 흥청거리던 도시 플로리다 이보르로 옮겨 진행된다.
전반부에서 조 커글린의 개인사에 집중이 되었다면, 후반부는 어떻게 해서 조가 범죄조직의 최상층부까지 올라가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기술해준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을 해도 폭력은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조는 불법적인 럼주밀매 뿐만 아니라 추후에 금주법이 폐지될 경우를 대비해 부자들을 겨냥한 도박산업을 플로리다 전체에 도입할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조 커글린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밤의 규칙에 따라 사는 자신이야말로 치외법인이라는 오만한 주장을 펼친다. 하긴 이미 자신의 운명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실패한 은행털이 멤버였던 디온 바로톨로와 재회한 조는 지옥 같았던 찰스타운에서 살아남은 특유의 배짱을 무기로 철천지 원수 같은 앨버트 화이트를 플로리다에서 쫓아내고 명실상부한 보스의 자리에 오른다. 조는 경찰서장, 시의회의원, 하원의원, 언론을 매수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의 안전을 도모한다. 비록 치외법인이긴 하지만, 찰스타운 교도소에서 세월을 죽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며 그야말로 엘리트 조폭의 길을 걷는 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교훈을 무시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데니스 루헤인은 조 커글린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유래 없는 경제호황으로 흥청거리던 시절의 모습과 물질에 대한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유감없이 그려냈다. 소설적 재미뿐만 아니라 미국이 쿠바에 개입해서 실질적으로 마차도와 바티스타 정권을 통해 쿠바를 지배하던 사실도 간간히 들려준다. 나중에 조의 애인이 되는 그라시엘라도 그렇게 미국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키기 위해 범죄도 마다하지 않지만, 범죄자의 아내가 되어 검은 돈으로 자선사업에 매진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 커글린 역시 사업상으로는 냉혈한에 가깝지만, 자기 주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여 자신을 배신한 디온을 용서하는가 하면 자신의 주인인 마소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밀주사업가를 보호하거나 제거 지시가 떨어진 로레타 피기스에 손대지 않는 유약한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연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를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연기해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로레타 피기스의 종교적 열정에 대한 조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그녀의 맹활약으로 자신의 야심찬 계획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서도 폭력적 방법에 호소하지 않는 이성적인 보스의 판단에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건 과연 나 혼자 뿐이었을까. 물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어둠의 규칙 때문에 자신도 무언가 잃을 수 있다는 걸 그 당시엔 과연 몰랐을까.
러브 스토리, 아버지와의 불화, 우정과 배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2인자의 분투를 그린 갱스터 드라마라는 그야말로 오락적 재미를 두루 장전한 <밤에 살다>는 확실히 수작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그 결말을 가늠할 수 없는 연속되는 반전 역시 멋지다. 한 때 살았던 메트로 보스턴의 친근한 지명을 회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그 당시에도 썩 좋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찰스타운이 한 때 그렇게 살벌한 동네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범죄조직 내에서 이탈리아 계와 아일랜드 계의 전통적인 갈등, 플로리다로 무대를 옮겨서는 새로 등장한 에스파냐 사람들과 쿠바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한 KKK단 까지 가세한 인종갈등도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데니스 루헤인의 <밤에 살다>는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나 사건 하나 허투루 배치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 아래 쓰인 웰메이드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37년간 경찰에 몸담아 오면서 체득한 끊을 수 없는 폭력의 재생산을 경고한 선지자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탕자의 수난기가 꼭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여담 한 번 하자면, 커글린 가문 중에서 서부로 가서 시나리오 작가가 된 에이든 커글린의 이야기도 가능하면 스핀오프로 한 번 만들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