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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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사랑의 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의 장남 옥성호 씨의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각각 한 번 씩 배교한 레자 아슬란의 <젤롯>을 같이 주문했다. 부활절이 다가 오면서 종교 관련 서적이 읽고 싶었던 걸까. 후자는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전자는 한국 기독교계가 작금에 처한 상황과 맞물려 현실과 소설적 상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서술 때문에 단 이틀 만에 완독할 수가 있었다.

 

쌤앤파커스의 임프린트 <박하>에서 출간된 <서초교회 잔혹사>는 당당하게 표지에서 “장편소설”이라고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서초교회 잔혹사>가 과연 소설일까라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 현실을 빼닮은 소설의 배경은 정지만 목사가 설립한 서초교회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는 이 교회 청년부 출신 간사로 신학교를 졸업해서 사역 중인 장세기 목사다. 그저 그런 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그야말로 평신도 출신 장세기 목사는 한 번 사람을 쓰면 끝까지 믿는 정지만 목사의 간택으로 청년부 교역자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은퇴를 앞둔 정 목사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지역 주민을 상대로 교역 중인 김건축 목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소설은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목사 담임목사 부임을 앞두고 어수선한 가운데, 핵심, 잉여 그리고 건전지 목사라는 세 부류로 작성된 소위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초교회에 사역하는 교역자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이렇다할 스펙이 없는 장세기 목사 역시 잉여보다는 좀 낫지만 쓰고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건전지 목사로 분류되고 만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청년부에 헌신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달마다 월급통장에 찍히는 사례비와 자동차 그리고 교회에서 제공 받은 사택이라는 물질적 유혹에 흔들리는 보통의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은 사역자의 심리 상태를 저자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짚어낸다. 이런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교회 개척이라는 황무지로 나갈 자신이 있는가하고 장세기 목사는 거듭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드디어 담임목사로 등장한 김건축 목사는 세계선교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글로벌 미션”이라는 그럴싸한 캐치프레이즈로 포장해서 교역자 회의부터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파격을 선보인다. 비전 성취를 위해 토익 시험을 치르는 건 오히려 약과다. 그리고 자신이 요루바 어로 작곡했다는 “쌀루디 긴다” 송을 모든 교역자들에게 뜻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암기해서 회의 때마다 부르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담임목사와 부목사 시스템이던 기존 시스템을 부장목사, 과장목사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고쳐서 수직적 관계로 재편성한다.

 

서초교회의 이런 파격적 행보는 보수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고, 급기야 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로 진행되는 교역자 회의 취재에 들어가겠다는 발표가 나면서 교회는 또 한 번 술렁이게 된다. 장세기 목사는 사전 교역자 회의 리허설을 통해 김건축 목사의 허풍과는 달리 실제로 그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알게 되고, 담임목사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게 될지 궁금해 한다. 동료 차명진 목사의 예언대로 립싱크로 마지막 영어 기도로 마무리가 되면서 허깨비 같은 그의 실체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김건축 목사가 야심차게 출간한 책이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미국 출신의 재미교포 목사가 대필했다는 사실이 인터넷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초교회에 또다른 파란을 몰고 온다. 그야말로 아스트랄한 사건사고가 새 담임목사 부임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한편, 자신의 밥그릇을 위협할 새로운 청년부 목사가 청빙 중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장세기 목사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벼랑 끝에 놓였던 장세기 목사의 운명은 김건축 목사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면서 극적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잉여나 건전지 요원이 아닌 핵심 포스트에 배치되면서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된 장세기 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세상의 안락함과 물질의 지속적 공급을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양심을 내려놓고, 김건축 목사와 공동운명체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가 철저하게 왜곡되는 순간을 저자는 일관된 과정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한다.

 

김건축 목사를 옹호하기 위해 청년부를 대대적으로 동원해서 대여론전에 나선 장세기 목사는 자신에게 부여된 물질과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담임목사의 각종 비리 방어전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비로소 잉여/건전지 요원에서 일약 핵심 포스트의 자리에 올랐지만, 한 번 이탈하기 시작한 정상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김건축 목사 그룹은 불가피한 무리수를 지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 화천 지역에 당회의 승인 없이 임의대로 계획한 잉글리시 타운 설립이 언론에 알려지고, 이 상황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원로목사인 정지만 목사가 서초교회는 자신이 시무하던 시절의 서초교회가 아니라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파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건축 목사의 최측근인 마홍위 전무목사의 지휘 아래,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되고 그 총대를 장세기 목사가 매게 되면서 잉태된 비극은 건강이 좋지 않던 정지만 목사가 급작스러운 소천으로 마무리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있던 장세기 목사가 회심해서 김건축 목사의 전횡에 맞서는 최후의 영적 전쟁에 나서길 바랬다. 하지만 기득권이 보장하는 세상의 물질적 유혹은 너무 강했고, 담임목사가 제시한 권력의 맛은 너무 달콤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렇게 강조했던 고난을 체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그는 온전하게 김건축 목사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자신이야말로 절대순종하는 주의 종이라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섬기는 블라스피미(blasphemy)가 아닌가. 하나님과 물질의 신인 맘몬을 두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는 성경 말씀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 땅의 교역자들에게 외치는 예언자의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공의를 주장하며 늦기 전에 회개할 것을 부르짖는 예언자의 말은 구약시대부터 대중과 권력자들을 설득하지 못해왔다. 그게 현대에는 소설에 나오는 마 전무목사가 지휘하는 SNS 여론부대의 활동으로 세련되었지만 말이다.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성직자들이 성무를 집행한다는 이유로 소득세 납부조차 거부하고 있는 마당에, 장세기 목사조차 일인당 국민소득을 월등하게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간접 정황이나 탈식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겠냐는 식의 설정이 그것이다. 하긴 사자 사냥을 취미로 삼는 목사나 있는 마당에 그 정도쯤이야.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디 이 소설에 묘사된 이야기들이 그저 작가의 상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계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논문 표절을 하고도 충분한 회개 없이 주일 강단에 서고, 배임 횡령으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처참한 현실이 겹쳐지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자고로 견제 받지 않는 권력과 성역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21세기 서초교회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500년 전 민중의 가슴을 울렸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요구에 다시 한 번 귀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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