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일본의 사례, 1945-2012년 메디치 WEA 총서 1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문정인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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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만나게 되는 계기는 참 다양하다. 일본 외교관 출신의 방위대 교수 출신 지식인인 마고사키 우케루의 신간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는 최근 윤여준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의 원제인 <(일본)전후사의 정체>라는 제목을 보면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다.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어떻게 해서 자주적 노선을 상실하고, 미군 점령기를 거쳐 거의 미국의 꼭두각시 같은 나라가 되었나 하는 것이 마고사키 교수가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룬 내용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리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소련을 비롯해서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치열한 냉전 시대를 경험한 외교통인 마고사키 교수는 일본이 어떻게 해서 대미 정치적 추종노선을 우선하게 된 시점이 냉전시대가 아닌 전후에서 비롯되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치욕스러운 태평양전쟁 패전 후, 천황제 존속과 전범 처리 문제를 일본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수장이자 군신(軍神)이자 사실상 일본 점령총독으로 부임한 더글라스 맥아더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사실 자신이 도발한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이런 주장은 어떤 명분도 없는 것이었다.

 

한편 일본을 미국의 속국화하는 영어 공용어화와 달러 사용 같은 미군의 초기 점령 초안을 외무대신으로 맹활약했던 시게미쓰 마모루의 노력으로 무산시켰다고 마고사키 교수는 증언한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자주노선 세력과 아니다 그래도 미국의 주장대로 패전국 일본을 따라가야 한다는 추종노선이 대립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명확하게 지적한다. 미국은 다양한 공작활동을 통해 패전부터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자주노선을 지향하는 일본의 역대 정치 세력을 무력화시켰다고 기술한다. 그 정점에는 미국의 사주를 받는 일본 언론과 도쿄지검 특수부의 활동이 있었다. 자주노선을 주창하는 유력 정치인에 대한 비리를 언론이 흘리면, 도쿄지검 특수부의 예리한 칼날이 그들을 표적으로 해서 치명상을 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주노선파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명이다. 어쨌든 주요 희생자로는 처음에 등장한 시게미쓰 마모루를 위시해서, 하토야마 이치로 그리고 70년대 일본 정계를 파란으로 몰고간 록히드사건의 주역 다나카 가구케이 전 수상의 구속 등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로 대표되는 주일미군 주둔에 대한 역사적 시발점 역시 일급전범으로 전쟁 발발과 진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쇼와 천왕의 조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도 빼놓지 않고 있다. 원래 일본의 경제력을 그들이 침략했던 우리나라와 베트남 혹은 필리핀 수준 이하로 동결한다는 미군의 방침은 한국 전쟁의 발발로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세계대전의 주범인 독일과 일본의 군국화의 재발을 막기 위해 경제부흥을 저지한다는 미국의 전략은 일본의 이웃인 한국전의 개시로 인해 극적인 전환을 맡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소련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의 첨병으로 미국은 일본의 역할을 변경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일본 경제 부흥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 대전략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이 마고사키 교수의 냉철한 지적이다.

 

쇼와 시대의 요괴로 알려진 만주국의 설계자이자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갇혀 있던 기시 노부스케는 감옥 안에서 전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냉전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냉전이 일본과 자신과 같은 전범들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냈다. 조금은 섬뜩한 이야기지만,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이었던 일본의 엘리트들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최근 북핵 문제와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전범이 안치된 신사참배, 끝없는 극우적 발언 때문에 주변국과 긴장이 조성된 국면에서 다시 한 번 미국이 개입해서 일본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장면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들은 수평적 미일 동맹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지 않은가. 마고사키 우케루 교수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답게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는가>에서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미국이 어떻게 전후 70년간 일본을 사실상 지배해 왔는가를 증언한다. 저자의 그런 노력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역시 일본 학자답게 미국의 세계전략에 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과 자주노선 강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에서 이 책의 한계가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한국전에서 평양탈환의 역사적 시점을 오기(誤記)한 점(123)을 보면, 역사적 사실의 확인 부분에서 조금 미진한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를 읽으면서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공존을 위해, 주변국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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