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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평점 :
나는 우석훈 선생을 경제학자로만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어렵게 들리던 여러 가지 경제 이야기들을 나 같은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주는 그의 입담이 좋아서 예의 방송을 즐겨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소설을 펴냈단다. 오, 놀랍군! 경제학자가 쓴 소설이라니. 책을 읽을수록 픽션과 논픽션이 중첩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버렸다.
저자가 모두에 밝혔듯이 <모피아>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냥 없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에 닿아 있는 접점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내 개인적으로는 우석훈 선생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하던 말들을 활자로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여정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하도 들어서 전혀 새롭지 않은 모피아 조직을 타이틀로 정한 이제 막 소설가로 첫발을 내딛은 선생의 결기가 느껴졌다.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3공화국 이래 모피아의 수장으로 정치대통령을 능가하는 경제대통령 이현도가 대한민국 채권을 사들이면서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시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어렵사리 국정을 이끌어 가는데 모피아 집단의 기습적인 세 번째 경제 쿠데타로 경제 실권을 빼앗기게 된다는 극적이 설정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도와 이 위기를 탈출하는데 혁혁한 무훈을 세우는 인물로 한국은행 외환팀장으로 오지환이라는 인물을 우석훈 선생은 전면에 내세운다.
아내와 사별하고 남은 딸 현주를 키우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은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경제 권력의 전장에서 누비는 오지환이 가진 경제 전사의 이미지와 배치된다. 물론, 저자는 그런 상반된 이미지로 슈퍼엘리트로서의 천상의 이미지보다 다 말라비틀어진 사우어크라우트로 급조한 정체불명의 김치찌개로 출중한 능력의 변호사이자 기관총을 난사하는 여걸 김수진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년의 남성 캐릭터를 멋지게 창조해냈다.
소설의 긍정적인 면에서는 전문 작가가 아닌 경제학자가 쓴 소설답게 군더더기 없게 효율적인 구성과 전개가 인상적이다. 시초를 다투는 긴박한 경제전에서 장황한 만연체의 문장이 매력적일 수가 없지 않겠는가. 경제 결정권을 상실한 대통령이 비밀리에 자신이 그렇게 부정하던 비선 조직을 동원해서 환율 방어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북한과 접촉해서 통일을 추구한다는 설정은 확실히 극적인 재미는 있지만, 논픽션보다는 픽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권력을 능가하고 있는 경제권력에 대한 저자의 냉철한 분석은 명불허전이다. 우리 주변에서 돌아가는 각종 경제 상황이 단순하게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금융투기자본(헤지 펀드)과 이제는 괴물이 되어버린 군산복합체의 사적 이익 추구라는 점에서 사안을 파악한 점은 확실히 경제학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더 자유로운 공간을 담보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비상한 애국심이나 권력욕의 화신이 아닌 평범하지만 탁월한 능력과 배경을 가진 인물 오지환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위기와 도탄에 빠진 한국 경제를 부활시키는 경제 메시아로 그려진 점은 양날의 칼처럼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돈과 권력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김수진 변호사의 사랑까지 더해지니 어느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캐릭터가 된 점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아쉽다고나 할까. 내용 외적으로는 책의 곳곳에서 눈에 띄는 여러 오탈자가 연속적인 독서에 방해가 됐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오탈자 교정에 신경을 써줘서 책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으면 한다.
리얼리티에 기반한 논픽션 같은 픽션 <모피아>는 확실히 재밌다. 문제는 이제 하도 들어서 만성이 되버린 경제대란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마냥 이 소설을 재밌는 소설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현실이다. 어쨌거나 초보 소설가가 펴낼 또다른 이야기에 벌써부터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