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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아와 새튼이 - 한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 이야기
문국진 지음 / 알마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이 책 이야기는 제목에 나오는 두 단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야할 것 같다.
지상아 : 산모의 자궁 내에서 사망한 지 오래된 태아
새튼이 : 어린 아이의 미라
<지상아와 새튼이>는 우리나라에서 저명한 법의학자이자 의사평론가이신 문국진 선생이 사건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거나 혹은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모음집이다. 사실 동화 주인공 같아 보이는 책 제목이 내 예상과는 다른 뜻이어서 조금 놀랐다.
개인적으로 법의학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역시나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않은 이로서 그저 미디어나 책을 통해 만나는 정도가 전부였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는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악을 응징하는 시리얼킬러 덱스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 출신의 법의학자 마크 베네케의 저작 정도가 전부다. 이런 루트가 모두 해외의 사례를 다룬 것이라면, 문국진 선생의 글은 우리나라에서 과거 혹은 현재진행형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점을 가진다.
모든 사건은 흔적을 남긴다는 유명한 법칙에 따라 범죄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DNA 대조 같은 과학적 수사방식이 도입되기 전에 이미 이런 혜안을 제시한 이가 바로 19세기에 등장한 프랑스의 저명한 법의학자 에드몽 로카르라고 한다. 모든 범죄자는 사법기관에 체포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완전 범죄를 꿈꾼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이 과연 사건사고 중에서 미결로 처리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아마 꽤 많은 미결 사건들이 있다고 하는 걸 들어보면, 아마도 완전범죄에 성공해 법망을 빠져 나간 이들의 수가 제법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범죄 현장 보존과 현장검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무리 완벽한 범죄라고 하지만, 어딘가에 범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멍이 나 있기 마련일 것이다. 바로 그런 빈틈을 문국진 선생 같은 법의학자가 메우는 것이다. 마크 베네케의 글에서는 사체에 꼬이는 벌레들로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놀랐었는데, 문국진 선생의 글에서는 그 이상의 놀라운 일들을 접할 수가 있었다. 가령 예를 들어 살해된 뒤 물에 던져진 것인지 아니면 익사한 건지 사체 내의 플랑크톤을 분석해서 사인을 밝힐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한편 문국진 선생의 글이 딱딱해 보이는 법의학적 분석만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벌어질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의 수가 도출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메밀껍질 때문에 과민성 쇼크사를 하기도 하고,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혐오하는 피해자 가족에게 법의학자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며, 김치에 있는 성분 때문에 각성제 복용자로 오해 받기도 하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문국진 선생의 <지상아와 새튼이>를 통해 미스터리한 범죄를 해결하는 법의학의 명쾌한 해답은 물론이고, 각종 사건 사고를 통한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간접 체험할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법의학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개론서로 백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적인 분야를 직접 체험하고 오랫동안 연구한 분들의 성과를 높이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