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토끼 차상문 - 한 토끼 영장류의 기묘한 이야기
김남일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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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기묘한 이야기”다. 나는 이 표지에 나온 “기묘”란 단어에서 두 개의 중첩되는 이미지를 읽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이상하고 묘하다는 뜻과 다른 하나는 <천재토끼 차상문>의 주인공 천재토끼, “기묘”(己卯)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하나의 단어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니, 이 소설 재밌을 것 같은 감이 온다. 이렇게 김남일 작가의 소설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천재토끼 차상문>의 시발점을 기묘년(1939)으로 삼고 싶다. 그 단서는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황국신민서사다. 작가는 곧바로 식민지배와 해방을 아우르는 역사적 사실과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로 태어난 토끼인간 차상문의 이종교배를 시도한다. 영화 <엑스맨>은 저리가라할 정도의 생물학적 사실을 뛰어넘는 시도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 차상문의 가계도를 분석하는 일은 너무 복잡하니 토끼인간으로 태어난 그의 성장에 주목하자. 굳이 멘델의 우열의 법칙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토끼인간이 우성이라는 건 불문가지다.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이라는 후천적인 영향까지 더해져서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을 뛰어넘는 천재형 토끼인간의 탄생을 독자는 목격한다.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재자를 숭배하는 토깽이 아빠는 그를 데리고 어느 날 공장식 축산방식으로 개조된 양계장을 방문한다. 낮과 밤이 조작된 자연 환경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알을 생산하는 닭의 모습은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으로 농촌에서 도시의 공장으로 내몰린 세대의 변주곡이다. 작가는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고도로 농축된 묘사를 통해 개발 독재 시대의 씁쓸한 풍경을 들려준다. 어쨌든 차상문이 목도한 양계장의 비참한 현실은 그의 삶에서 계속해서 트라우마로 작동한다. 여기서 독자가 마주치게 되는 역설은 주인공 토끼인간 차상문 자체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 존재라는 사실이다. 더블 트위스트?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야만적 폭력에서 차상문은 얼마 전에 읽은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저지른 만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그렇게 우리네 생각대로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 법, 묘한 방식으로 매질 끝에 화해를 하는 부모를 접하면서 청소년 토끼는 다양한 모둠살이의 이벤트의 의미를 깨쳐 나간다.

병신년(1956, 왜 하필이면 병신년생이던가!)에 태어난 천재토끼는 당시의 천재답게 월남전으로 골탕 먹고 있던 대국(大國)의 고등교육제도로 편입된다. 반전 물결과 자유주의가 넘쳐흐르던 캘리포니아 버클리는 인류의 새로운 종에게 신천지였다. 버클리에서 수학을 공부하며 레푸스 사피엔스(lepus sapiens)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던 시기에 합리적 사고와 이성을 추구하는 법을 배운다. 버클리에서 자신의 영혼을 뒤흔든 동종의 짝 신애란을 만나지만, 그녀가 DPRK 출신이라는 말에 그는 자신의 감정을 소환해 버린다. 그에게 남은 건 LSD와 교미(交尾)로 대변되는 비벌리힐스의 타락뿐이다.

테트 대공세, 반전 운동, 유신헌법, 워터게이트 사건, 독재자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6월 항쟁에 이르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굵직굵직한 현대사가 정신적 교미와 예술적 교미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갈등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의 실존적 존재의 주변을 그야말로 폭풍처럼 엄습한다. 노골적인 방식이 아니라 고래의 구전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풍자와 해학을 텍스트와 적절하게 배합한 작가의 농익은 진가가 그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이것으로 끝인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작가는 전 미국을 뒤흔든 폭탄 테러용의자로 체포하는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이 들었다는 몬태나에 거주하는 “은둔자”를 비로소 등장시킨다.

영예가 보장된 모교에서의 전임 교수 자리를 박차고 산골 마을로 하방한 천재토끼는 자신의 전임자처럼 환경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존재 자체(그 어느 누구도!)가 지구별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반지구적 비밀 앞에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것 같다. 기존의 종과 전혀 다른 레푸스 사피엔스의 존재론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서, 파란만장한 역사를 관통해서 지구별과 함께 하는 모둠살이에 이르는 철학적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는 6월 항쟁의 한 복판에 내던져진 토끼인간과 실존 인물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의 전설이 두 번째 이종교배를 시도하면서 뒤죽박죽이 된다. 다시 생각해도 폭소가 터져 나오는 연필깎이 칼로 분연히 보수의 의기를 과시하던 한미건강원 김억구 사장 에피소드는 정말 압권이었다. 그 외에도 <천재토끼 차상문>의 깨알 같은 재미를 더하는 작가의 뻔뻔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천재토끼 차상문>은 정말 기묘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캐릭터의 신비한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한 개인을 옴짝달싹하게 못하게 옭아매는 무게가 느껴지는 역사의 진중한 전개는 정말 일품이다. 우리와 더불어 모둠살이하고 있는 지렁이 같은 미물이라도 ‘쿵쿵’거리는 소리로 놀라게 하지 말라는 토끼인간의 계언(戒言)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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