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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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원작 소설을 읽기 전에 먼저 영화를 봤다. 그래서 이번 독서는 필연적으로 영화와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여정이었다. 확실히 책이 영화보다 그 디테일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고 풍부했다. 영화가 원작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그 전개에 충실했다면 드 로즈네의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심리, 모두가 잊고 싶어 하는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 사건(벨디브 사건)의 속살에 방점을 찍는다.

소설은 ‘열쇠구멍’에 조금씩 다가서는 미국 출신 저널리스트 줄리아 “주주” 자몬드와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과감하게 생략된 줄리아의 성장 배경과 파리에서 15년 전에 만나 결혼한 프랑스 남편 베르트랑과의 관계를 소설은 좀 더 자세하게 들려준다.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줄리아의 게이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우연히 만난 유대인 희생자의 후손 기욤과의 대면을 통해 줄리아는 벨디브 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다. 1942년 7월, 파리 마레지구 생통주 가의 아파트에 살던 사라와 그녀의 남동생 미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작가는 60년 전에 벌어진 미스터리 사건에 도전하다.

10살 먹은 소녀 사라는 폴란드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프랑스 소녀다. 폴란드에서 건너온 그녀의 부모들은 여전히 프랑스어에 서툴지만 그녀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어엿한 프랑스 시민이다. 그런 자국의 시민들을 나치 점령군이 아닌 프랑스 경찰이 벨로드롬 디베르에 몰아넣어 핍박하고 짐승 취급한 다음, 아우슈비츠에 보내 학살에 동조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런 끔찍한 짓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국시로 삼은 나라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것인가!

영화에서는 드 로즈네 여사가 소설에서 다양하게 기술한 부분 중에서 정말 독자로 하여금 공분케 하는 몇몇 장면을 취사선택해서 보여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는 것 같은 비참함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 순간, 독자는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는 타자가 아니라 당시 벨로드롬에 갇힌 유대인을 핍박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선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어떻게 해서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행위가 벌어졌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분석보다 사라라는 소녀를 통한 희생자 삶의 궤적에 있다. 당시 체포된 13,152명의 외국계 유대인 중 두 살에서 열두 살까지 모두 사천 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이 되돌아오지 못했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는 파리의 아메리켄, 이방인 줄리아 자먼드를 통해 프랑스인들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헤집는다. 가해자의 입장에 섰던 이들의 시선으로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걸 염두에 둔 설정이었을까. 수십 년을 조국 미국을 떠나 파리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이방인인 줄리아는 우연히 알게 된 사라 가족과 자신의 시집 테자크 집안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남편 베르트랑과의 결혼은 시나브로 파경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년의 임신부 줄리아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편과 필연적 갈등 구조를 생성한다. 그래도 줄리아는 이제는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된 사라 스타르진스키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는 남편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임신한 몸을 이끌고 줄리아는 뒤포르 집안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미국 그리고 이탈리아 루카까지 내달린다.

미국 출신 기자 줄리아에게 60년 전의 벨디브 사건으로 치환된 프랑스판 홀로코스트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소설이 그리는 사라의 수용소 체험기는 영화에서 보여준 것 이상으로 끔찍하다. 체포된 유대인들의 돈과 보석을 약탈하고, 아이에게도 가차 없이 곤봉을 휘둘러 대는 경찰의 폭력 앞에 그만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줄리아와 그녀의 남편 베르트랑이 이사오려고 새롭게 단장하는 마레지구 생통주의 아파트는 과거의 비극으로 통하는 공간이다. 바로 그곳에서 사라의 동생 미셸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전쟁 전의 단란한 가정은 파괴됐으며 가족을 모두 잃은 사라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마지막 남은 프랑스의 양심을 대변하는 선량한 쥘과 주느비에브의 도움으로 사라는 비로소 구원을 얻지만,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많은 이들처럼 사라도 혼자 남겨진 세상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소설에서 사라의 삶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 또 하나의 장치는 네 살배기 동생 미셸에 대한 원죄다. 어쩌면 과거의 이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열 살짜리 꼬마도 자신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했는데, 당신은 어쩌면 우리의 형제일지도 모르는 벨로드롬의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아니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라고 말이다.

Zakhor. Al Tichkah.
기억할지어다. 절대 잊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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