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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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김태라는 필명으로 프레시안에 <십자군 이야기>를 연재하던 이가 있었다. 아주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연재가 뚝 끊겨 버렸다. 언제 다시 연재가 재개되려나 싶었는데 연재는 재개되지 않았고 그렇게 6년이 흘렀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지난해인가 헌책방에 갔을 때, 이제는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십자군 이야기> 단행본을 보고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프레시안에서 다시 <십자군 이야기>가 연재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한 <십자군 이야기>와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십자군 원정의 외형은 중세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 수복이라는 서방 기독교 세계의 대의명분을 따르고 있지만, 전쟁터의 현실과 예루살렘 해방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조명해 보면 철저하게 개인의 욕망의 현현에 충실한 전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세력을 무력화하고,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기도한 것과 너무나 유사한 현상이다.

우선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고대 지중해 시대를 풍미했던 로마역사부터 개관한다. 그런 후에,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원만하던 서방 기독교 세계와 동방 이슬람 세계의 관계에 설명한다. 그러다 로마 교황과 서방 귀족들이 획책한 계획으로 이슬람에 대한 “비인간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린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충돌의 원형을 재현한다. 종교 정치 지도자들에게 대중에게 이교도 무슬림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정치, 종교적 선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프로파간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게 부시 행정부가 이끌었던 이라크 침공을 중세 십자군 원정에 비유하는 작가의 재치는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의 계시로 시작했다는 두 전쟁이 어쩌면 그렇게 유사하지 모르겠다. 현재의 이라크 전쟁이 중동산 석유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와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유지라는 차원에서 진행되었다면, 중세의 십자군 원정은 교황권 강화와 서방 세계에 내재한 모순의 해결이 주된 이유였던 것 같다.

만치케르트 회전에서 셀주크 투르크군에게 대패하면서 제국의 중추인 아나톨리아를 상실한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서방 가톨릭과의 오랜 갈등을 접고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진 제국을 구하기 위해 가톨릭 교황에게 어쩔 수 없이 구원을 요청한다. 부시로 희화화된 당나귀를 타고 등장한 은자 피에르는 군중을 선동해서 예루살렘 회복을 주장한다. 이에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종교회의로 화답하여 마침내 십자군 원정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성도 예루살렘 탈환 작전 중에 죽은 이들은 모든 죄가 사면된다는 교황의 선언에 종교적 맹신과 광기로 똘똘 뭉친 군중십자군과 장자상속이 주류를 이루던 서방세계에서 차남을 중심으로 한 기사계급이 이 대원정에 가담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무서운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을 도외시한 당시 군중 십자군은 진격 도상에 위치한 각 서방도시에서 약탈을 일삼고, 유대인들을 학살하면서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기독교 세계인 헝가리와 불가리아에서 양민을 학살하고 도시를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른 군중십자군의 쇄도에 놀란 동장 비잔틴 제국의 바실레이오스는 순순히 그들을 셀주크투르크가 지배하고 있던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로 보내준다. 예루살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 동방으로 향하던 군중십자군은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이 이끄는 정예 투르크군에게 대패를 당하고 전멸 당한다.

어중이떠중이로 규합된 군중십자군의 패배는 어쩌면 예상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전략과 보급 체계 없이 무조건 성지를 탈환하겠다는 종교적 광신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성공을 기대하기란 정말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애꿎은 유대인에 대한 박해의 역사가 시작됐다. 같은 서방세계에 살지만, 이교도로 부유한 상인들이었던 유대인은 물자부족과 보급에 시달리던 군중십자군의 좋은 목표가 되었다. 같은 기독교도도 약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마당에,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었으리라.

공교롭게도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같은 제목의 <십자군 이야기>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이 되면서 다시 한 번 십자군 전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시오노 여사의 십자군 전쟁이 비교적 정통 해석에 따른 것이라면,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는 현대적 상황을 대입한 퓨전 스타일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이중코드 기법을 통해 중세의 십자군 원정의 텍스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라크 전쟁의 부당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작품에 곳곳에 직접 등장하는 작가의 아바타를 보면서, 독자가 타자로 주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딱딱한 역사적 사실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눙치는 작가의 언어유희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이런 친근함이야말로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무슬림 세력에 맞선 서방제국의 사자심왕 리처드의 대결이 펼쳐질, 이제 절반을 지난 십자군 오디세이의 순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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