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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 출신의 역사학자로 태평천국 전문가인 사식(史式) 선생의 <황제들의 중국사>는 기존의 역사 서적과 그 결을 달리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역사란 자고로 승자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특히 왕조가 오래될수록 그 왕조의 녹을 먹은 사관들이 적은 역사의 기록은 아무래도 해당 왕조의 군주에 대해 관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반대로 단명한 왕조의 역사에 대해 아무런 도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후대가 사가들은 냉혹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황제들의 중국사>에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중국의 제왕들에 대한 비평이 들어 있다.
책을 접하고 가장 먼저 읽은 인물은 바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 편이었다. 중국에 수많은 왕조의 개국 군주 중에서 그 바탕이 가장 비천한 사람이 바로 주원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주원장은 거지이자 승려 그리고 건달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근거지를 바탕으로 칭왕을 뒤로 미루고, 자신에 앞서 원나라의 폭정에 맞서 기의한 민족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 주원장은 교활하게도 각지에서 일어난 군웅들이 몽골족과의 격전으로 모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결실을 거뒀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몽항쟁에 나섰더라면, 다른 군웅처럼 역사 속에서 스러졌을 거라는 것이 사식 선생의 냉철한 분석이다. 선생은 제국 수립 후에, 수많은 개국 공신을 숙청하고 독재권 강화를 위해 공포정치를 실시한 주원장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명나라의 개국 군주 주원장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면, 반면에 명나라의 망국 군주인 숭정제에게는 반대로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조선출병과 수년간의 실정, 환관의 발호 그리고 여진족 후금의 침략으로 만신창이가 된 명나라의 멸망을 청년 황제가 홀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오히려 제국의 무너지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선언했던 숭정제의 용기를 사식 선생은 극찬한다. 어느 제국의 일인자가 그렇게 정치적 책임을 지려고 했던 적이 있었던가. 숭정제는 모든 것은 황제가 결정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던 황제 제도의 모순에 역행하는 드문 황제였다. 북경이 이자성의 반란군에 함락당하는 순간 자진하면서도 백성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 청년 황제에게 사식 선생은 다른 황제와는 다른 평가를 매긴다.
우리가 <삼국연의>로 익히 알고 있는 유비와 제갈량의 <삼고초려> 고사를 사식 선생은 정면으로 부인한다. 정사로 인정받고 있는 진수의 <삼국지>외에도 다양한 사료를 교차분석하면서, 유비가 제갈량을 초빙하기 위해 공명을 찾아갔다는 고사는 허구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제갈량이 아무런 밑천도 없는 유비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관우가 죽고 형주를 잃으면서 비이성적인 동오 침공으로 결국 제갈량의 원대한 국가대계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국제 정세를 냉철하게 들려준다. 경쟁국이었던 조조의 위나라나 손권의 동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촉나라가 앉아도 죽고 일어서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견 무모해 보이는 북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사식 선생은 증언한다.
아울러 촉한의 망국 군주였던 아두 유선에 대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들에게 국정을 맡겨 백성의 피해를 최소로 했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능력이 부족한 군주가 전면에 나서서 국정을 수행하려고 하다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물론 절대 군주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타인에게 위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촉한의 후주 유선에 대해 나름대로 후한 평가를 내린다. 사식 선생은 촉한의 후주 유선, 남당의 후주 이욱, 북송의 휘종 그리고 초나라의 항우 같이 역사의 패자에게도 정사(正史)라는 이름으로 승리자에 편중한 역사의 기록에 치우치지 말 것을 주문한다. 특히 사성(詞聖)으로까지 추앙받는 남당의 이후주에 대해서도 패배자가 아니라 문인으로 성공한 인물이었다는 평가가 참신하다.
요순시대의 선양제도를 흉내낸 동한과 위, 위와 진의 그것을 저자는 정치적 쇼라고 폄하한다. 이미 정치적 실권을 모두 장악하고 호가호위하는 조씨 집단과 사마씨 집단의 찬탈을 아무리 좋은 모양새로 꾸며도 후대의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시대를 풍미한 간웅으로 현대에 새로이 조명받고 있는 맹덕 조조에 대해서도 그의 평가는 냉혹하다. 유가에서 중요시하는 도의나 도덕 대신 오로지 실력과 능력만으로 인재를 채용한 위나라 정권의 말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하를 얻기 위해 내달린 조씨 집단은 역시 비슷한 루트로 성장한 사마씨 집단에게 왕조를 뺏기고, 사마씨 집단의 진나라 역시 일족간의 혈투로 엉망이 되고 흉노를 필두로 한 북방 외래민족에게 중원이 유린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래서 조조의 등장이 민중에게는 재앙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역사학자라 그런 진 몰라도 사식 선생의 중국 황제 제도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중국사가 지속적으로 정체된 이유가 성군과 암군이 교대로 등장하면서 선대에 축적된 유무형의 자산들을 후대의 암군들이 한 방에 날려 버리면서 연속성이 떨어졌다는 저자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현대 같은 민주 사회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황제 일인독재가 횡행하던 전제 군주시대에는 다반사였다.
<황제들의 중국사>처럼 역사에 대한 다양성과 새로운 시선이 담긴 책을 환영한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역사 해석보다 아날학파의 미시사 연구나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중국 역사 탐구 같은 신선한 결과물이 더 끌린다. 기회가 되면, 사식 선생의 또다른 저서 <청렴과 탐욕의 중국사>도 도전해 보고 싶다. 비오는 주말의 유익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