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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연상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작가의 조국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하면서 엉망진창으로 만든 4선 대통령이자 희대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다. 국가 지도자로서 그가 행한 악덕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1989년에 발생한 시민혁명으로 결국 독재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전제적 경찰국가 루마니아의 상흔은 오늘날에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2009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 헤르타 뮐러는 자신의 글이 정치선언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지만,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되고 비밀경찰의 감시와 체제유지를 위한 고발이 장려되던 암울한 차우셰스쿠 독재시기에 대한 그녀의 문학적 증언은 작품 곳곳에서 돌출한다. 그녀의 글에 표현된 시대의 불안이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과거 루마니아의 역사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어떤 폭발력이 발생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소설의 주인공 아디나와 클라라는 억압된 공기의 무게를 느끼며 노동영웅의 도시에서 일상을 영위한다. 사방에 널린 독재자의 사진은 시신경처럼 그가 통치하는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사람들은 일상의 불안을 떨쳐내기를 포기하고, 불안과 동거를 선택한다. 헤르타 뮐러는 이 불안의 정체를 밝히는 대신, 반복해서 곱슬머리 독재자의 초상을 언급한다.
무질서하게 들어선 공동주택, 물자부족 탓인 배고픔이 만연한 독재 치하에 대한 은유가 이어진다. 남자들은 애꿎은 화주를 물처럼 들이키고, 아이들은 풀줄기의 유액을 빨아 먹는다. 마치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이 겪었던 기아의 악몽이 다시 엄습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그들이 처해 있는 질곡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처럼 보인다.
노동영웅을 칭송하는 사회에서, 토마토 농장 경영자는 아디나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농장으로 동원해서 토마토 수확을 하는 방법으로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오페라광장의 늙은 남자들은 공허한 눈빛으로 시간을 죽인다. 철사공장의 노동자는 경비원에게 잠재적 도둑 취급을 받는다. 사랑하는 남자를 묶어 두기 위한 멜론 피의 주술은 물자부족으로 화장지 절도 때문에 화장지 대신 무 잎사귀를 사용하라는 교장의 어이없는 연설에 비하면 사치에 가깝다. 교장은 교사를 추행하고, 공장장은 사고당한 노동자가 술에 취했다고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상충하는 사회적 모순은 냉소적 니힐리즘으로 전이된다.
군 복무 중인 일리예는 가능하지 않은 아디나와의 일방적 열락을 상상한다. 병영생활에 억눌린 그의 리비도는 “열기의 무자비함”(142쪽)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해 자신을 옥죄는 사회주의 아니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바퀴벌레를 으깨어 죽인다. 추악한 오욕칠정의 도가니 철사공장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사실적이다. 한 때 공장에서 번역가로 일했던 헤르타 뮐러의 실제적 체험이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이리라.
한편, 클라라는 유부남이자 자칭 변호사라는 파벨의 애인이 된다. 몇 가지 기호품을 대가로 사실은 비밀경찰인 파벨과 관계한다. 아디나가 학생들을 가르치러 나간 사이, 그녀의 아파트에 들어온 비밀경찰은 여우 모피의 꼬리, 뒷발 그리고 앞발을 차례로 잘라간다. 결국, 아디나는 남자친구 파울과 잠적한다.
헤르타 뮐러는 차우셰스쿠 독재의 몰락을 미디어 시대의 텔레비전을 통해 담담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독재자의 숙면을 위해 그가 방문한 도시의 수탉과 개들이 수집돼서 버스에 실려 갔노라는 이야기는 차라리 희극에 가깝다. 작가는 무채색 전체주의 국가를 특유의 간결한 문장에 담아낸다.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여우”는 독재자의 눈과 귀가 되었던 비밀경찰에 대한 상징일까?
루마니아에 살면서 15살이 될 때까지 루마니아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했던 헤르타 뮐러는 나치 무장친위대 소속이었던 아버지의 잔혹함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느 인터뷰에서 “질병의 죽음”이었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생래적으로 가부장적 전체주의 특징들인 거짓, 기만 그리고 공포의 테마를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짚어낸다.
“머리카락의 무게를 눈으로 느끼”(24쪽)고
“사람 크기의 그림자가 강에서 자살하는 시각”(272쪽)에도
“모두가 엿듣고, 모두가 주시”(223쪽)한다.
확실히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헤르타 뮐러와의 친밀한 관계 설정은 쉽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에 적응하라는 그녀의 작법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면 역설일까? 모름지기 작가라면 이 정도 기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르타 뮐러가 다음번에는 또 어떤 놀라운 언어로 우리 곁을 찾아올지 벌써 기대가 된다.
[뱀다리]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원래 루마니아 출신의 스테레 굴레아(Stere Gulea) 감독이 연출한 <여우 사냥꾼>(1993)이라는 제목의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해리 메르클레와 공동 각본 작업을 한 이 영화는 어떨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헤르타 뮐러의 작품세계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