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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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시인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의 작가 김용택 선생에 대해 처음으로 들어보게 됐다. 사실 책의 내용보다도, 책에 실린 고즈넉한 수묵화에 더 호감이 갔다. 하지만, 책장을 열고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정말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땅에 대한 김용택 선생의 애정을 물씬 느낄 수가 있었다.

섬진강변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평생 교육자로 살면서, 조손 가정의 어린이들을 비롯한 우리 산천에 사계절 피고 지는 꽃들은 물론이고 콩새, 다람쥐에 이르는 수많은 관계를 이 책에 담아냈다. 김 선생은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그가 자연에서 들은 소리를 글로 담아내는 원동력이라고 김 선생은 조용히 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시 같은 운문보다는 산문을 좋아해서 그런지, 김용택 선생의 시보다는 산문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 산문을 통해, 개발만능주의에 빠져 버린 세태를 한탄하고 자연친화적인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들려준다. 그가 교육자의 처지에서 말하는 교육 현장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예전에는 학교 주변에 밭이 남아나질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감자며 고구마, 수박 같은 걸 죄다 서리해 먹는 통에 선생님이 수습하러 다니느라고 고생을 하셨다고 했던가. 하지만, 요즘에는 밤이나 감 같은 게 학교 뒤란에 뒹굴어도 누구 하나 줍지 않는단다. 그 덕에 다람쥐들은 인간과 먹이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됐지만 말이다.

삼촌과 아버지랑 강변에 나가서 수천 마리 다슬기 중에서 한 이천 마리쯤 생포했다고 좋아하는 꼬마의 일기도 재밌었다. 엄마라는 둥지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생활하는 아이들을 꼬옥 품어주는 김용택 선생이 가진 사랑의 온정이 책을 통해 전이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우리네 교육자들이 모두 이런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기세 좋게 전국에서 가장 큰 시의 교육감을 지내다가, 뇌물수수로 가막소 신세를 지게 된 인사의 근황에 입맛이 써졌다. 그런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파렴치한 범죄자가 설쳐 대니, 교육이 바로 설 리가 있나.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섬진강변의 이야기를 시각화한 김세현 선생의 수묵화로 일순 들었던 마음의 응어리를 씻어낸다. 사람에게 겸손함을 가르쳐 주는 벼를 한 다발은 안은 농사꾼, 꽃상여를 메고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모습, 천지에 핀 꽃에 둘러싸인 아이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김용택 선생의 글과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는 김세현 선생의 그림에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연에서 무엇을 취하는 게 아니라, 잠시 빌릴 뿐이라는 김용택 선생의 고백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시심과 생각이 쌓여 글이 된다는 말이 어찌나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부족한 글재주로 속세를 초월한 이의 글을 읽고, 따따부따한다는 게 순간 부끄러워졌다. 기회가 되면, 김 선생의 무대라는 섬진강에 들러 다슬기를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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