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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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노벨 문학상 발표 시즌이 되면 항상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미국 출신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필립 로스, 이상하게도 미국에서는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다는 그의 책을 우리나라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 비교적 최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에브리맨>을 필두로 해서, 작가가 사랑하는 내레이터 네이선 주커먼이 등장을 하는 미국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휴먼 스테인>이 출간됐다.

<휴먼 스테인>은 지난 밀레니엄 끝자락에 미국을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클린턴 스캔들이 세간에 회자하던 1998년 여름을 그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콜먼 실크는 미국 매사추세츠 서부 버크셔 카운티에 있는 아테나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고전문학을 강의한 존경받는 학자다. 별 볼 일 없는 시골의 대학 학장을 지내면서 질풍노도 같은 개혁으로 동료 교수를 자극하고, 학생에게는 동기유발을 부여하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유태인 출신으로는 북미에서 처음으로 교수로 임용되고, 학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제 학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편안하게 노후를 맞이해야 할 콜먼 교수는 어느 강의 시간에 단 한 마디, 유령들(spooks)이란 말실수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학문적 경력과 동료 교수와 학생들에게 졸지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게 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던 중, 결국 평생을 같이한 동료이자 사랑하는 아내 아이리스를 잃고, 분노와 복수의 칼을 갈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은둔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던 <휴먼 스테인>의 내레이터 네이선 주커먼을 찾아오면서 콜먼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휴먼 스테인>을 통해 아주 다양한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전개한다. 비아그라를 복용해 가면서 성을 즐기는 노년의 삶, 다인종사회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핫이슈 중의 하나인 인종문제 그리고 여전히 미국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남아 있는 베트남전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월척 같은 소재들이 그득하다. 서로 엇갈리면서도 동시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묘한 접점을 빚어내는 필립 로스의 테크닉에 그만 감탄을 내지른다.

콜먼 실크는 아내의 사후, 우연히 만나게 된 문맹의 청소부이자 인근 낙농장에서 일하는 포니아 팔리와 바람이 난다. 일흔한 살의 콜먼은 때마침 시판된 비아그라를 복용하면서, 서른네 살의 포니아에게 빠져든다. 자력갱생이 아닌 화학물질에 의해, 연장된 쾌락에 자신을 내던져 버린 콜먼의 왕성한 정력은 1990년대 호황으로 스카이로켓처럼 치솟던 미국 경제의 자신감을 대변한다. 물론, 인생의 황혼기에 절정을 맞이한 콜먼의 쾌락은 어느 순간에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장치들을 동반하고 있다.

콜먼이 채용한 동료 교수 델핀 루의 협박편지는 댈 것도 아니다, 베트남에서 돌아와 난폭한 폭력으로 무장한 포니아의 전 남편 레스터는 잔잔한 수면 아래서 먹잇감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순간을 노리는 백상어 같은 존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지옥 같은 전쟁터인 베트남에 다녀온 레스터에게 자기 아버지뻘인 유태인 교수가 자신의 전처와 뒹구는 상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악몽이다. 오로지 살인을 위해 베트남에 파견되었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이었다. 전쟁터에서는 동료를 처참하게 잃고, 본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아내를 차례로 잃는다. 레스터에게는 베트남의 정글이나, 자신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 조국이나 다를 게 없다. 인간적으로 레스터의 분열과 집착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레스터의 가시적인 폭력이 현재진행형이라면, 콜먼이 평생을 숨겨온 자신의 위조된 정체성은 과거형의 시한폭탄이다. <휴먼 스테인>의 영화 버전을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콜먼의 인종적 정체성(identity)은 바로 흑인이었다. 거의 백인에 가까울 정도의 흰 피부를 가졌지만, 그가 가족과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책에서 읽은 콜먼 실크의 정체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형 월트가 흑인으로서 점진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싸웠다면, 콜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백인으로 사는 길을 택했다. 물론, 그의 이런 놀라운 변신에는 셰익스피어와 정통 영어에 경도된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이 뒷받침되었다. 언어의 구사에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콜먼이 인생의 황혼기에 설화(舌禍)를 입는다는 필립 로스의 설정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한편, 서른네 살의 문맹 청소부와 바람이 난 콜먼의 성적 일탈과 <휴먼 스테인>에서 뺀질이 “윌리”로 통하는 클린턴의 그것은 기묘한 공명을 이룬다. 사실 클린턴의 바람은 그가 탄핵까지 갈만한 사유가 되지 않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가 저지른 더 큰 문제는 위증이라는 점이다. 당시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실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그 실수를 덮으려는 클린턴의 거짓말은 단호한 입장을 보였었다. 콜먼은 자신에게 씌워진 억울한 인종차별의 누명에 대해, 어쩌면 사과 한마디면 끝났을 수도 있을 사건에 그만 침몰해 버리고 만다. 그 내면에는 견고하게 구축된 자신의 위조된 정체성을 지키려는 그의 눈물겨운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물론 쾌락의 추구라는 수컷이 지닌 인간 본성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 콜먼보다도 더 흥미로운 존재는 바로 <휴먼 스테인>의 전지적 내레이터 네이선 주커먼이다. 아쉽게도 아직 읽어 보진 못했지만 필립 로스의 전작 <미국의 목가>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도 등장하는 이 저명한 소설가 캐릭터는 콜먼의 삶을 은근하게 추적한다. <휴먼 스테인>에서는 콜먼이 네이선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소설은 네이선의 내레이션과 콜먼의 독백으로 어우러진 교차 편집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필립 로스는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 네이선을 기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지적 시점에서의 감정적 개입도 서슴지 않는다. 동시에 콜먼을 통해 곳곳에 ‘암호화된 고백’을 심어 놓는 치밀함도 보여 준다. 과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다웠다.

필립 로스와의 첫 만남은 확실히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인종문제라는 미국의 해묵었지만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슈를 톡톡 건드려 가면서,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잽을 날리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했다. 거기에 미스터리 요소 같은 재미를 위한 양념까지 쳐대는 데서는 정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간혹 까마귀 타령 같은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옥에 티 정도라고 해두자. 과연 다음번에 만나게 될 필립 로스의 책은 뭐가 될지 그야말로 로또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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