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
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출신의 닉 혼비와의 세 번째 만남은 최근에 소개된 <슬램>이었다. 첫 번째는 소설 <하이 피델리티>를 영화화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였고, 책으로는 작년에 만났던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가 처음이었다. <슬램>을 통해 비로소 그의 소설과 처음 만나게 됐다. <슬램>은 닉 혼비의 다섯 번째 소설로 지난 2007년에 출간됐다.
 
<슬램>의 표지에는 이 책의 주인공 16살짜리 샘 존스가 존경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스케이트보더 토니 호크의 그림자와 샘이 동경하는 보드 무대인 하프 파이프가 조명과 함께 등장한다. 런던에 사는 십대 청소년에게는 무엇이 관심거리일까? 인터넷과 구글의 도움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진척된 세계화의 도움으로 거의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듣기 위한 아이팟은 기본이고,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맥도널드의 햄버거 등등……. 좀 더 수위를 높이면 멋진 여자 친구 정도?
 
그런데 샘은 그런 걸 한 방에 다 뛰어넘고 생뚱맞게도 아기 아빠가 된다. 자신의 엄마도 샘을 16살에 낳았던가. 엄마의 새로운 남자친구 마크는 존스 패밀리가 콩가루 집안이라는 선언을 한다. 물론 그런 마크도 콩가루 집안에 일조했다. 참, 샘의 엄마 애니도 임신했다!!! 참, 복잡하기 그지없는 설정이다.
 
작가 닉 혼비는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로 작정을 하고 샘의 우상 토니 호크의 힘을 빌려 샘과 그의 여자 친구 앨리시아의 1년 뒤로 미래로 그들을 위치 이동시킨다. 솔직히 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16살배기들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다는 설정은 황당하기만 하다. 게다가 샘은 앨리시아로부터 임신 소식을 듣게 될 것을 짐작하고 헤이스팅스로 도망가 버린다. 관계에서 빚어지는 즐거움은 취하되, 무언가 심각한 책임을 지게 될 상황은 회피하고 싶은 청소년의 심리를 닉 혼비는 예리하게 파고든다.
 
그저 래빗과 찌질이 같은 보드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고 싶은 샘에게 아기 아빠라는 짐은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현재에서 미래로 간 샘은 자신의 아들 루프가 태어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샘이 앨리시아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할 거라는 결심을 세우지 못하는 데 있다. 적어도 샘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에 엄마와 결혼하지 않았던가. 비록 그 결혼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작가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빠가 된다는 공황상태에 빠진 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싶은 틴에이저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십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스케이트 보더의 세계에 대해 세심하게 리서치를 했다는 점이 각주에 등장하는 보드 전문용어들을 통해 드러난다. 물론 번역의 힘을 빌리긴 했겠지만, 영국 십대들의 대화와 토니 호크에 대한 샘의 혼잣말 같은 하위문화에 대해 가감 없는 표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미래에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청소년기의 불안이, 부주의한 섹스와 계획되지 않은 임신 그리고 아기의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닉 혼비는 <슬램>의 구성에 적절하게 조화시켰다. 게다가 토니 호크라는 샘에게는 멘토 같은 존재를 통해 청소년 샘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책임감의 부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도움을 준다. 미래에 대한 플래시백으로 처리한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역시 닉 혼비 스타일답게 책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닉 혼비의 최신작 <줄리엣, 네이키드>의 출간을 기다리며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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