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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드디어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 읽었다. <부활>, <전쟁과 평화>와 더불어 톨스토이 3대 걸작으로 불리는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소설 이상이라고 말했던 <전쟁과 평화>보다도 진정한 소설로 간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러시아통보>에 1873년부터 1877년까지 장장 5년여에 걸쳐 연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출신의 유명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큰딸 마리아 가르퉁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소설의 후반에 해당하는 3권에서 이제 막 결혼해서 시골에 정착한 레빈과 키티네 집으로 돌리네 식구들이 여름을 보내러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레빈의 노총각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아쉬운 로맨스와 쉬체르바쓰키 식솔들의 침입으로 레빈이 꿈꾸던 평화로운 전원생활은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랴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그러한 것을!
게다가 스티바와 함께 온 베슬로프스키의 등장으로 레빈의 심기는 불편하기만 하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전형적인 질투로 고뇌하는 레빈의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한편, 부근의 브론스키 영지에 머물던 안나를 찾아간 돌리는 여전히 호사스러운 귀족생활을 하며, 브론스키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소유욕에 시달리는 안나의 모습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온다. 지방귀족단장 선거를 위해 잠시 곁을 떠난 브론스키의 부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안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대 파란을 예고한다.
키티의 출산이 임박하면서, 장소는 모스크바로 옮겨 전원생활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된 레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선 금전적으로 대도시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은 한적한 시골생활에 비해 그 비용이 많이 소용되고, 그전부터 가뜩이나 마땅치 않게 생각해오던 위선과 허위로 가득한 상류생활에 레빈은 염증을 느낀다. 스티바와 브론스키는 레빈에게 안나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안나를 처음으로 본 레빈은 브론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 안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물론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처럼 파국으로 치닫진 않지만, 그만큼 팜므 파탈로서의 안나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다.
간절하게 이혼을 소망하는 안나의 요청을 알렉세이 안드로비치는 거절하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 안나의 운명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안나의 절망적 질투는 브론스키를 옥죄고, 자신의 소멸을 통해 구원을 꿈꾸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와 열애 중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을 존속시켜주던 열정과 브론스키에 대한 신뢰가 급속하게 흔들리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자신을 내던진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커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개인의 사랑과 결혼, 사회, 진보, 신앙, 열정, 질투, 시기 그리고 위선에 이르는 그야말로 인간사의 모든 이야기가 이 소설에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안나 카레니나>의 두 주인공은 바로 안나와 레빈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자가 철저하게 개인의 행복에 근거한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후자는 만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가 있다. 톨스토이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페르소나로서, 작가는 레빈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키티와의 결혼에 앞서 자신의 무신론과 순결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은 자신의 실제 부인이었던 소피야 베르스에게 했던 고백과 유사하다.
다음으로 <안나 카레니나>가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꼽히는 세 가지 특징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나 카레니나>는 사실주의 문학에서 모더니즘 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중세를 풍미했던 종교적인 색채를 대신해서 등장했던 사실주의 문학과 동시에, 근대적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문명과 비인간화의 과정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한 모더니즘 문학의 태동을 이 작품을 통해 엿볼 수가 있다. 변혁을 갈망하는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레빈이라는 이성적 존재에 대한 화두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둘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의심의 흐름” 기법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안나의 사고를 통해 선보여 주었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각 부마다 주연으로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신속한 전환을 하면서 엄청난 분량에도 다양성을 담보한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커다란 줄기 속에서 서로 다른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연애소설, 사회소설 그리고 정치소설이라는 다채로운 변주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열정적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안나가 조금씩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 대한 톨스토이의 탁월한 심리분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세 번째 특징으로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 실재했던 러시아 농노해방, 제도개혁 그리고 세르비아 전쟁 같은 사건들을 차용하면서 리얼리즘에 극대화를 유도한다. 이런 개별적 사건들을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러시아 사회변혁에 대한 토론 그리고 개인의 사랑과 열정에 대한 감정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 접목시키는 그의 매끄러운 테크닉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소설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8부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은 브론스키가 의용대를 조직해서 과연 살아 돌아올지 모르는 세르비아 전쟁에 출병하는 장면은 이 ‘넓고 자유로운 대하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 위에 세워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와 세료쥐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안겨준 안나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없었던 건 미리 예견된 숙명이었을까?
2010년 나의 고전 읽기 목록에 이 ‘완전무결’한 작품을 올리게 돼서 뿌듯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