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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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안나와 브론스키, 키티와 레빈의 개인적인 연애사에 치중했다면 2부는 1부와는 사뭇 다르게 전개가 된다. 대하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본격적인 사회소설적 측면이 드디어 그 찬란한 여명을 발하기 시작한다.

실연을 당하고 시골에 칩거 중인 레빈은 자신을 찾아온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현학적인 자세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낙향해서 농촌 생활의 실상을 깨달은 레빈에게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는 그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카니발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쩌면 작가 톨스토이 자신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농지에서 농부들과 함께 목초를 베면서 레빈은 비로소 무욕의 마음으로 노동의 본질과 그 노동이 주는 즐거움과 상쾌함을 만끽한다. 도회에서 공부하고 자란 이가 느끼는 순수한 노동이 주는 무아의 순간에 대한 대가의 묘사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여섯 아이와 예르오쉬구보 마을로 이주한 돌리네 가족의 삶은 레빈의 그것과는 대조적이다. 돌리는 스티바의 끝없는 바람기, 애정없는 결혼생활 그리고 철없는 남편의 낭비벽으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다. 키티에게 청혼을 했다가 보기 좋게 바람맞은 레빈은 거절로 말미암은 씻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놀란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큰언니 돌리네로 향하는 키티를 보게 되고 내내 고민하던 삶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품은 사랑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버린다.

한편, 안나와 그녀의 남편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의 갈등은 도무지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지만, 결혼한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죄로 만 오쟁이 진 남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알게 된 알렉세이 안드로비치는 자신은 불행해지면 안 되고, 안나와 브론스키 역시 행복해지면 안된다는 비논리적인 접근으로 풀어지지 않는 고민의 무게를 더한다. 결국, 알렉세이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덕으로 안나에게 최후통첩을 보내지만, 사랑에 그만 눈이 먼 두 남녀를 막을 수 있는 건 이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내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권리만을 주장하는 안나의 막무가내에 점잖은 신사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의 인내는 그만 바닥을 드러낸다.

개화된 지식인으로 개조의 치열한 노력가 사물의 자연적 질서 사이에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던 레빈은 농업의 근간인 농민들의 노동과 지주 계급의 이해는 언제나 상충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실 보이지 않는 실연으로부터 도피해서, 실존적 노동이라는 농업을 선택한 레빈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던진다.

바로 이 시점에서 톨스토이는 1860년대 러시아의 농노해방령 이래, 국민개병제와 사법제도 개혁 등의 굵직한 사회 현안들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견해를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레빈이라는 양심적 지식인의 초상을 통해, 러시아 농업 전반에 대한 고민을 설파하며, 합리적인 방식의 농업 혁신, 학교를 통한 교육제도의 개선,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빈곤과 무지를 타파하기 위한 시대의 흐름을 톺아 낸다. 바로 그런 역사적 흐름에 레빈이라는 내적인 동요와 계급적 불만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한다.

농장의 공동경영이라든가 초기 노동조합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자세한 설명에서 서유럽 부르주아 경제법칙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엿보기도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공상적 사회주의 일반론의 허구성을 톨스토이는, 러시아 인민의 보편적 행복의 달성이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주제에 천착한다. 결국, 그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은 안나와 브론스키가 도전한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이렇게 톨스토이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라는 시대정신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인적 영역에서 사회로의 치환과 문학적 확대를 도모한다.

나는 그를 내러티브와 문학적 묘사에 있어 놀라운 기술의 저글러(juggler)라고 부르고 싶다. 톨스토이는 당대를 휩쓸던 자연철학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탁월한 지식을 유감없이 소설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설치한다.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산업화한 사회로의 발전을 바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하부구조에 해당하는 절대다수 러시아 농민의 의식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그의 박애주의가 빛을 발한다. 그리고 어쩌면 불타는 시대의 흐름이었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까지도 힘닿는 대로 포용하려고 노력한 어느 지식인의 노고가 가슴에 와 닿았다.

알렉세이 안드로비치는 결국 이혼 소송을 결심하고, 자신의 매제 스티바에게 자신의 본심을 모두 털어놓는다. 스티바의 아내 돌리는 자신의 결혼을 위기에서 구해낸 안나의 결백을 주장해 보지만, 패덕하여 본성이 타락한 처자라는 말로 안나를 내치는 알렉세이 안드로비치! 그들의 결혼은 결국 파경으로 치닫는다. 반면, 키티에 대한 사랑이 수많은 난관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레빈은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드디어 키티와의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레빈이 추구하던 사랑에는 과연 망각도, 용서도 필요 없었을까? 결국,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에 도달하게 되는 레빈.

비록 결혼이 사랑의 완성은 아닐지라도 사랑하는 키티와의 결혼을 통해 구원에 갈구하던 레빈은 결혼생활이 주는 환멸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 대척점에서는 알렉세이 안드로비치가 사랑과 감동 그리고 관용을 오가며 안나와의 깨진 결혼을 반추해 보지만, 안나와의 이별은 그에게 정치적 사망 선고로 다가온다. 자, 이제 톨스토이가 창조해낸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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