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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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시 한 번 꾸준하게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발간해 내는 비채 출판사의 뚝심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여느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책들처럼 전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로버트 크레이스 작가의 창작력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로버트 크레이그 작가의 탐정 엘비스 콜 시리즈인 <몽키스 레인코트>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버트 크레이스는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이미 유명 텔레비전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로 그 명성을 날렸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톤 루지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할리우드로 이주해서,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시작한 로버트 크레이스는 1980년대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을 끝내고 소설가로 변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에서 소설가로 전환은 그의 기대처럼 쉽지가 않았다. 1985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대 전환기를 마련한 로버트 크레이스는 탐정 엘비스 콜이라는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드디어 성공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오늘 소개할 <투 미닛 룰>은 그의 페르소나처럼 등장하는 엘비스 콜이 나오는 소설은 아니지만, 충분히 독자들의 관심을 자극할만한 맥스 홀먼이라는 아주 입체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맥스 홀먼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어두운 범죄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면서 평생을 범죄와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삶을 살았다. 은행을 털다가 현장에서 잡힌 맥스는 10년간의 교정생활을 통해 거듭나게 되고,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조각들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그에게 덧씌워진 전과자라는 레테르만큼이나 가혹한 시련이 보호감찰로 출소하게 되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들이자 LAPD 소속의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리치(리처드) 홀먼이 그의 아버지 맥스가 바로 출소하기 전날 어느 갱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전해 듣게 된다. 맥스가 기대했던 새 출발은 초장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아, 그전에 앞서 로버트 크레이스는 LA의 연쇄 은행강도 사건의 주범인 마르첸코와 파슨스의 사건을 가볍게 소개한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팬들은 바로 눈치를 챘겠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 절대 아무런 의미 없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범인은 아주 잠깐이라도 소설에 등장한 인물 중에 한 명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공식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과 암시의 지뢰들을 작가는 곳곳에 매설해 둔다. 추리소설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독자와 작가와의 게임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작가는 힌트는 주되 너무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임무를 띠고 게임에 나서게 된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아주 사소한 위법행위조차도 치명적인 맥스는 아들을 포함한 네 명의 경찰관들이 총격을 받은 사건을 자신의 시선에서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쫓는 과정에서 상식적이지 않는 점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건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을 체포한 전 FBI 요원 캐서린 폴라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마치 쥐와 고양이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는 범죄자 맥스와 한 때 유능한 사법 요원이었던 폴라드의 기묘한 협력관계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전과자인 맥스 홀먼에게 보통 사람들이 의혹이 어린 시선이 아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에 폴라드를 자극해서였을까. 신뢰와 불신을 넘나드는 곡예를 하면서 그들은 사건에 관련된 미지의 인물을 찾아내기 위한 숨 가쁜 레이스를 펼친다.

여느 추리물처럼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맥스 홀먼과 폴라드는 이 사건이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게다가 부패한 경찰들의 개입이라는 아들의 명예에 치명적인 오점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면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사건 해결에 몰두하던 맥스 홀먼은 자신의 신변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동시에 깊은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로버트 크레이스는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LA의 어둠 속으로 독자들을 조용하게 초대한다. 그동안 수많은 할리우드 산 영화를 통해 익숙한 지명과 마치 한 편의 긴장감 넘치는 탐정 영화를 보는 듯한 치밀한 구성과 텔레비전 시리즈 시나리오 작가로 내공을 쌓은 작가다운 속도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제목에 나오는 “투 미닛 룰”은 전직 은행강도 출신인 맥스 홀먼이 2분 내에 은행을 털어야 한다는 강박적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소설 <투 미닛 룰>에서 시간은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맥스 홀먼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고장 난 타이멕스 시계를 차고 다니고, 교도소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세월을 자신의 아들 리치와 죽은 리치의 엄마 도나 배닉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혀 있다. 좀 더 일찍 마음을 고쳐먹고 죽은 아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은행강도에 차량 절도 전문가인 맥스의 양심을 사정없이 짓이겨 누른다. 그런 위태한 맥스의 심리 상태를 폴라드 요원이 정상에서 빗겨 나가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로버트 크레이스는 캐릭터 간의 균형에도 절묘한 운용의 미를 보여 준다.

엘비스 콜 시리즈에서 이탈한 스탠드 얼론 <투 미닛 룰>로 로버트 크레이스와의 첫 만남을 가졌는데, 그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이 계기를 통해, 그의 엘비스 콜 시리즈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모중석 스릴러에서 로버트 크레이스의 또 다른 스탠드 얼론 <데몰리션 엔젤>이 출격 대기 중이라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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