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모세.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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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철학(아마도 종교적 구원)을 포함한 기독교 이천 년사를 책 한 권에 넣는 작업은 수월치 않았으리라.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생소할 따름인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엄청난 미션에 도전장을 던졌다.

역시 작가는 철학자답게, 종교적 측면보다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기독교가 최근 들어, 그 원류를 자랑하는 서구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왜 그렇다면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먼저 진행이 된 서구사회에서 기독교가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걸까. 그 유래를 작가는 2,000년 전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강림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긴 철학적 유산에서 찾고 있다.

먼저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의 전설로 <그리스도 철학자>를 시작한다. 재림한 예수를 기존의 종교인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역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이미 입증된 바가 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온 메시아를 당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패러디다. 그리고 작가는 현재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되고 있는 복음서들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메시지들의 역사적이면서도 철학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평등, 개인의 자유, 여성해방, 사회정의, 권력의 분리, 비폭력과 용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이웃사랑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생애를 통해 직접 실천했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개념조차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에 예수가 제시한 윤리들은 기존의 가치들을 전복하는 가히 충격적인 이데올로기들이었다. 아울러 당시 기득권층에게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 들여졌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탄압하고 보자라는 행동양식을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종교적으로는 야훼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이루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유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격렬한 반발의 결과였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기독교는 기존의 유대교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들에서 그 변별력을 가지게 된다. 세례, 성찬예식 그리 제자도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의 말을 듣고 따른다는 실천의 층위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선언이다. 이렇게 복음서에서 거듭되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 덕목들은, 로마제국 시대에 들어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으면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박애를 기독교 가치의 전면에 내세웠지만, 중세시대 세속권을 장악하고 있던 교회는 복음서에 나오는 “있는 그대로”의 말씀보다 제도와 질서 유지라는 명목 하에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주요 가치에 반하는 행동들을 일삼게 된다. 특히 중세교회의 결정적 오류로 평가되는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그리고 십자군원정에 있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박해 이론을 도입해서 이교도와 기독교적 가치를 불신하는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적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사항들은 중세교회의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한편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성과 신앙의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아울러 수도원 운동을 통한 가톨릭교회의 자정적인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직자들의 타락과 권력욕 그리고 교조주의는 명백히 복음서에 나오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고대인들의 지혜에 반하는 것으로 결국에 가서는 종교개혁의 철퇴를 맞게 된다.

아울러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로마 교황청의 반종교개혁적인 태도와 근대화에 기여한 비판적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서구인들 사이에서는 가톨릭교회가 근대화를 저해했다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한다. 사유를 통해 이성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데카르트를 효시로 하는 근대철학의 상당 부분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중요시한 그리스도 본래 가르침의 재발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주장이다.

기독교의 근대화 과정 서술 중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칼뱅의 예정설로, 인간의 구원은 신의 의지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아울러 기독교의 탈신비화를 주도했던 니체와 더불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금욕주의에 입각한 노동으로 자본주의의 합리화를 통해 기독교의 탈마법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특이할만한 발언들이었다.

하지만 작가에 의하면 지금도 여전히 서구인들의 사고 속에는 부지불식간에 기독교적 가치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무신론자들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정통 종교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을 진 모르지만 신의 존재에 부인하지 않고, 사회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축제, 예술의 양식들의 존재 그리고 비가시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책의 독자들을 프랑스 독자들, 나아가서는 유럽의 독자들에게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 외의 독자들은 자동적 소외를 경험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책이, 프랑스 밖을 벗어나 멀리 한국에서까지 읽혀질지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 철학자> 대단원의 막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이 짧은 예화에,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모두 담겨져 있다. 그 중에서 복음서에 나오는 결정적 가르침 두 가지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인식의 자유에 기초한 영적 삶의 내재화다. 작가는 이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하는 작금의 가치 전도 현상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동시에 작가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오늘날을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 간의 통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과 신앙의 화해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가름침 -> 가르침 (38쪽)
2. 가나한 -> 가난한 (93쪽)
3. 회회 -> 회화 (290쪽)
4. 대재사장 -> 대제사장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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