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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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제목에서 어쩔 수 없이 존 그레이의 그 유명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의 책과는 달리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는 남녀관계의 대한 책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21세기 오늘날의 서울에 대한 스케치였다.
책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누구나 다 서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서울은 과연 어떨까라는 문제 제기에서 이 책은 출발을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녀들의 수다>처럼 천편일률적인 한국 예찬론이 아닌 한국에서 생활을 하는 7인의 이방인들을 두 명의 인터뷰어들이 만났다.
현재 영어 광풍이 불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방인들은 바로 영어선생님일 것이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닌 듯,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로버트 프리먼이란 미국 영어선생님과 시작을 한다. 질문은 대개 어떻게 해서 한국에 오게 됐느냐로 시작해서 한국에서 좋고 나쁜 인상들 그리고 점차적으로 내면을 때리는 질문들이 수놓아진다.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이방인의 모습은 향수일까 아니면 자신의 문화에 집착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온라인 싸이월드의 공간을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해 낸 에밀 고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아티스트다. 이 에뜨랑제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은 과연 어딜까? 이태원? 아니면 클럽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홍대입구? 비슷하게 패턴화된 질문들 가운데 인터뷰이들의 대답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흘러나온다. 우리의 얼굴 모습이 제각각인 것처럼 개성 넘치고 다양한 대답들의 행진이다.
아예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서 살림을 차린 세밀화 아티스트 곤도 유카코는 일본 출신이다. 아이까지 낳아, 육아로 바쁘다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얼핏 얼핏 드러난다. 획일화된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좋아하는 그녀의 말에서 정작 우리 것보다는 문명의 편리라는 이유로 서구화된 것들을 추구하는 우리네 모습이 과연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로써 일본에서도 부르기 쉬운 아이 이름을 정하는 고민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일본보다 훨씬 더 끈끈한 가족애와 소통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를 비교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생활인으로서 그녀가 보는 쓰레기 이야기는 참 재밌게 느껴졌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누군가 쓰레기 봉지를 하다 내다 버리면 바로 쓰레기 더미가 되어 버린다는.
동아시아 영화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얼 잭슨 주니어 역시 특이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서슴 없이 자신을 안티 아메리칸이라고 소개를 하는 그는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 아내와 더불어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의 삶을 살고 있다. 여타 이방인들과는 달리 채식주의자로 한국 음식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절로 구수한 된장냄새가 나는 듯 했다. 옛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현대적 도시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삶의 현장 서울에 대한 생생한 단면들을 그의 입을 통해 되새겨 볼 수가 있었다.
이 책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만딩고 댄서 바또 브레이즈를 들 수가 있겠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바또 브레이즈는 특이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면서, 영어를 한국에 와서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영어가 다시 한 번 만국공통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그는 커뮤니케이션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이태원을 꼽았는데, 그만큼 이방인들에게 친근한 공간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타인의 시선으로 좀 더 진지하게 우리네 모습을 바라보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인터뷰 대상자들이 모두 영어강사, 교수, 아티스트 혹은 댄서 등 전문직 종사자들만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설마 그들만이 서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어떻게 보면 이방인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이 책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었다.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서라도, 2~3명 정도는 그들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녀들의 수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인터뷰어들의 진행 때문이었는지 최대한 절제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좀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당하고 있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더 진정성을 가진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