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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팩션 장르는 언제나 그렇듯이 매력적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라파엘 카르데티의 <마키아벨리의 눈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미국 출신의 정치 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가 표현한대로 “악의 교사”라는 명성과 <군주론>의 저자로 알려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의 흡입력은 가히 놀랄만하다.
피렌체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1498년 4월의 피렌체 공화국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근 반 세기에 걸친 메디치가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피렌체는 공화정 체제를 수립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라는 도미니크 수도회 출신의 수도사가 있었다. 그는 기존의 가톨릭교회의 부패상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의 선구자로써, 신정과 민주공화정이 결합된 이상적인 정치 시스템의 중요성을 민중들에게 설파하고 있었다. 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로드리고 보르히아)에게 그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런 정치, 시대적 배경을 뒤로 하고, 소설은 끔찍하게 고문을 당하는 어느 무명의 화가의 죽음으로 글의 포문을 연다. 고금을 통틀어서 역시 살인이 관계된 미스터리만큼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적 소재도 없는 것 같다. 카피에 나온 “한니발보다 잔인하고”라는 문구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상세하게 비주얼화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을 이끌어갈 주인공들을 작가는 차례로 등장시킨다. 피렌체 공화국의 수장 소데리니, 그의 용병대장 말라테스타 그리고 끔찍하게 손상된 시신에서 범죄에 대한 단서들을 현대 법의학자 못지않은 실력으로 꼼꼼하게 잡아내는 코르비넬리가 그들이다. 이런 조연들에 이어 공화국의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등장을 한다. 그의 사이드킥인 치치오와 베토리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캐릭터들이다.
한편 메디치 도서관의 귀중한 진적들을 보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노철학자 피치노는 단테가 남긴 <제정론> 수사본을 망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키아벨리들은 화가가 남긴 단서를 찾는 도중에, 의문의 연쇄살인은 계속된다. 공화국 최고행정회의 시뇨리아의 일원인 고리대금업자 지아니 코르솔리 그리고 피렌체 시내에서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산드로 트레비 등이 차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페셔널한 살인자들에게 죽음을 맞는다.
프랑스 국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그리고 로마 교황이라는 주변 강자들의 파워게임에서 들볶이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피렌체 공화국은, 일련의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내분까지 겹치게 된다. 프랑스 국왕의 사절로 피렌체를 방문한 생말로 추기경의 자신들의 편에 서라는 압박이 가해진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범인을 뒤쫓는 과정에서 모든 사건들의 단서를 쥐고 있는 피렌체 유곽에서 유명한 보카도로(황금입술)라는 미모의 여성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들에게 우호적인 지인들의 도움으로 살인자들보다 그녀를 먼저 찾기 위한 숨 막히는 경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표지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영화 <식스 센스>를 능가하는 놀라운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400쪽에 가까운 책을 이 결말 부분을 위해서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신인 작가 라파엘 카르데티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구성미를 보여 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의사 코르비넬리의 부하 데오그라시아스가 죽은 화가가 남긴 마돈나 성모마리아 그림의 구성을 통해 은근하게 비춰주기도 한다. 어디 그림만 그러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소설과 같은 글이 더 그렇지 않을까. 계속해서 벌어지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뒤를 쫓은 마키아벨리들의 추적 그리고 작가가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는 단서의 편린들의 배치가 무척이나 돋보였다. 피렌체 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주인공 마키아벨리와 사보나롤라에 대해서는 카르데티는 새로운 해석의 시각을 제시한다. 권모술수와 악의 교사로 알려진 기존의 마키아벨리의 이미지 대신 공화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냉철하면서도 이지적인 모습의 청년 마키아벨리의 모습이 새롭다. 극단적인 신정정치의 제청자로 알려진 사보나롤라에 대해서도, 작가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자신이 대하는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종교지도자의 모습이 부패한 중세교회의 그것과 너무나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상 사보나롤라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과정이 너무 급격하게 진행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팩션 장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는 진짜 역사와의 관계의 문제가 하나 보였다. 사보나롤라는 1497년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에게 파문을 당하고, 다음 해인 1498년에는 교황이 체포와 처형을 명령했다. 소설에서처럼 그가 거주하고 있던 산마르코 수도원을 습격한 폭도들에게 항복한 그는 그 후 수주일 동안 동료 2명과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동년 5월 23일 이단죄와 종파분리죄를 시인하고,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에 나오는 사보나롤라의 죽음과는 차이가 있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팩션과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옥의 티] 챕터마다 원형 안에 들어 있는 라틴어 문구가 나오는데, 번역이 빠져 있어서 너무 아쉬웠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피렌체 델라 시뇨리아 광장에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장소에 있는 명판에 새겨진 글인데, 분명 작가가 특별한 뜻이 있어서 넣은 것일텐데 그 뜻이 무언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