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 Twil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여류작가 스테프니 메이어의 인간과 뱀파이어의 로맨스를 그린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대해 꽤 오래 전부터 들어 왔지만 청소년들이나 읽는  하이틴 로맨스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에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 <트와일라잇>은 이 후 <뉴문>과 <이클립스> 그리고 <브레이킹 돈>에 이르기까지 그칠 줄 모르는 행진을 계속했다. 결국 이번에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고 해서, 책읽기는 보류하고 영화부터 먼저 보게 됐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그 어떤 영화도 책의 감동과 디테일을 넘어서지 못했기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도 원작이 갖는 아우라를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 주었을까? 개인적으로 영화 <향수>도 좋아하지만, 그건 원작의 아우라에 대해 한 수 접고 들어가니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애초에 두 시간 남짓한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처럼 느껴졌다.

<트와일라잇> 역시 그렇게 한 수 접고 들어가니 아주 재밌게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원작을 미리 읽지 않았다는 메리트(?)가 작용한걸까. 영화를 보기 전에 슬쩍 리뷰들을 보니 거의 영화에 대한 비난일색의 리뷰들이 차고 넘치고 있었다. 책을 먼저 읽은 지인들의 평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처음부터 뱀파이어 영화라는 건 알고 있으니 과연 누가 뱀파이어인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겠지? 일단 영화의 배경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비가 내린다는 워싱턴 주 포크스라는 작은 마을이다. 여주인공 (이사)벨라 스완은 태양이 빛나는 도시 애리조나의 피닉스에서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경찰서장으로 일하고 있는 포크스에 전학 온다. 책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애리조나에서 온 이 낯선 이방인에게 포크스 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새로 등장한 인물에게 왕따 같은건 보이지 않고, 바로 그들의 클릭(click)에 넣고자 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그만큼 벨라의 매력이 출중하다는 걸까? 뭐 여느 여주인공 같은 대접은 받아야 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자, 우리의 뱀파이어는 누굴까 퀘스트는 계속된다. 한눈에 척봐도 희여 멀건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컬린들이 눈에 확 띄는구나. 게다가 5명이나 입양된 아이들이라고 하니 놀랍다. 물에 뜬 기름처럼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지들끼리 몰려다니니 당연한 일이겠지.

자, 그럼 벨라의 미래의 뱀파이어 남친은 누굴까? 당첨, 한눈에 척봐도 남주인공의 포스를 가지고 있는 에드워드 컬린이로구나! 하지만 이 친구는 생물 시간에 벨라와 짝꿍이 되었으면서도 그녀를 기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마 벨라는 첫 눈에 바로 사라에 빠져 버린 듯. 그에게 항의를 하려고 하지만 에드워드는 아예 며칠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나타나서는 아주 살갑게 구는 모습이란. 벨라는 혼란에 빠져 버린다.

그러던 중, 벨라는 교통사고로 위기를 맞이하지만 그 순간 바람처럼 나타난 에드워드가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그것도 놀라운 스피드와 자동차를 찌그러뜨려 버릴만한 괴력으로 말이다. 벨라의 꿈에 에드워드는 무시로 나타나고, 미스터리와 수수께끼로 가득한 그들의 관계가 설정된다. 한편, 포크스 마을의 곳곳에서는 짐승들의 공격으로 인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과연 누구의 짓일까? 일단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는 심증은 있으니 과연 그들의 짓일까 하는 생각이 관객들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네이티브 아메리칸인 제이콥 블랙의 도움으로 퀼루트 인디언 전설을 알게 된 벨라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드워드의 정체를 알게 된다. 포트 앤젤리스에거 구한 책과 구글을 통해 불사, 스피드, 놀라운 괴력, 얼음장처럼 차가운 피부 그리고 불멸의 존재 뱀파이어의 비밀을 알게 된 벨라. 그녀에게 의외로 쉽게 자신의 정체를 내보이는 에드워드, 책에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를 했을지 궁금하다.

에드워드는 컬린 패밀리가 좋은 뱀파이어라고 소개를 한다. 물론 잠을 자지 않는다든가, 음식물 섭취를 하지 않는다는가 하는 뱀파이어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한편 포크스 마을에서 살인을 한 나쁜 뱀파이어들과 비오는 날 야구시합을 하러 간 우연히 만나게 된 벨라와 컬린 패밀리! 부드럽게 진행되던 고혹적인 러브 스토리는 위기와 절정의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시작한다.

1897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당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관계는 그런 계급적 차이와 남성과 여성간의 차별(혹은 흡혈)로도 해석이 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에로틱한 매력까지도 갖춘 뱀파이어 이야기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꾸준하게 확대 재생산되어져 왔다. 과연 21세기 뱀파이어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던 찰나에 스테프니 메이어가 놀랄만큼 진화한 새로운 뱀파이어의 유형을 제시해 주었다.

빛에 노출이 되어도 재로 변하지 않고, 오히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멋진 이상적인 모습과 생존을 위해 굳이 흡혈을 하지 않아도 되는(혹은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아도 되는) 신식 베지테리언 뱀파이어들이 등장한다. 아, 물론 소설의 극적 전개를 위해서 나쁜 뱀파이어들의 존재 역시 배제하지 않는 치밀함을 선보여 주기도 한다. 뱀파이어 에드워드가 가진 괴력은 여주인공 벨라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여주인공이 위기에 빠졌을 때, 번개처럼 등장해서 그녀를 구해주는 모습은 <슈퍼맨>의 그것과 진배없다. 게다가 자신의 집에(하우스 오브 뱀파이어?) 초대를 해서, 낭만적인 드뷔시의 달빛(Claire de Lune)까지 들려주니 이에 반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극중에서의 주인공들의 외모야 주관적이니 넘어가자. 게다가 트래커 뱀파이어인 제임스의 추격을 받으며, 애리조나로 떠나는 벨라에게 “Bella, You're my life, NOW!"라는 대사는 정말 최고였다.

후속편인 <뉴문>에서 이야기가 더 진화가 된다고 하는데 유한한 존재인 인간과 불사의 존재인 뱀파이어 사이에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영원불멸(immortal)의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카일 컬린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에드워드는 근 100년간을 17살의 모습으로 지내지만, 벨라는 그렇지 않다. 에드워드와 벨라의 사랑이 유한해 보이는 것처럼 어쩌면 벨라 역시 불멸을 꿈꾸는 게 아닐까? 발에 깁스를 하고 졸업 무도회장에 등장한 벨라가 에드워드에게 자신의 흰 목을 내미는 장면은 순간미학의 정점이었다.

영화의 첫 대사에서 벨라가 말한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 있는 곳에서 죽는 것”이라는 유한한 삶에 대한 말은 아마 이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반복될 것 같다. <트와일라잇>은 판타지이면서도 한편으로 현실 세계 속에서의 일들이 그려진다. 마치 한 편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멋진 사랑을 꿈꾸면서도 현실에서 분리될 수 없는. 벨라는 에드워드와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뱀파이어가 되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벨라를 사랑하지만, 뱀파이어인 에드워드는 그녀의 피를 원한다. 이렇게 영화의 곳곳에서 보이는 이성과 감성의 충돌은 독자들을 욕망과 절제의 위태로운 경계선으로 몰아넣는다.

게다가 영화는 후속편의 예고를 위한 교묘한 장치들의 배열에도 신경을 쓴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제임스만큼이나 나중에 벨라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빅토리아가 졸업 댄스파티(prom)에 슬며시 모습을 비춘다. 미래를 예견하는 알리스는 벨라도 에드워드와 같이 될거라는 모호한 예언을 남긴다.

현재 2탄인 <뉴문>이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촬영 중에 있다고 한다. <뉴문>에서는 에드워드와 벨라의 로맨스보다 뱀파이어들의 숙적인 늑대인간(라이칸)과의 갈등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올 후반기에 개봉예정이라는 후속편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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