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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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교수의 헌법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붙은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었다. 자신은 굳이 “프리랜서 지식소매상”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만, 현재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니 유 교수님이고 호칭해도 무관할 것 같다. 작년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서 “민주주의 절차”를 강조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왜 그가 그렇게 민주주의의 절차를 강조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우선 간략하게 책 이야기를 해보면, <후불제 민주주의>는 1부 <헌법의 당위> 그리고 2부 <권력의 실재>로 나뉘어져 있다. 흔히 책 소개로 사용하는 헌법 에세이는 전자에 해당하고, 자신이 정치무대에서 실전을 치르면서 경험한 이야기들과 우리나라 정치현실들이 2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1부에 첫 대목에 등장하는 행복, 자유 그리고 주권이야말로 아마 유 교수님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보편적 진리들에 대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이 본질적인 질문은 책을 관통해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한다. 다시 말해 주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위정자들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선언이다.

문제는 이런 보편적 진리들이 당위가 아니라 존재론적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선배 민주주의 국가들인 프랑스, 영국 같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치열한 삶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얻은 것이 아니다. 1948년 일제로부터 해방 후, 제헌의회에서 이런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들을 거저 얻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이 귀중한 가치들을 얻었기 때문에, 반세기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 가치들에 대해 유예된 지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 표현 중에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있다.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 사회적 진화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면서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에 가까운 민주공화국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행복, 자유 그리고 주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유 교수님은 이런 주장에 기초해서, 새로운 정부 아래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문명 역주행’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다분히 권력자의 선의에 의해 그 기초를 다지기 시작한 가치들이 신자유주의 경쟁주의 무장한 보수와 수구 언론 그리고 MB정부 하에서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가 지금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의 대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의 현실을 냉정하고 판단하고, 철저한 자기성찰을 통해 각자가 가진 힘을 모아 연대해서 사법파시즘이 횡행하는 정상에서 이탈한 민주주의를 제 궤도에 올릴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한 번 잘못된 것을 다시 되돌리는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정확하게 우리가 자각하고 실천하는만큼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은 진보하고, 그만큼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개인적으로 2부 <권력의 실재>는 1부만큼의 감동을 받지 못했다. <권력의 실재>는 유 교수님이 6년간 정치활동을 하면서 몸소 느끼고, 보고 들은 실전체험담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십년간 국외자였던 나에게 그가 말하는 사실들은 모두가 새롭고 놀라운 일들이었다. 심지어 그가 주장하는 정당민주화과 선거제도 개혁 등의 주장들은 그가 너무 시대를 앞서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현실을 비추어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가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의 실재>에서 유 교수님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공감을 한 부분은 “도서관”이었다. 불필요한 사교육에 의해 마치 정글의 약육강식을 방불케 하는 경쟁이 아닌, 어린이들부터 성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미래의 민주시민으로서 소양과 지식을 키울 수 있는 공공도서관을 곳곳에 마련하자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는 외형적인 도서관이 아닌 콘텐츠의 문제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도서관들이 본래의 목적인 독서와 정보의 수집이 아니라 각종 시험공부를 하기 위한 ‘독서실’로 전용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볼 때마다 입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도서 구입 예산은 삭감하면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하나 없다고 개탄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옥의 티처럼 <권력의 실재> 부분에서는 유 교수님의 정치참여와 지난 참여정부 시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왠지 변명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서일까 1부 <헌법의 당위>에서 제기한 이슈들이 2부에서 유기적인 추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별개의 문제처럼 다뤄지면서 어느 순간 소멸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후불제 민주주의>는 여전히 매력적인 책이다. 그동안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담고 있는 헌법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60여권의 책을 읽었는데, 읽으면서 가장 큰 독서의 보람을 느낄 수가 있는 책이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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