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길라잡는 유대인 - 유대인의 삶과 돈, 그리고 神
최재호 지음 / 한마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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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적절한 시기에 유대인을 주제로 다룬 책을 만나게 돼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지난 해 말, 가자 지구의 무장조직인 하마스를 축출시키겠다는 의도로 이스라엘은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올해 들어서는 결국 지상군까지 투입시키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네 번의 중동전쟁 다음으로 가장 큰 위기라는 뉴스 보도가 피부에 와 닿는다.

정치외교를 전공하고, 이스라엘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는 최재호 씨는 이스라엘 유대인과 중동 아랍인들의 뿌리 깊은 원한의 관계를 4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성서시대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같은 셈족 조상으로 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모두 유대인의 시조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가계에서(이삭/이스마엘) 출발을 한다. 아브라함의 팔레스타인 정착으로 시작된 유대인의 역사는 이집트 노예기, 다윗과 솔로몬의 강력한 왕조, 분열기 그리고 다시 바빌론 유수 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경험한다.

이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현 이스라엘의 고대로부터의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근거하기도 한다. 동서양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필연적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려는 제국들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유대 국가는 결국 로마시대에 이르러 반로마 저항 끝에 디아스포라(diaspora)로 나라를 잃고, 전 세계 각처로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이 신세를 겪게 된다.

농경민족이 아닌 태생에서부터 유목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를 경험하면서 구약성경이라는 자신들만의 역사를 다룬 고유의 경전의 모태를 가다듬고, 자신들의 생활과 사상을 집대성한 탈무드(The Talmud)를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기원 전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서 비롯된 기독교 신앙은 아직도 예수를 자신들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과 일대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기독교 전파 초기에 대립하던 기독교와 유대교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중세 이래 전 유럽의 종교로 인정받게 되면서 반유대주의와 박해 그리고 차별로 점철된 역사가 펼쳐지게 된다. 2000년 가까이 자신의 근원지인 팔레스타인이 국가 없이 세계 각처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917년 벨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고,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3년 후인 1948년 드디어 대망의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디아스포라 이래, 팔레스타인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오늘날 불안정한 중동문제의 시발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1부를 통해 4천년에 가까운 유대인들의 역사를 다룬 후, 2부에서는 신앙과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 나선 유대인들의 여로를 그리고 있다. 언제나 기존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거주지였던 게토에서 지내야 했던 유대인들에게 1492년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그야말로 천상의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에, 유럽 각지에서 이교도로 박해를 박고 있던 유대인들은 기꺼이 정든 땅을 떠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신대륙으로 이주를 감행한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으로 이주했던 남미 대륙을 구교도가 득세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양분하게 되면서, 그들은 다시 눈을 청교도들이 상륙해서 개척하고 있던 북미 오늘날의 미국으로 옮겨가게 된다. 게다가 청빈과 윤리를 극도로 강조하던 청교도 정신은 유대인들의 사상과 부합되는 점이 있었기에, 신대륙 이주 초기 유대인 노동력은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다 건너 뉴 암스테르담 그러니까 오늘날의 뉴욕 맨해튼으로 향했다.

기존의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언제나 후손들의 교육을 가장 우선시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미국의 학계 그리고 금융업은 물론이고 노벨상 수상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은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미국의 건국 이후, 사유재산과 시장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 미국 땅은 유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특히, 모건과 록펠러로 대변되는 유대계 자본가들은 거의 전 미국의 산업을 장악하면서 부를 앞세워 정치권력까지 좌지우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자신들의 거대한 기업을 세우기 위해, 독점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동족들을 학살한 히틀러와도 거래를 하는 등 그야말로 부의 축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자본가들은 부의 사회 환원이라는 대명제를 지키는 모습도 한편으로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유대인과 세계>라는 제목으로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유대인들의 세계화 모습을 설명한다. 디아스포라 이래, 오로지 실질적인 능력과 지식을 중요시해온 유대인들은 그 무엇보다 자식들의 교육을 가장 우선시했으며, 국가보다는 민족개념을 중시하고, 기독교에서는 중요시하지 않았던 부의 축적이 자신의 생명과 안정을 보장하는 유일한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명제들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스라엘에 건국에 이르는 성공사례와 자원이라는 전무한 가운데, 이웃의 위협적인 아랍 국가들과의 적대적 관계 속에서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은이는 우리나라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미래에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글을 맺고 있다.

책의 1부와 2부에서는 유대인들의 역사와 민족의 태동 과정, 신대륙 발전의 참여 그리고 미처 모르고 있던 모건 가와 록펠러 가와 같은 유대계 자본가들의 명암을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은 경험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나라의 상황들을 비교하면서부터는 전형적인 뉴라이트적인 시선에서 역사를 보는 저술방향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은 해방과 정부수립을 거치면서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면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실패를 했다. 나치로부터 해방된 이후, 프랑스의 예를 굳이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박정희의 쿠데타와 개발독재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도 도를 지나친 것 같다. 물론 개발과 수출입국을 통한 부국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박정희는 어디까지나 쿠데타로 정당한 정부를 전복시킨 인물이다.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해서 군인들이 벌인 쿠데타가 용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전두환을 통해 불필요한 동어반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또한 경제발전 후에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언급했는데 이 또한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1930년 최악의 인플레이션 끝에 독일에 경제부흥을 가져다 준 것은 군국주의 파시즘 독재자인 히틀러였다.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경제만을 외쳐대는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꼬집자면, 정치외교학자가 자신의 전공에서 벗어난 역사에 대한 글을 쓸 적에는 좀 더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0페이지에서 보면 “오스만 터키의 살라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살라딘과 오스만 터키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살라딘은 1193년에 죽었는데, 오스만 터키는 1299년에 성립되었다. 왠지 뉴라이트에서 작금에 벌이고 있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의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지의 소산 그것도 아니면 역사적 고증의 부족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유대인들의 역사와 생존의 밑그림은 좋았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지면서 용두사미가 되는 바람에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던 책읽기였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도킨슨 -> 도킨스 (78페이지)
2. 오스만 터키의 살라딘 -> 셀주크 투르크의 살라딘 (80페이지)
3. 프랑크플루트 -> 프랑크푸르트 (93페이지)
4. 비로 -> 바로 (138페이지)
5. 골드핑그 -> 골드핑거 (212페이지)
6. 위너 브러더즈 -> 워너 브러더즈 (217페이지)
7. 조지 소르스 -> 조지 소로스 (35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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