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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어려서 알게 된 루스 베네딕트 여사의 <국화와 칼>. 일본인들의 내면세계를 파헤친 수작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정작 그 책과 대면하기에는 20년이란 세월도 더 걸린 것 같다. 그만큼 고전과의 대면의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말하기에 앞서 이 책이 씌여지게 된 배경부터 말하는 게 순서인 것 같다. <국화와 칼>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중이던 1944년 미국 전쟁성의 의뢰를 받아, 일본인들의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고, 종전 후 일본 점령기를 준비하기 위한다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씌여졌다. 종전 후인 1946년에 발간되었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베네딕트 여사는 일본인 특유의 수치(하지)와 죄의식에 대한 관점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과 미군이 육전에서 대규모로 처음 맞붙었던 과달카날 전투에서 ‘덴노헤이까 반자이’를 외치며, 기관총탄이 빗발치는 미군 진지로 목숨을 초개 같이 던지면서 무모한 육탄공격을 벌이는 일본군에 대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합리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들을 목도했다. 그러한 상황들은 타라와, 펠렐류 그리고 남방의 각처에서 벌어졌다. 도대체 무엇이 일본군들로 하여금 그런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게 하였는가.
유럽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던 나치 독일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문화적 충격에 미국의 전쟁지도부에서는 일본과 일본인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루스 베네딕트 여사는 <국화와 칼>을 통해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미국 페리 제독의 내항 이래 강제적으로 개방하게 된 일본의 도쿠가와 바쿠후는 근대화라는 세계적 흐름에 굴복하게 된다. 아울러 천황 중심의 왕정복고를 원하는 조슈와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결국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단기간의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이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천황과 신토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국가중심주의적 도덕체계를 수립한다.
우선 가장 우선적으로 일본인들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계층구조의 관습을 지키도록 태어나면서부터 교육받아온 사실을 주지시킨다. 천황을 중심으로 해서, 최고 정치지도자인 쇼군, 영주인 다이묘, 사무라이, 농민, 상인 그리고 천민들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도록 사회적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는 천황에 대한 주[忠]로 이어지게 된다. 주와 더불어 중국에서 도입된 고[孝]는 자신과 부모간의 도리를 규정짓는다.
이런 계층구조의 관습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각지 정복에 나선 일본과 그 점령지 하에서의 갈등의 시초가 된다. 일본은 각 나라에 대해 일본국가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계층구조에 따른 형과 아우,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조를 받아들일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했지만, 그들의 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될 리는 만무했다.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저항에 일본 제국주의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으로 대응을 했다.
다음으로 온[恩]이라는 채무적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천황에 대한 온이 바로 전쟁 당시 일본군들이 천황을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온과 유사한 개념으로 기무[義務]가 있는데, 기무는 천황에 대한 주와 부모에 대한 고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기무에 있어서도 부모에 대한 고보다도 천황에 대한 주가 우선시된다.
자, 여기서 기무와는 또 다른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리[義理]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기리는 자신이 예전에 받았던 친절로부터 시작을 해서, 모욕에 대한 복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를 아우른다. 하지만 기무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다시 말해서 본인이 원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행해야 하는 점이 구별된다. 기리의 경우, 적합한 시기에 되갚지 않으면 그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상에서 나열된 사항들을 실제 상황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미영연합국이 중경으로 이동한 장개석 정부에 대한 물자공급 루트인 레도 공로를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저항을 하는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버마-인도 침공 작전인 임팔작전을 개시한다. 당시 버마방면군을 이끌던 15군 사령관 무다구찌 렌야 중장은 개전 초기 말레이 전선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운 전형적인 사무라이 스타일의 장군이었다. 15군 휘하 31사단을 이끌던 사또 중장은 임팔작전 초기 인도의 코히마를 점령하는 수훈을 세우는 활약을 보였지만, 계속되는 연합군의 물량작전에 전 부대가 고사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사또 중장은 천황에 대한 주를 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항명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한다. 20세기 전쟁에서, 13세기방식의 보급을 가지고 우세한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 20세기 신식 군대교육을 받은 지휘관의 고뇌였다. 하지만 사또 중장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무다구찌 사령관이 보급 약속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뜻대로 후퇴를 감행한다. 이것은 바로 봉건시대 다이묘와 사무라이간의 관계의 재현이다. 다이묘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무라이들에 대해 모욕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에는(봉록의 유지) 그들에게 무한한 기무와 기리를 요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사무라이들은 다이묘에게 대한 저항을 한다.
이러한 관계의 복잡성은 현대전이었던 태평양전쟁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포로들은 죽을 때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우려고 했으며, 포로가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치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저항을 하던 일본인들이 천황의 패전 사실을 알리는 방송 한 마디에 바로 자세를 바꾼 사실을 미점령군들은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쟁지도부에서는 1억 총옥쇄 운운하면서 본토결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미군도 일본 상륙전이 감행이 되면, 최소한 100만 명의 사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자들의 수는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였다. 하지만 종전 후 일본인들이 보여 준 미점령군에 대한 우호선린적인 모습들을 그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모욕과 수치의 대척점에 서 있는 다른 명제인 명예에 대해서도 일본이 본격적인 세계열강으로 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러일전쟁의 예를 저자는 들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 육전에서 뤼순 요새 포위공격을 벌였던 노기 마레스케 대장은 당시 러시아군 사령관이었던 스토예셀 장군의 명예로운 항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항복한 러시아군에게도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세계열강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수모를 받았다고 일본인들을 생각했다. 대양 국가로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에게 열강과의 군축회담을 통한 함대 수의 제한 등의 조치는 국가적 수치였다. 마지막으로 진주만 공격이 있기 전, 일본에게 전달된 소위 ‘헐 노트’는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패권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헐 노트’를 받아본 일본 지도부에서는 무조건적인 항복이냐 아니면 개전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이 개전 초기, 필리핀 바탄반도에서 대규모로 항복한 미군에 대한 소위 말하는 “죽음의 행진”과 같은 잔혹행위의 바탕이 되었다. 기리는 이렇듯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간에 반드시 되갚아야 하는 채무관계였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준다.
개인적으로 루스 베네딕트 여사가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랐다. 문화인류학에서 필드 리서치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데, 그 과정을 빼놓고 기존의 자료들과 재미 일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런 반면,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도 있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천황에 대해 기술된 대로, 일본인들의 국민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천황의 신성부인 성명을 내는 정도로 해서 미국의 프랭클린 대통령은 전후 천황제 존속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점령 당시, 미국의 대일본 정책수립에 <국화와 칼>은 큰 영향을 주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여사가 60여 년 전에 집필한 일본국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일본 문화의 개방으로 책과 영화들을 쉽게 접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국가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가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