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은밀한 생활
알레한드로 삼브라 지음, 홍덕선.현혜진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매일 같이 온라인 서점에서 신간 코너를 둘러 본다. 오늘은 또 어떤 작가의 새로운 책들이 나왔나 하고. 어쩌면 내 일상의 루틴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한 작가를 알게 됐다. 알레한드로 삼브라의 <분재>란 책이 나왔다. 그런데 분량이 엄청나게 얇다. 이거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읽을 수도 있겠는데 그래. 아무래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해야겠다. 그리고 같은 칠레 출신의 내가 애정하는 로베르트 볼라뇨를 언급하다니. 이거 출판사가 마케팅을 좀 아는가 보다.

 

어쨌든, 바로 신간을 수급할 수가 없으니 일단 삼브라 작가의 전작을 찾아본다. 딱 한 권 아주 오래 전에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책은 이제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도 분량이 많지 않아서 어제 빌려서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 그리고 보니 이달에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어야 하는데. 그래서 <막간>이라는 책도 하나 빌리긴 했지. <올랜도>는 미처 읽지 못하고 반납했고. 자꾸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다.

 

짧은 소설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의 화자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문학 교수일을 하고 있는 훌리안이다. 그림 공부를 하러 출타한 베로니카의 딸 다니엘라에게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렇다면 일종의 베드타임 스토리 정도가 될까. 바오밥나무랑 또 뭐더라. 암튼 그러다가 베로니카가 돌아오면 이야기가 끝난다고. 왠지 아라비안 나이트 생각이 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가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았나 싶다. 약간 키치적인 느낌이 드는 걸 그래.

 

이제는 원수가 된 옛사랑 카를라와 헤어지고 나서 새로운 피난처를 찾던 훌리안이 제과 조리장 일을 하던 싱글만 베로니카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뭐 그런 조금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과거가 살짝살짝 드러난다. 생각보다 넓은 집을 구하게 되면서, 훌리안은 임대료를 더 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했다.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글쓰기를 하는 훌리안의 유일한 관심사는 분재와 나무의 성장이었다.

 

소설의 어디선가 훌리안과 다니엘라의 친부 페르난도에게 적이 없다는 말을 읽고,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나에 대한 사유에까지 이르렀다. 나에게도 적이 있을까? 그런 생각은 곧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자문하게 됐다. 결국 나의 책읽기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과연 책에서 삼브라 작가가 소개하는 훌리안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을지도 자신이 없어졌다.

 

그 다음에는 <나무들의 은밀한 대화> 같은 괜찮은 책들이 절판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왜 어떤 책들은 절판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걸까. 소위 베스트셀러니 고전이니 하는 책들응 시장의 선택을 받아 계속해서 독자들이 읽고 있자 않던가. 삼브라 작가의 데뷔작 <분재>의 출간으로 나는 책이 나온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서야 이 책과 그리고 이 책의 저자와 만나게 되지 않았던가.

 

페르난도와 베로니카의 잘못된 만남, 그리고 100일 정도 밖에 유지 되지 않은 그들의 실패의 과정들이 불쑥불쑥 하지만 예정된 대로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멍청이, 건달, 또라이 그리고 이기주의자로 보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없이 다정한 남편이자 새 아빠로 보일 수 있다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그것이 과연 시각이나 관점이 차이일까.

 

원수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훌리안은 언뜻 박애주의자처럼 보이는 카를라를 원수로 규정한다. 그것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를 원수로 생각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역설적 명제라는 생각이다. 그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원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56쪽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삼브라 작가의 서술은 정말 압권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랑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에서 사랑의 절박함을 사랑했을 수도 있지 않나라는 유추가 되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이성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다음에 등장하는 기억을 위한 저장소가 필요했다는 말도 마음에 와 닿더라. 뭐 이 정도면 명언제조기가 아닐가 싶을 정도다.

 

폴 오스터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같은 작가들을 실명으로 언급하는 기술도 왠지 볼라뇨를 연상시킨다. 아니 어쩌면 칠레 출신 작가들이 애용하는 기법이 아닐가 싶기도 하고. 칠레의 눈이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나, 칠레 문학은 갈색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영어 공부 때문에 혐오와 수치심을 느끼게 됐다며 끝나는 결론이 좀 난해하게 다가온다. 그 이유는 더 수긍이 되지 않고 말이지. 어쨌든 순서가 좀 바뀌긴 했지만,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을 읽었으니 이제 작가의 원류에 해당하는 <분재>를 만나봐야겠다. 그 외에도 3편의 소설이 더 있다고 하는데 과연 만나게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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