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 봉쇄된 도시의 비극 1941~44
안나 리드 지음, 육연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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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이유를 모르게 마음이 어지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독서에 오롯하게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어제 마친 <레닌그라드>까지 두 권을 읽은 모양이다. 새로운 책들을 많이 시작했는데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다.

 

마침 역전다방에서 독소전을 다루고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시 영상 콘텐츠 교보재의 힘이라고나 할까.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대학에서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애나 리드가 다룬 장장 872일에 걸친 레닌그라드 포위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포위전이 끝난 다음의 이야기까지 광범위하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파시스트 제3제국의 독일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맞붙은 독소전은 장장 5년에 걸친 어느 한쪽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절멸전이었다. 히틀러는 숙적 스탈린과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는 2차 세계대전에 앞서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를 속이려는 기만전인 동시에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이 서방의 프랑스를 제압하고 나자, 다음 상대는 바로 동방의 맹주 소련이었다.

 

히틀러는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군대를 동원해서 1941622일 이른바 <바르바로사 작전>이라는 명칭으로 소련 침공에 나섰다. 서방과 소련의 정보부에서는 독일의 이런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고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게 계속해서 경고 메시지를 날렸지만 자기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스탈린은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했고, 독소전 초기 속수무책으로 독일의 전격전에 연전연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로 나뉜 독일의 기갑부대들은 파죽지세로 광활한 소련 영토를 휩쓸었다. 스몰렌스크와 키예프에서 기록적인 승전을 구가한 독일의 다음 목표는 바로 레닌그라드와 수도 모스크바였다. 빌헬름 리터 폰 레프 원수가 이끄는 독일 북부집단군은 겨울전쟁에서 소련에게 패해 막대한 영토를 뺏기고 복수전에 나선 핀란드군과 함께 98일 레닌그라드를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독일군의 진격은 소련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고, 당시 250만에 달하는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에 거주하던 250만의 시민 가운데 상당수가 피난길에 나서지 못하고 도시에 갇히고 말았다. 비극의 시작은 장기간의 포위전에 대비하지 못한 소련 정부의 패착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따른 전투 경과에 보다 관심이 있었지만, 저자인 애나 리드는 독일군의 가공할 공격과 포위전을 이겨낸 레닌그라드 도시와 시민들의 영웅적 서사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도시가 포위되기 전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된 진귀한 소장품들부터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했던가.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의 귀중한 유물들이 독일군의 포격과 폭격으로 모두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기아와 추위 때문에 전몰한 수많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생명들과 비교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독소전 개전 다음해인 1942년 라도가 호수를 통한 아이스 로드로 소련 정부에서 준비한 식량과 보급품들이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포위된 시민들이 당한 고초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소련 정부에서는 외부로 진실이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극구 노력했지만, 카니발리즘을 비롯해서 레닌그라드에 갇힌 시민들은 단 한 조각의 빵을 얻기 위해 죽은 사람에게 배급된 식량 배급 카드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유명을 달리한 가족들과 한 공간에서 그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의 시민들은 절대적 식량 부족으로 매일 같이 죽어 나갔지만, 부정부패를 일삼는 당간부들은 상대적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독일군의 관심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공략으로 이전되면서 레닌그라드는 공격을 통한 함락보다 포위전으로 도시를 말려 죽이겠다는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어떤 면에서 레닌그라드는 수도 모스크바를 대신한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소련군 지도부는 모스크바를 거의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독일군으로부터 사수하는데 성공했고, 레닌그라드 역시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독일에 대한 철저한 항전 의지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당시 레닌그라드의 상황에 대해 기록으로 남긴 올가 베르그골츠로 대변되는 문인들의 활약도 간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소련 당국은 전쟁에서 선전전의 효능성을 일찍이 파악하고,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시민들의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다. 음악계에서는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레닌그라드를 위한 교향곡 7번이 시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했다. 포위된 도시 레닌그라드에 남아 소방관 역할을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이미지는 선전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이렇게 소련은 엄격한 검열과 통제로 봉쇄된 도시의 비극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파시스트 독일에 맞선 영웅적 도시의 저항이라는 서사에 방점을 찍었다.

 

레닌그라드의 포위를 풀기 위해 소련군은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작전에 나섰지만, 그때마다 독일군의 맹반격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동부전선에서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 전투로 전세가 바뀐 1944127일이 되어서야 봉쇄를 풀 수가 있었다.

 

독소전은 소련의 승리로 끝났지만, 무능한 지도자의 오판과 일선 지휘관들의 무모한 보병돌격전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복기해 보면 전쟁 자체부터 문제였고, 불필요한 소모와 인명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저자 애나 리드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다시 중동에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재 상황이 85년 전 봉쇄된 도시의 자화상을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대화와 타협 그리고 상호간의 양보로 긴장을 풀고, 갈등 상황을 조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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