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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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과 몰상식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대한민국 주거의 표준이 된 아파트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리고 예의 아파트 건설은 시작부터 다양한 문제점들을 표출해왔다. 최근 어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철근 빼먹기로 주차장이 붕괴된 뉴스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철근 빼먹기가 다반사였다는 사실에 욕망의 상징이 된 아파트에 사는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7년 전 <누운 배>로 우리 곁을 찾아온 이혁진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 실직해서 건설 공사 현장에 투입된 송선길 아저씨의 기구한 사연 때문에 책을 집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처음부터 다 읽는데 근 한 달이 걸린 모양이다. 왜 억울한 이들의 삶에는 이런 불행만 잇달아 발생하는 건가. 아무리 극적인 서사를 위한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에는 리뷰의 제목을 <멧돼지를 기다리며>로 정하려고 했던가. 공사 현장에서 별다른 기술도 없이 투입되어 미적거리는 선길 아저씨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안전관리가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현장에서 안전모나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갖추면서 일하는 건 사치에 가까울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범 케이스인 영국처럼, 사업 책임자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면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수는 획기적으로 줄지 않았을까.

 

공기를 줄이겠다고, 혹은 비용을 덜겠다는 이유 때문에 아니 궁극적으로 모든 건 결국 돈문제로 귀결된다. 진행 중인 인구절벽으로 사람의 목숨 값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모두 알지만 당장에 비용이 드는 안전관리보다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재해를 감수하는 것에 사업장들은 오늘도 베팅한다. “관리자들인 현장소장과 반장들은 얼마 안되는 돈에 양심을 팔고, 자신들 휘하의 노동자들을 거침없이 노예운반선에 승선시킨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이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소설에서 빌런 역할에 충실한 현장소장은 노동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회식준비를 하고, 아프리카 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를 잡아 직원들에게 돌린다. 가난하고 돈 없는 이들은 이런 불량식품을 먹여도 된다는 가학적인 발상에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리고 선길에게 존재하지 않는 멧돼지를 감시하라고 명령한다. 이런 식의 빌드업은 선길이 사고사한 뒤에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작업현장의 모든 이들이 얄량한 밥벌이를 위해 정의와 진실에 눈감으려고 할 때, 굴착기 기사이자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서현경은 현장소장에게 따진다. 하지만 노련한 현장소장은 이미 여러 곳에 약을 쳐서, 빠져 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었으며 현경을 착한 사람 올가미로 옭아맨다. 정말 파렴치한 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경은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목 씨와 더불어 자신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작가는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선길의 유족들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가능한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공정과 정의는 보상이라는 미명 아래 시혜 앞에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다.

 

현장소장은 다시 한 번 살처분된 돼지로 현장의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다. 이 잔혹한 빌런은 선길이 남긴 댕댕이 두 마리마저 된장 바르자며 휘하 졸개들에게 명령한다. 댕댕이들과 정이 들었던 한 대리는 이 명령을 차마 따를 수가 없었고 결국 현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뛰어간다. 살기 위해 발악적으로 저항하고 탈출한 흰둥이처럼, 존재하지만 현장에 없는 것으로 간주되던 현경은 굴착기를 동원해서 흥청망청 진행되던 회식판을 박살낸다.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그런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에 카타르시스 대신 어안이 벙벙해졌다고나 할까. 아주 잠깐이지만 현경의 활약에 속이 후련해졌다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현경을 앞세운 통쾌한 복수극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정의가 승리하는 공식이 리얼리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속에 열불이 인다. 작년 산업재해로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무려 2,223명이라고 한다. 이거야말로 초현실적인 숫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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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01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 안타깝네요.

레삭매냐 2023-08-01 10:03   좋아요 1 | URL
적은 분량이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다 읽는데 시간이 걸렸
습니다.

2023-08-0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필드 2023-08-01 2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넷플에서 얼마전에 봤던 드라마였는데 ’그냥 사랑하던 사이 ‘사고재해로 생겼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나네여 예전 삼풍 백화점 소재로 그렸던거 같은데 답답해지네여

레삭매냐 2023-08-01 22:36   좋아요 1 | URL
언급해 주신 드라마 찾아 보니
2017년에 JTBC 드라마였네요.

사업장에서 돈 때문에 더 이상
희생되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