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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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다. 한겨레문학상 14회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14년 만에 다시 책이 나왔다. 보통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곤 하는데, 문득 재밌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호모 부커스의 직감으로 이 책이 재밌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이럴 때, 책쟁이는 즐겁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과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열외인종 잔혹사>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제목의 이 책의 저자는 주원규 씨라고 한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신학을 전공한 목사님이라는 점이었다. 과연 소설 쓰는 목사님이 문학이라는 가상의 시공간 속에서 어떤 스토리텔링을 펼쳐 보여 줄지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기대에 부풀었다.

 

<열외인종 잔혹사>1124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을 시간의 흐름의 구성에 내맡긴다. 월남 파병군 출신으로 연금생활자이자 극우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장영달 옹이 첫번째 타자로 등장을 한다. 일흔 살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소위 좌빨척결을 지상과제로 삼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다. 요즘 말하는 태극기 부대의 원형 같은 인물이라고나 할까. 평상복처럼 걸치는 군복이 그렇게 잘 어울린다고.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윤마리아. ‘이태백세대의 전형으로 외국계 제약회사에 3개월째 식대와 교통비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인턴에서 정규직 채용이 되기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

 

세 번째 인물은 노숙생활 5년차의 김중혁이다.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동료 광록과 함께 무료급식소 그리고 쓰레기통 사냥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캐릭터인 기무. 노랑머리(이제 노랑머리는 좀 진부하지 않은가)17살 청소년으로 장영달 옹의 말을 빌리자면 싸가지는 애시당초에 발톱의 때처럼 생각하지도 않는 무적(無籍) 청소년의 표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피씨방에서 보게 된 온라인 게임 이벤트에 뛰어 들었다가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자본주의 심장 코엑스몰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초월한 카니발의 세계로 초대받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들만을 골라서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작가의 픽업에 탄복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 삶과 행동들이 궁상맞다고 해서, 그들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들도 저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시점에 주원규 작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오래 전 유행하던 주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마콘도가 있었다면, <열외인종 잔혹사>에는 서울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 심장이자 타지마할(나름 참신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메카라는 표현만 할까 과연?) 코엑스몰로 이 화려한 캐릭터들을 긁어모은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각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친절한 분석에 그럴싸한 개연성마저 확보하는데 성공한 작가는 이제 본격적인 무대인 코엑스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전반부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리얼리즘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중심이었다면, 코엑스몰로 대변되는 후반부는 십헤드 카니발(sheep head carnival) 다시 말해 양머리들이 총을 들고 다수의 인질들을 잡고, 총기난사가 벌어지는 공간이 중심이 된다. 그나마 전반부를 지탱해오던 사실주의 블랙유머와 냉소들은 공간이동을 하면서 혼돈 그 자체로 진화한다. 도대체 양머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런 난장판을 벌이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쩌면 그것조차도 작가의 철저한 계산 아래 준비된 것일까?

 

각각 1부와 2부로 나뉜 <열외인종 잔혹사>의 서사구조는 참 경이롭다. 우선 책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코엑스몰로 주인공들이 모이기까지 5분이나 10분 단위의 시간의 흐름의 서술구조를 선보인다. 딱 두 번 5분과 10분이 아닌 시간이 등장하는데, 한 번 찾아보시라 나름 재미가 있다. 물론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휘리릭 다 읽은 책의 책장 넘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작가 시점의 서사에 중점을 둔다. 이런 구조는 마치 다른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대로 혼란스럽다면 그 또한 글쓴이의 트릭에 빠진 것이겠지만.

 

작가가 구사하는 냉소적이면서도 설명조의 작법은 예전에 다시 읽었던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연상이 되었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가 신파조의 설명을 곁들이는 그런 개입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물론 거북살스럽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오히려 지독한재미가 느껴졌다. 어쩌면 하급문화에 대한 로망이라고 해야할까? 작가의 대리인들인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스러운 육두문자들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참 왜 작가는 2부의 주무대를 최악의 도시서울의 그 많은 장소 중에서 유독 코엑스몰로 정했을까? 그건 아마도 그 공간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심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닐까? 아니면 소설의 어느 부분에선가 나온 것처럼, 모든 이들이 차 없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으로 액세스가 가능하다는 이동을 위한 편리의 발현이었을까? 어쨌건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코엑스몰에서 상상을 초월한 양머리 카니발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확실히 <열외인종 잔혹사>는 지독하게 재밌다. 동시에 민주주의가 역주행을 감행하고, 빈부의 격차해소는 요원해 보이기만 하고, 변변한 일자리를 찾는 건 정말 백사장에서 바늘찾기 보다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현실 속의 처절한 리얼리즘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패러디가 여기저기 아주 절절하게 배어 있다. (발표 당시) 신예작가라 그런지 결말 부분이 좀 아쉽긴 했지만, 기발한 상상력의 현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 읽어 보시지 않았다면 말을 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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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4-21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다가 결말 부분이 아쉬울 때 진짜 아쉽죠.^^

레삭매냐 2023-04-29 09:51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렇죠 !!!

마무리를 잘 짓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