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 고흐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바라 스톡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1월
평점 :
도서관에 주차를 할 수가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아무 데나 차를 대고 램프의 요정을 찾았다. 그냥 아무 책이나 좀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읽을 그래픽노블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바바라 스톡 작가의 <반 고흐>를 만나게 됐다. 후딱 읽고 나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67쪽까지 읽가 호출이 와서 잽싸게 램프의 요정을 벗어났다. 그냥 나오기가 그래서 이탈로 칼비노의 책 한 권도 샀구나.
예전에 고호라고 불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고흐가 되었다. 어쨌든, 그래픽노블 <반 고흐>는 훗날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화가가 되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뱅상?) 반 고흐의 말년을 다루고 있다. 화상을 하는 동생 테오에 빌붙어 살던 반 고흐는 새로운 작품활동을 위한 공간을 위한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아를로 향한다.
이곳에서 고흐는 자그마치 200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정신건강은 그림에 몰두하는 만큼 소진되어 가기 시작한 모양이다. 문득 어떤 예술가가 지닌 천재성 혹은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한 무언가는 계속해서 생성되는 게 아니라, 퍼내고 나면 소진되어 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물감 살 돈이 없어 구질구질하게 살았던 고흐와 달리, 피카소는 평생 동안 돈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던가. 그런 걸 보면 참,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다. 죽은 다음에 명예와 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흐는 성질머리도 고약했던 모양이다. 아를에서 머물던 호텔 직원과 싸우는 건 다반사였다. 자신의 모든 걸(영혼마저도!) 그림에 갈아 넣어야 했던 고흐는 얼치기 예술가들이 희희낙락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걸 참아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시간에 따라 풍경과 색감이 바뀌는 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빛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력도 엿볼 수가 있다.
고흐는 평소에 독주인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고 하던데, 이 그래픽노블에서는 그런 점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화가들이 유곽을 찾아 허송세월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그도 물론 유곽의 고객이긴 했지만 말이다. 뭐랄까 일반인들과 다른 의미에서의 수도자라고나 할까.
고흐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그의 작품 활동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바로 동생인 테오였다. 아마 테오가 없었다면 우리는 고흐의 그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가 없지 않았을까.
한편, 고흐는 아를의 새로운 거처에서 화가들을 위한 일종의 공동체를 꿈꿨다. 자기가 아는 많은 화가들을 그곳으로 초청했지만 그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유일하게 그가 존경하는 화가였던 폴 고갱 한 명이었다. 고갱에게 많은 걸 배우기도 했지만, 성정이 달랐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고흐가 남프랑스의 아를에서 만족했다면, 열정의 사나이 고갱은 열대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색채를 구하기 위해 마르티니크 행을 꿈꾸었다. 이런 둘의 결정적 차이는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고, 고갱은 아를을 떠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고흐의 종말로 가는 뇌전증에 의한 정신병이 발발하게 된다. 고갱이 떠난 뒤, 자신의 귀를 자해한 고흐의 소식을 들은 동생 테오는 파리에서 바로 형님을 찾아온다. 고흐는 환각에 시달리는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자발적으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물론 그림에 미친 사내는 그곳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아니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작가가 그린 그림에 대해 그렇게 열광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해바라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픽노블 <반 고흐>는 그의 비극적 최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건너뛴다. 오로지 그림에 전념했던 화가로서의 모습에 치중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고흐는 대중에 영합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은 1도 없었다. 그의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생전에 그는 자신의 그림을 팔지 못했다.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창조한 그림이 타인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괴로웠을까? 현대의 피카소 혹은 고갱처럼 그림을 팔아 제법 돈을 만졌더라면, 고흐의 영혼은 과연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을까?
너튜브에서 보니 고흐의 그림에서 “별”은 영원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그림들에서 별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미 고흐는 이생에 대한 미련을 포기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상당 부분 압축되고, 생략된 그래픽노블의 이미지만으로는 위대한 예술가가 구상한 생각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나 싶다.
오래 전에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이미지에 도취되어, A4에 꽉 차게 그의 이미지를 인쇄해서 모으던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고흐가 광인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나는 여전히 그가 그린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지난주에 마지막 남은 해바라기 씨 다섯 개를 화분에 심었다. 어떤 녀석이 고개를 들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