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프레드 포드햄 지음, 이상원 옮김, 하퍼 리 원작 / 미메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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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는 죽이면 안돼. 그런데 어치는 죽여도 돼.

 

공기총을 삼촌에서 선물 받은 아들에게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한 말이다. 어떤 행동은 허용되고, 또 어떤 행동은 하면 안되는 걸까. 프레드 포드햄이 그린 그래픽 노블로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읽었다.

 

8세 소녀 스카웃은 어머니를 여의고 편부 애티커스 휘하에서 오빠 젬(제러미)과 함께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자신에게 청혼한 딜 해리스와 친구가 된다. 집 근처에는 도시괴담에 나올 법한 으스스한 소문의 주인공 부 래들리가 산다. 그의 집에 가는 건, 겁많은 꼬맹이들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 책으로는 많은 내용이 다루어졌겠지만, 그래픽노블에서는 많은 디테일들이 빠지고 대신 큰 줄거리로 넘어간다. 소설의 중심에는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톰 로빈슨의 재판이 위치한다. 1935년 딥 사우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앨라배마 메이콤에서 그런 가공할 만한 범죄를 저지른 깜둥이에게는 오로지 신의 처벌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니 사법적 처단에 앞서, 소수의 극렬 인종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톰 로빈슨에게 복수하기를 원한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결핍의 시대였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그런 경제 위기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 역시 피폐해져 있지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타인의 억울한 사연에 귀를 기울일 필요 없이 없었으리라. 게다가 흑인은 다수 백인들과 다른 인종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랬으리라. 아마 얼마 전까지도 큐클랙스클랜(KKK)이 그곳에서 그리고 그후에도 준동하지 않았을까.

 

군내에서 최고의 명사수라는 타이틀을 지닌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무력에 호소하지 않는다. 마치 무림의 고수가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강호의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듯 애티커스는 자신의 실력이 꼭 필요하지 않다면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공익을 위해 광견병에 걸린 개를 상대할 때, 한 방으로 개를 사살하는데 성공한다. 그제서야 자기 아버지의 실력을 인정하게 된 스카웃과 젬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 애티커스와 달리 핀치 가문의 전통과 관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알렉산드라 고모는 다수 메이콤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세상을 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부재를 채우는 인물로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을 만들어주는 흑인가정부 캘퍼니아의 존재에 대해서도 눈여겨 볼 만하다. 그리고 캘퍼니아는 스카웃과 젬을 흑인들이 다니는 교회로 인도하기도 한다. 백인들이 믿는 신과 흑인들이 믿는 신은 다른가? 하나의 존재에 대한 다른 가치는 왜 발생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쨌든 정의의 사도 애티커스 핀치는 자신이 판단했을 때, 무고하다고 생각한 톰 로빈슨 변호에 적극 나선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를 깜둥이 애인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에 맞서 스카웃-젬 남매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멸시에 가까운 조롱에 폭력으로 맞서지만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버지 애티커스도 애들과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아이들이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그래픽노블에서 최고의 장면은 스카웃이 톰 로빈슨에게 린치를 가하기 위해 몰려온 백인 무리를 스카웃이 제압하는 컷이 아닐까 싶다. 무리가 흥분한 폭도로 변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꼬마 소녀는 그들을 설득해서 현장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걸 감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라고 생각해야 할까. 백인들이 지배하는 사회 질서에 균열을 낸 톰 로빈슨에 대한 사적 응징을 막아내는 힘이 결국 이성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공판 과정이 전개된다. 톰 로빈슨의 국선 변호를 맡은 애티커스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논리와 실력으로 사실을 밝혀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메이엘라 유얼은 백인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에 실체적 진실보다 역시나 감정을 자극하고 호소한다. 꼬마 소녀가 봐도 명백한 진실은 결국 톰 로빈슨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뒤집혀진다. 가장 선진적이고 민주주의가 발전했고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미국에서도 차별과 편견을 넘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저자 하퍼 리는 고발한다.

 

결국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탈주를 시도하다가 자그마치 17발이나 되는 총탄을 맞고 죽는다. 그는 어쩌면 애티커스가 전력을 다해 항소심에 임해도 재판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마지막 도박에 나섰던 건 아니었을까. 백인들은 톰 로빈슨이 전형적인 흑인 범죄자의 길을 걸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좌절하게 되자 탈옥을 시도했고 그 결과 총에 맞아 죽었노라고 말이다.

 

어쩌면 소설은 이 지점에서 마무리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핼로윈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스카웃과 젬 남매에게 밥 유얼이 벌이 납치소동극이 소설의 전개상 꼭 필요했나 싶다.

 

미국 사람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책이라고 하지만, 인종문제는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풀 수 없는 난제 가운데 하나다. 이미 구조화된 사회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길 바라는 건 난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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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3-09 1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그 뒷부분이 더 의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종문제를 넘어서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반전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레삭매냐 2023-03-09 15:5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결국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는 것도 인간인데 그
인간들이 편견과 고정관념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는 점이 참 그랬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