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 그래픽 평전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8
상드린 르벨 글.그림, 맹슬기 옮김 / 푸른지식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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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진심이다. 다른 건 항상 늦장을 부리지만 궁금한 책은 신속하게 빌리거나 사들인다. 인스타 피드에서 캐나다 출신 글렌 굴드의 그래픽 노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검색해 보니 신간이 아니라 지난 2016년에 나왔다고 한다. 마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안윤 작가의 <방어가 제철>과 함께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저자 상드린 르벨은 아마 괴짜이자 기인 피아니스트의 일대기를 담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봤으리라. 하지만 그가 남긴 여백은 너무 많다. 아무래도 이 정도만으로는 부족하지 싶다. 더 알고 싶다면 글로 된 책을 읽어야지 않을까.

 


그의 대표 레코딩은 1955년 그러니까 그가 23살 때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데뷔 시절부터 그는 기행으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레코딩 엔지니어들은 그가 연주하면서 내는 허밍 소리와 박자에 맞춤 발소리 그리고 의자의 끽끽 거리는 소리들을 제거하고 싶어했다. 물론 괴짜 피아니스트가 그들의 그런 요청을 들어줄 리가 있나 그래. 결국 허밍은 방독면을 쓰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된다. 사실이라면 굴드는 진짜 또라이 연주자였으리라. MSG가 너무 많이 들어갔나. 그것도 아니라면 훗날에 만들어진 신화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강박증으로도 유명했다. 사람들과의 악수도 거부했다. 사람마다 악수하는 방식은 다른데 보통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아구에 힘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 방식은 이 강박증과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에게는 최악이었다. 아주 섬세한 악수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악수하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다.

 

호수에 낚시를 하러 가서도, 낚아 올린 물고기들의 죽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 성공해서는 버림받은 동물들을 위해 큰 농장을 설립할 거라고 했나 어쨌나. 반백년을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고 지구별을 떠난 기인 피아니스트답게 기행에 대한 전언들도 차고 넘친다.

 

보통 연주자들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아니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굴드였다. 그는 관객이라는 집단을 혐오했다. 그런 그가 미국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고 미 전역을 도는 연주 여행을 해야 했을 때, 얼마나 피곤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결국 서른 몇 살 전성기 때, 대중 앞에서 연주를 포기하고 침잠에 돌입한다.

 

대신 레코딩이야말로 이 괴짜 아티스트에게는 구원 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가 장기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대위법 같은 클래식 음악과 용어를 전혀 모르니 그가 구사하는 음악 세계의 지평을 넓히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어느 편집 소품 앨범에 담긴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인벤션 연주는 아주 오랫동안 즐겨 들었노라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1975년 그에게 거의 강압적인 피아노 교육을 담당했던 어머니의 죽음, 강박증에 시달리던 젊은 날의 굴드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뒤죽박죽으로 등장한다. 보통 연대기 순에 따른 전개를 기대했던 나같은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쩌란 말이지? 그림체도 그렇지만,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소설에서인가 북극에 가서 연주를 하는 굴드에 대한 상상을 그리지 않았던가. 하도 많은 글들을 섭렵하다 보니, 소설인지 무엇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냥 내가 원하는 바대로, 그야말로 되는 대로 독서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자기 마음대로 산 괴짜 피아니스트처럼 나 역시 그런 책쟁이이니 말이다. 전자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라면, 후자는 촌구석의 골방에서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쓰기의 업보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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