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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워츠의 뉴욕 스케치
줄리아 워츠 지음, 정경아 옮김 / 길찾기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뉴욕에 간 게 언제였더라. 참 예전에는 별 걸 다 기억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싶다. 첫 뉴욕행에서 기억나는 건 케이타운에서 먹은 순댓국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모두 알아 듣지도 못하는 유령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먹었는지 모른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뉴욕에 갔었는데, 야구팬으로 그 유명한 양키 스타디움에 가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아, 아이스 하키 팬도 아니면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가서 퍽(puck)도 하나 기념으로 샀다. 그리고 한 겨울에 코를 질질 흘리면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그리며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넜다. 미쳤지. 아, 돈이 없어서 스탠딩으로 아바의 노래 <댄싱 퀸>을 20달러 주고 스탠딩으로 본 적도 있었다. 뭐 이것저것 말하다 보니 뉴욕에 대한 추억에 제법 많은 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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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앱으로 부활한 싸이월드에서 퍼온 MoMA 간판 사진이다. 무려 14년 전이나 되었구나.)
아마 줄리아 워츠 작가의 이 책을 보고서 다시 뉴욕에 간다면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곳은 <스트랜드> 서점이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다양한 독립서점들을, 책향기가 풀풀 나는 곳들을 나는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줄리아 워츠는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어느 날 뉴욕으로 가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정든 고향을 떠났다고 한다. 아마 작가가 살던 시절의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은 지금처럼 살인적인 물가는 아니었나 싶다. 두 도시 모두,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거주 비용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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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밀레니엄 캐피탈로 유명했던 뉴욕은 정말 볼거리와 먹을거리 그리고 마실거리들이 넘쳐 나는 곳이 아니겠는가. 내가 뉴욕을 방문하던 시절에는 진정한 책쟁이가 아니었기에, 서점들은 나의 순례 목적지가 아니었다. 나는 뉴욕에 갈 때마다 곳곳에 즐비한 뮤지엄들을 집중 공략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센트럴파크에서 구겐하임으로 향할 때 저 멀리서 흰 색의 둥근 궁륭이 보일 적에 뛰던 염통의 경험은 파리에서 에펠탑과 만날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생전에 그런 경험은 딱 두 번 경험했던 것 같다.
땅값이 비싸기에 뉴욕에서도 우리 식으로 말하는 알박기가 성행하는 모양이다. 작가가 아마 오래 전 사진들을 비교해 가면서 현재의 뉴욕 거리들과 비교한 그림들도 인상적이다. 시대에 맞게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이들을 상대하는 상점들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백 년 전에는 약제상이나 세탁소 등등이 뉴욕 거리의 주류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스포츠 상품을 파는 상점들, 최신 휴대폰과 각종 전자기기들을 파는 애플스토어 등이 대세인 모양이다.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대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만이 살 수 있다는 초호화 아파트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빼놓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일까.
뉴욕과 주변 도시에서 버린 쓰레기들이 넘실거린다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직접 찍은 사진은 화려한 도시의 그늘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소비하고 사는데,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긴 했다. 그곳에는 선박 폐기물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의 장난감에 이르는 정말 다양한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보니 왠지 영화 <A.I.>에서 버려진 로봇들이 생각났다.
NYC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닌 서부에서 날아온 철저한 이방인 뉴요커의 대도시 고군분투기는 상당한 진정성을 담보하지 않았나 싶다. 에그와 크림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에그 크림이란 타이틀을 얻은 음료부터 시작해서, 매드하우스와 세계를 직접 체험한 저널리스트 넬리 블라이에 대한 이야기, 내 집 찾아 삼만리 등등, 줄리아 워츠가 들려주는 뉴욕 스토리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그림으로 자신만의 뉴욕 생존기를 재해석해낸 줄리아 워츠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