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 채석장 시리즈
알렉산더 클루게 지음, 이호성 옮김, 토마스 콤브링크 주해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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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도서관에 빌린 책들은 완독하지 못하고 반납하기가 일쑤다. 이번에는 한 주 더 연장을 해가면서까지 알렉산더 클루게 박사님/감독님의 문학인지 르포르타쥬인지 그것도 아니면 처참한 공습에 대한 보고서를 다 읽는데 성공했다. 분량은 적은데, 너무 만만하게 본 나의 오판으로 독서에 더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싶다. 나의 봄독서는 여전히 지지부진하지만 하다.

 

194548, 2차 세계대전 종전을 4주 앞둔 시점에 미영 연합공군은 독일 제국의 작은 도시 할버슈타트를 공습했다. 지도를 찾아 보니 브라운슈바이크 어딘가에 그리고 근처에는 하르츠 산맥이 있다고 했던가. 할버슈타트는 저자 알렉산더 클루게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 루프트바페에게 혹독한 시련을 겪은 바 있는 RAF는 복수에 불타며 나치 독일제국의 심장부에 상품을 안겨 주겠다는 일념 아래 상상을 초월하는 폭격전을 개시했다. 사실 근접전에서 적을 살상하는 재래식 전쟁은 병사 개개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다. 비무장한 민간인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000미터 상공에서 하늘을 나는 요새로 구성된 폭격기 편대가 투하하는 무지막지한 폭탄으로부터 발생하는 피해는 파일럿들의 도덕적 감각을 덜어주는 동시에, 지상전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신화를 연합군 측에 심어 주었다.

 

자신들이 당한 것을 그대로 되갚아 주겠다는 보복 심리가 영국 공군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동시에 막대한 전비를 들여 개발한 중폭격기와 폭격기 편대에 실린 폭탄들을 설사 목표 도시들이 항복한다고 해도, 그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로 무장한 공군 장성들(특히 아서 도살자해리스 공군 원수)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독일을 상대로 한 처참한 공습전이 전개되었다.

 

할버슈타트에는 융커스 항공기 제작소와 비행장 그리고 인근 하르츠 산맥의 동굴에는 서방의 미영연합군과 동방에서 무서운 속도로 제국의 심장부로 돌진해 오는 소비에트 군단에 대항에 필요한 무기를 만드는 비밀시설들이 존재했다. 아마 그런 이유로 할버슈타트는 종전 무렵에 연합군 공습의 목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연합군의 계속되는 폭격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무기 생산능력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총력전 시스템에서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독일의 무기 생산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과연 연합군 공군이 주장하는 대로 폭격전의 효과에 대해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독일 전투기와 대공포에 격추된 연합군 폭격기들의 수는 엄청났다.

 

미영연합군 공군의 기본 전략은 간단했다. 압도적 공군력을 동원해서 독일의 기간 사업 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제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면에는 사기 저하 폭격(moral bombing)이라는 무시무시한 미션도 따로 있었다. 블록버스터 폭탄, 고폭탄 그리고 소이탄의 파도로 밀집된 도시 중심부를 타격하고 연이은 불 폭풍으로 모든 것을 쓸어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불을 끄기 위해 집결한 소방대원들마저 가공할 폭격으로 몰살시키겠다는 연합군의 세심한 계획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방TV에서 현재 연재 중인 <역전다방>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가 있었다. 클루게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의 책과 함께 많은 도움을 얻을 수가 있었다.

 

독일 전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공중전을 분석하고,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보여준 제발트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독일이 가진 원죄 때문에, 종전 후 연합군의 무분별한 폭격으로 무고한 독일 시민들이 살상되었다는 점을 왜 지식인들이 나서서 지적하지 않았냐고 제발트는 묻는다. 그런데 그들이 마냥 무고한 피해자이기만 했냐는 백래시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몰고온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을 두들겨 맞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 발 더 나아가 전범은 패전국에만 존재했을까라고 묻고 싶다. 히틀러의 나치 부대에게 조국을 유린당했던 소비에트 군단이 독일 영토로 서진하면서 저지른 약탈과 폭행 그리고 만행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늘날처럼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1945년에 정밀폭격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그런 모토였을 뿐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연합군의 숱한 오폭 때문에 발생한 막대한 민간인들의 인명 피해는 군부 내의 강경론자들에게는 그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일 뿐이었다.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들 중의 하나였던 클루게 감독은 <할버슈타트>에서도 자신의 영화에서처럼 모든 상황에 대한 리포트를 하지 않는다. 몽타주 기법으로 파편화된 정보들을 나열하고, 독자에게 나머지 부분들을 유추할 것을 그는 주문한다. 확실히 클루게 감독은 불친절한 작가다. 하지만 그의 불친절함은 나같이 누군가 떠먹여 주길 원하는 독자에게 사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츤데레 같은 매력이 느껴진다.

 

저자가 들려주는 공습의 리얼리티 역시 사실인지 알 수가 없다. 독일인들에게 공습의 피해는 이제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그리고 잊고 싶은 과거가 아니었을까. 시간의 무시무시함은 모든 기억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그게 옳건 그르건 간에 말이다. 뒤틀린 기억을 바로 잡는 건 쉽지 않은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곁을 떠나 별이 된 제발트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는 클루게는 이 시대에 멸종해 가고 있는 지식인의 표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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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19 1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발트는 몇권 갖고 있으나 아직 못 읽었어요 ㅠ

레삭매냐 2022-04-19 13:28   좋아요 2 | URL
제발트 너무 좋습니다.

저도 제법 읽긴 했는데 미처
리뷰를 쓰지 못한 책들이 있
더라구요.

다시 읽고 써야 하나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2-04-19 13:29   좋아요 3 | URL
오타!
제발틀 고쳤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