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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여행 - 모로코, 프랑스, 스페인 스케치 여행기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4월
평점 :

[이 책은 얄라얄라님 덕분에 알게 되서 읽게 된 책입니다.]
9년 전, 처음으로 캄보디아로 패키지 여행을 갔었다. 그전에 여행은 모두 철저한 나홀로 솔로여행들이었다. 패키지 여행은 편했고, 숙소들은 만족스러웠다. 고생이 없으니, 곧 권태가 밀려 오더라. 동행 덕분에 외롭지 않아 좋았던가. 가이드 아저씨는 우리에게 곧 며칠 동안 ‘원딸라’의 환청이 들려오게 될 거라고 경고해 주셨다. 그리고 앙코르 와트를 비롯한 곳곳에서 그 말이 무엇인지 곧 깨닫게 됐다. 아 그리고 입국 절차하면서 세관원의 노골적인 뇌물 요구에 아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들에게 1달러도 주지 않았다.
미국 미시건 출신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의 모로코 여행기에서 비슷한 추체험을 할 수가 있었다. 기독교 근본가정에서 자란 저자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근본주의자 부모님들 덕분(?)에 일체의 미디어는 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허락된 음악은 기독교 가스펠 정도라고 했던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자유의 땅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좀 믿을 수가 없었다.
크레이그 톰슨은 관광객의 나라 미국인답게 프랑스로 건너가 숱한 싸인회에서 그야말로 팔이 떨어질 정도로 그림을 그리고 싸인을 해댄다. 만화 그리기가 마냥 창작의 활동만은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결국 만화가도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이 출판사를 통해 발표한 만화책들이 잘 팔려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알려야 하고, 또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는 너튜브나 SNS가 그 지금처럼 위력을 발휘하기 전이니 발바닥에 땀이 나게 열심히 뛰어야 했으리라.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용이할 지도 모르겠다. 뭐 아닐 수도 있겠고.

옛 연인으로부터 실연당한 그녀를 잊지 못하면서 모로코의 마라케시와 동쪽의 사막 언저리,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그리고 고도 페스를 여행한다. 포스트비건을 자처하는 크레이그 톰슨은 먹거리에는 자유로운 편이다. 무대포 미국인 여행자와 달리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희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1세계 시민다운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주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런 편이 더 솔직하게 다가온다. 인간과 짐승의 배설물로 모코로의 오래된 도시들에서 피혁을 염색하고 가공하는 장면이 역겹다는 말로 증언한다.
정부로부터 인가받지 않은 야매 가이드들의 엉터리 투어부터 시작해서, 관광객들로부터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 현지인들에 대한 모습을 저자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그런 그네들의 모습을 보면, 힐링과 새로운 풍광을 보기 위해 비싼 비용과 시간을 들려 찾은 관광지로 모로코가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런 편견은 버려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다.

결국 언어가 잘 통하는 동료 미국인 혹은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과 서로 마음이 잘 맞는 편이라고 고백하는 장면도 그런 대로 받아들일만 하다. 결국 계급과 인종 그리거 언어의 장벽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 대 인간의 교류는 어디에서나 쉽지 않은 것 같다. 하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끼리도 그건 쉽지 않으니까.
디지털 카메라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오로지 현지에서의 스케치 혹은 기억만으로 이런 멋진 여행의 경험을 만화로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만화가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소심한 성격처럼 자신의 잡담류가 출간된다는 점을 쑥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또 이것도 하나의 돈벌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마다할 이유가 1도 없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여행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는데, 문득 수년 전에 바르셀로나행 비행기표를 알아 보다가 워낙 비싼 가격에 질려 포기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넉넉한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놈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가우디에 대한 찬사는 이제 더 듣기도 그렇더라. 내가 직접 보지 않고 타인의 경험을 통한 간접체험은 이제 그만. 내 팔자에 바르셀로나에 가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도서관에 간 김에 크레이그 톰슨의 <하비비>도 빌려 왔는데 그 두께에 놀랐다. 뭔 놈의 그래픽 노블이 이렇게 두껍나 하고 말이다. 오늘 <담요>는 미처 빌려 오지 못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 작품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참 위키피디아로 저자를 검색해 봤는데 영화배우 뺨치는 프로필 사진이 걸려 있었다.
[뱀다리] 자신도 미국인 관광객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캐다나인 행세를 했다는 고백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