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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말고 달려라 - 초고속! 참근교대 ㅣ 낭만픽션 6
도바시 아키히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도바시 아키히로 작가의 <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너튜브의 광활한 바다를 항해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요즘 예전에 읽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억을 되새기며 일본 센고쿠 시대를 비롯한 역사에 대한 컨텐츠를 보다가 에도시대 시작된 참근교대(산킨코타이)를 소재로 삼은 책 그리고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바로 그 책이 <굴하지 말고 달려라>였다. 영화 제목은 <얼트라패스트 산킨코타이>다. 제목부터 일본틱하지 않은가. 그네들이 참 얼트라를 좋아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735년, 전란의 시대를 끝낸 에도막부가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격년으로 지방 다이묘들은 쇼군의 거처인 에도성에 가는 참근교대를 해야만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작은 유나가야 번의 다이묘 나이토 마사아쓰는 최근 에도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그런 상태였다.
작은 번들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참근교대를 부담스러워했다. 게다가 다이묘의 정실과 자식들은 모두 에도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네들이 유나가와 번 같은 촌동네의 형편을 알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정략결혼을 한 마사아쓰의 정처도 결국 이혼장을 날리지 않았던가. 뭐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수석 로주의 꿈을 꾸고 있던 에도성의 야심가 로주 마쓰다이라 노부토키가 유나가야 번을 콕 찝어서 불과 지역으로 내려간지 며칠 되지 않는 나이토 마사아쓰에게 새로운 참근교대 명령을 내렸다는 거다.
게다가 기일도 달랑 5일을 주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240리 길을 단 5일만에 주파하라니. 이것을 승인한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더 멍청한 놈이 아닐까 싶다. 하긴 리더들이 저간의 사정을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겠지만. 노부토키는 유나가야에 밀정을 파견해서 금광 개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아예 번을 몰수할 생각으로 이런 음모를 꾸민 것이다. 영화에서는 소설에서보다 더 악독한 빌런으로 등장한다.
다 필요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게 소설 혹은 영화의 포인트가 아닌가 말이다. 아 참, 지역민을 너무 사랑하는 마사아쓰는 자신의 영지에 사는 마을 사람들과 아주 격의 없이 지내는 멋진 영주기도 하다. 아무리 가로 소마 가네쓰구가 연공을 올리자고 해도, 후덕하고 인심 좋은 다이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기가 덜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소마에게 퉁바리를 놓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도바시 아키히로 작가는 그렇게 멋진 다이묘와 악덕한 막부의 정치가를 비교 선상에 올려놓는다. 소설이 이래야 재밌지.
충성스러운 신하 소마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최소한 인원으로 다이묘 행렬을 꾸미기로 한다. 다이묘의 행렬이 형편없어도 막부의 눈밖에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놈의 의전이라는 이름의 형식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우선 지름길로 가기 위해 무사들에게는 생명과 같은 진검 같은 무기들도 죄다 대나무 칼로 대체한다. 무거운 진검이나 장창을 들고 산길을 누빌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소마는 왕년에 잘 나가던 닌자 구모가쿠레 단조를 고용해서 길라잡이로 삼는다. 주군 마사아쓰가 어린 시절 유모의 학대로 폐소공포증이 있다면, 동국(東國)의 최고의 닌자로 알려진 단조 역시 남에게 말하지 못할 마상을 지니고 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유나가야의 6용사에 최고의 실력을 가진 닌자 단조 그리고 마사아쓰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누가 봐도 무리한 참근교대에 나선다. 영화에서 보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 상태에서 마치 마라톤이라도 하듯 경량화한 상태로 농민들이 열심히 수확을 하고 있는 논과 밭을 지나, 이와키 바다를 달리는 그네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예상외로 유나가야 일행이 무리한 임무에 성공할 것처럼 보이자,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로주 노부토키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출발부터 출중한 실력을 지닌 닌자들을 파견해서 유나가야 일행의 암습을 명령한다. 그 외에도 소수의 유나가야 일행을 노리는 떠돌이 낭인들까지 그들을 습격하면서 유나가야 선수들은 온갖 고생을 겪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이 닥쳐도 그들은 자신과 끈끈한 신뢰를 쌓은 주군을 배신하지 않는다. 기한 내에 에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유나가야 번의 안위를 위해 모두 그렇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에도성의 유나가야 번저에서는 이혼선언을 하고 번저를 떠난 마사아쓰의 부인 대신, 마사아쓰의 누이동생 고토 히메가 무가집안의 딸답게 가솔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우선 올케가 사들인 불필요한 사치품들을 팔아서 320냥의 소중한 군자금을 만들었다. 여걸 고토 히메는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서 막부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생각까지 한 모양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나이토 마사아쓰가 에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모가쿠레 단조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술독에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 한 단조는 길라잡이의 역할도 채 다하지 않고 먹튀할 궁리만 한다. 하지만 그도 결국 자신이 가진 가보까지 들이미는 마사아쓰의 진심에 승복해서 다른 유나가야 동료들과 함께 목숨을 내건 결전에 돌입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하일라이트는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나가야들의 에도성 진입을 막기 위해 오니와반들과 격전을 치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도바시 아키히로의 역사소설 <굴하지 말고 달려라>에는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스토리들이 담겨 있다. 말로만 무사도 타령을 하는 정의와 한참 거리가 있는 마쓰다이라 노부토키 같은 빌런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그 대척에는 나이토 마사아쓰 같이 약자들의 편에 서기를 주저히지 않는 그런 인사들도 무시로 출현한다. 2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일본 천하를 제패했을 지도 모른다는 도쿠간류 다테 마사무네의 후손도 자신의 영지(센다이)인 무쓰를 무시하는 처사를 남발하는 노부토키에 대항해서 마사아쓰를 지원하기도 한다.
평민 출신으로 나이토 마사아쓰와 알콩달콩 로맨스를 연출하는 오사키의 순애보도 쩌릿하다. 갖가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마사아쓰, 단조 그리고 오사키들이 서로 상처를 보듬으면서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하고 좌절하다가 결국에는 미션 완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소설은 매조지된다.

코믹한 분위기로 연출된 영화는 인기가 있었는지 후속작도 나왔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를 겨냥해서 쓰인 소설이라 그런지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끝내준다. 올해는 연초부터 일본 작가들의 책만 냅다 읽고 있다. <중판출래> 7권에 이어 에도시대를 다룬 소설이 2권 그리고 지금은 <샤바케>를 읽고 있다. 임인년 새해 출발이 예상보다 좋구나.

정말 오래 전에 오사카 지하상가의 동구리 공화국인가에서 산 토토로 열쇠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