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낭만픽션 5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흡입력이 강한 소설을 좋아한다. 게다가 그 소설이 역사소설이라고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신년 들어 만나게 된 하타케나카 메구미 작가의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가 그 범주에 드는 그런 책이었다.

 

1823년 경인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센고쿠 전란시대를 끝낸 에도 막부의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있던 시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창시한 에도 막부는 다시는 그런 전란의 시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에도에 웅거한 쇼군을 중심으로 한 막번체제를 만들어냈다. 전국의 265개 번을 강력하게 틀어쥐고 유교식 봉건시스템을 가동했다. 지방의 유력 다이묘들이 할거하지 못하도록, 참근교대(산킨코우타이)를 실시해서 1년은 자신의 지방 영지에서 그리고 다른 1년은 교대로 에도에서 쇼군에게 봉사한다는 것이다. 말이 참근교대지 사실은 정실부인과 자식들을 에도의 인질로 삼고 딴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지방 다이묘가 2년에 한 번은 에도에 살아야 했기 때문에 에도 번저가 필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도에서 생활을 하려면 아무래도 지방보다는 비용이 더 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에도 번저에서 주군을 수행하고, 다른 번들과의 갈등 조정 그리고 수도에서 벌어지는 소식들을 다루는 임무를 맡은 이들을 루스이야쿠라고 불렀다.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다타라기 번의 신임 루스이야쿠 마노 신노스케가 등장할 차례다.

 

마노 신노스케의 전임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친형이었다. 형은 자결로 삶을 마감했다. 물론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이 태평성대처럼 보이지만 각종 암투가 벌어지는 에도를 배경으로 한편의 드라마가 상영될 준비를 마쳤다.

 

막부 말기까지 끗발을 날리게 되는 조슈 번과 달리 다타라기 번 같이 가난한 번들도 다수 존재했다. 다타라기 번 같이 가난한 번들에게 참근교대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막부에서 명하는 도우미 공사였다. 지난번에도 5천냥 짜리 공사를 맡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재정이 어려운 번은 빚을 내어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이런 무리한 공사가 다타라기 번에 떨어지게 된다면 번은 그야말로 공중분해될 위기다.

 

신노스케가 루스이야쿠 조합에서 선배 이사라키 등에게 이런 사정을 배워 가는 동안, 그들이 요정에서 번의 귀중한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도 동시에 존재했다. 다타라기 번의 가로는 이런 불의의 사태를 막기 위해 로비 자금의 증액을 요청하는 신노스케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미 다타라기 번은 충분히 무리하고 있다며. 결국 자신의 상관에게 칼을 뽑아들 정도로 극단으로 대치하게 되지만, 때마침 등장한 주군 휴가 태수의 중재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 정도의 하극상이라면 그쪽 사람들이 좋아하는 할복이라도 할 판이었다.

 

돈 없는 가난한 루스이야쿠인 마노 신노스케의 고군분투기를 눈물 없이는 못 볼 정도다. 에도 막정에 관계된 인사들에게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이 쓰는 부유한 번들은 사전에 정보를 취득해서 인맥을 동원한 로비활동으로 예의 도우미 공사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나간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다타라기 같은 번들만 죽어나가는 형세다.

 

루스이야쿠 신노스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 눈앞에 닥친 인바누마 연못 공사 때문에 벌어질 수도 있는 폐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전임자이자 형님인 센타로는 신노스케보다 검술이나 능력이 뛰어났지만, 번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좌절한 나머지 자결했던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 루스이야쿠였던 이리에 씨가 결국 탈번하고 정혼했던 그의 딸 지호와의 파국도 한몫했다.

 

하타케나카 메구미 작가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걱정 없는 태평성대가 이어지는 에도 시대라는 배경에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직조해낸다. 막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6명의 로주들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잘 나가던 번들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가 출신 사무라이들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번을 반납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신노스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무리까지 해가면서 다타라기 번의 존속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신노스케는 루스이야쿠 조합 말고도, ‘감로의 모임에도 가입해서 유력자들과의 인맥형성도 도모한다. 누이동생이 만든 고구마 과자나 감 과자로 포인트를 얻기도 하는 신노스케. 비록 신입이기는 하지만, 발군의 실력과 판단력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인바누마 연못공사에서 모든 번을 탈출시킨다는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다. 위험하긴 하지만, 한 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이었다.

 

자신이 속한 야나기노마 조합에서 이미 이와사키와 도다는 이미 도우미 공사에서 빠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싫다고 뛰쳐 나간 오카케 외의 나머지 세 개 번을 구하기 위해 유력자의 방계라는 도기쿠가 요구한 8개의 사상 과자를 구해야 한다. 이건 마치 미션이 끝없이 이어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신입 루스이야쿠 마노 신노스케가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그만큼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 <미생>에서 이제 막 입사한 장그래가 회사의 쓸만한 인재로 성장해 나가는 장면이 연상됐다. 과연 신노스케의 주군 휴가 태수는 도기쿠 씨가 원하는 마지막 피스인 양갱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일국의 운명이 양갱이에 달려 있다.

 

한편, 이 작품을 통해 전후 일본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 된 정보를 독점한 유력 인사들이 요정에 모여 중요한 사안들을 쥐락펴락하는 요정 정치의 근원을 엿볼 수도 있었다. 못된 것은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운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그런 방식의 요정 정치가 횡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부분들이 많은 그런 재밌는 소설이었다. 에도 시대의 풍습, 에도 막부의 이중적 지배구조, 무리한 도우미 공사, 신입 루스이야쿠의 고군분투, 지금도 인기 있는 화과자에 대한 이야기 등등... 개인적으로 이런 화려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마무리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명랑만화적인 요소를 지닌 소설이다 보니, 마노 신노스케가 모든 미션에 실패하고 책임을 통절한 나머지 형님 센타로처럼 배를 가르고 죽는다는 건 무리였겠지. 왠지 후속작을 염두에 둔 결말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연초에 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에서 다시 백 년 전 쯤으로 돌아간 <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이미 읽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다시 하타케나카 메구미의 <샤바케>가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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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0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바케의 작가네요. 저 예전에 샤바케 진짜 킬킬거리면서 읽었는데요.
이 책은 또 샤바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듯하네요. 이 작가 책이라면 당연히 좋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레삭매냐님 덕분에 좋아하던 작가의 나온지도 몰랐던 책을 또 업어갑니다. ^^

레삭매냐 2022-01-10 13:54   좋아요 0 | URL
너무 재밌어서 주말 내내 읽
었네요.

지금은 <굴하지 말고 달려라>
읽고 있는데 또 재밌네요 :>
영화도 있다는데 구해서 보려
고 합니다.

<샤바케> 곧 도전합니다.

Forgettable. 2022-01-10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바케도 재미있고 음양사도 재미있어요. 이 책보다 조금 더 가볍습니다. 배경묘사가 좀 덜해서 그런 느낌이지만 내용은 좋아요.

레삭매냐 2022-01-10 14:18   좋아요 0 | URL
도바시 아키히로의 코미디
<굴하지 말고 달려라> 다
읽은 다음에 바로 <샤바케>
읽겠습니다.

연초부터 일본 작가들의 책
들을 잇달아 읽게 되네요.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