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옥쇄하라!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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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서 미즈키 시게루 작가의 <전원 옥쇄하라!>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픽 노블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대기지가 있었던 라바울에 파견되었다가 생환한 저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당시 미즈키 시게루 작가는 미군기의 공습으로 왼팔을 잃었다. 구글링으로 검색해 보니 한 팔이 없었다. 그렇다면 모든 작화는 한팔로만 그렸나 보다. 대단하지 않은가.

 

시작은 전세가 일본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던 1943년 말, 뉴브리튼 섬의 코코포라는 지역에서 출발한다. 그 무렵 징병된 미즈키 시게루는 라바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그대로 기록했다.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미군의 공격에 앞서 거의 죽음이 예견된 일본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위안소를 찾는다. 작가는 가감 없이 비극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거 출발부터 심상치가 않다.

 

제공권을 미군에게 빼앗긴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남양군도로 파견하는 수송선들을 잃고 있었다. 물량전에서 도저히 미군의 생산력을 따라 잡을 수 없었던 일본군의 보급은 열악했다. 오죽했으면 그래픽 노블에 등장하는 일본군이 죽기 전에 실컷 생고구마라도 먹고 죽었으면 하는 말이 나왔을까. 태평양 전쟁 당시 상당수의 일본군들이 보급 부족 때문에 기아로 전선에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리고 내무반에서 초년병들에 대한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선임병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후임병들을 가혹하게 구타했다. 이어 바이엔 지역에 파견된 대대장은 미군의 압도적인 공격 앞에 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휘하 병사들에게 무모한 반자이 돌격과 옥쇄를 강요한다. 그나마 지각 있는 장교들은 그런 개죽음에 가까운 반자이 돌격보다는 생존을 도모해서 게릴라전을 구사하는 게 라바울에 있는 동료 병사들을 위해서도 좋을 거라는 전략을 제시하지만, 오로지 죽음만 생각하고 있는 지휘부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일 뿐이다.

 

대대장은 센고쿠 시대에나 등장할 법한 고사를 인용해 가며 병사들에게 오로지 옥쇄만이 해결책이라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말만 하는 앵무새일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악어밥이 되어 하반신만 돌아오고, 계속해서 출몰하는 미군 비행기의 표적이 되어 죽어 나간다. 말라리아 발병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굶주림으로 병에 걸린 병사들은 병을 이겨낼 체력이 없었다. 도대체 전쟁을 책임진 대본영의 우두머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들은 현지 병사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었다. 센고쿠 시절의 무사도 타령이나 하면서 압도적 물량으로 일본군을 격파하는 미군에 반자이 돌격만을 강요할 따름이었다.

 

구미의 병사들과는 달리 압도적인 적의 화력 앞에 패배가 뻔한 상황에서도, 포로가 되는 것을 치욕이라며 무모한 반자이 돌격과 옥쇄를 병사들에게만 강요했다. 일본 왕의 패전 선언 당시, 1억 총옥쇄 타령을 하던 전쟁지도부에서 옥쇄를 한 장성들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 점만 보더라도 그들의 위선과 허위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평소 주장대로였다면, 모든 장성들은 종전과 동시에 책임을 지고 천국으로 갔어야 했을 것이다. 도조 히데키조차 자결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전원 옥쇄 주장을 하던 대대장이 죽자, 생존한 80여명의 병사들은 후방으로 후퇴해서 적에게 타격을 가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라바울에 있던 제8방면군 사령관이었던 이마무라 히토시를 비롯한 지휘부에서는 전원 옥쇄한 것으로 알려진 바이엔 지대의 잔존 병력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 키도 중위를 그들이 집결해 있는 세인즈조지곶으로 파견해서 처리할 것을 명령한다. 키도 중위는 여기서 죽음의 사자였다.

 

자신들의 구명을 위해 사령부를 찾았던 선임 군의관은 이미 자결했다. 키도 참모는 바이엔 지대의 두 소위들에게도 자결을 강요해서 결국 관철시켰다. 나머지 병사들에게도 후방의 라바울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락하게 지내던 10만 병력의 사기를 위해 옥쇄 돌격을 명령한다. 그리고 키도 자신은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가 결국 적탄에 죽는다. 종전 두 달을 앞둔 19456월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어려서 만난 종군기자 야마오카 소하치(그렇다 그는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자이기도 하다)가 쓴 5권짜리 <태평양전쟁>에서 그런 일본군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기괴한 방식으로 미화하고 찬미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래, 일본 육군의 지상전 전술을 변화가 1도 없었다. 케케묵은 무사도 타령을 하는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총탄과 포탄이 쏟아지는 사지로 내몰았다. 제대로 된 현지 지도 한 장 없이 남양군도에 도착한 일본군들은 그저 감으로 싸우다가 전장의 원혼이 되었다. 이런 엉터리 전술로 미군을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패전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군 현장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은 귀중한 자원이 아닌 그저 사석(捨石) 취급을 받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에 읽은 엔도 슈사쿠의 <사무라이>에서도 그런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적어도 그런 점에서, 그들이 말하는 버리는 돌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즈키 시게루의 <전원 옥쇄하라!>는 전언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닌,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극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어떤 전쟁도 비극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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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23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유명하죠. 해적판으로 돌았는데 안그래도 정발된다고 해서 반가웠어요. 오히려 예전 나이드신 일본 작가나 만화가들에겐 그나마 양심이 있는거 같아요. 도라에몽 작가분도 그렇고. 요즘 젊은 세대들은 왜곡된 교육을 받아서인지 ㅠㅠㅠ

레삭매냐 2021-08-23 11:51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아예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정발된다는 이야기
듣고는 밀덕으로 바로 주문해서
지난 주말에 읽었답니다.

너무 레알해서 놀랄 정도였습니다.

일본군이 정말 엉망진창이었구나...

아마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와 그렇
지 않은 세대와의 차이가 아닐까 싶
습니다. 교육에서도 계속해서 진실
을 호도와 왜곡하고 있으니까요.

일본 정부가 그런 게 어제 오늘 이
야기가 아니긴 하지만요.

coolcat329 2021-09-10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굉장히 땡기네요!
저 도서관에 가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9-10 13:20   좋아요 1 | URL
이 책이 만화책인지라
도서관에서 비치가 되는지
그것이 궁금하네요.

저도 그래서 희망도서로
신청하는 대신 그냥 사서
읽었습니다.

coolcat329 2021-09-10 13:23   좋아요 2 | URL
아 지금 검색해보니 없네요 ㅠㅜ 이 책 중학생이 읽을 수 있나요?

레삭매냐 2021-09-10 13:54   좋아요 2 | URL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중학생
이 소화하기에는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참혹한 전쟁에 대한 극사실주의
적 묘사가 좀 걸리네요.

coolcat329 2021-09-10 17:4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