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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뚜껑이 없어 - 요시타케 신스케, 웃음과 감동의 단편 스케치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컴인 / 2018년 1월
평점 :
내가 읽은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이 이게 세 번째인가. 어제 에밀 졸라의 <쟁탈전>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무려 5권의 책을 빌려 왔다. 얍삽하게도 나름 읽기 쉬워 보이는 얇다란 책들을 주로 빌렸다. 그리고 보니 희망도서 책도 안 빌려 왔네 그래. 그리고 냅다 세 권을 줄줄이 읽었다. 이제 올해 목표로 한 120권에 25권 정도 남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예전 같이 왕성한 독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독서의 길을 걸으련다.
역시나 삼천포로구나.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 중에 이번 책이 가장 파이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만난 <있으려나 서점>은 좋았었는데...
뭐랄까 이번에 <게다가 뚜껑이 없어>는 관통하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제목처럼 그냥 뚜겅이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그런 사유의 행진들이 줄지어 이어진다. 아무래도 편린적이다 보니... 좀 그랬던 것 같다. 좁은 공간 성애자라는 저자가 좁은 공간에서 넓은 곳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자니, 어려서 프라모델 조립식을 죽어라 만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물론 특별한 연관성은 없다 그냥 그랬다고.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그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사출 성형 그런 것이 조잡해서 조립식을 만들려면 참 쉽지가 않았다. 지금처럼 끌이나 그런 장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칼과 본드만으로 병사들의 팔다리를 붙이고 바지에 만날 본드를 흘려서 어머니에게 혼난 기억도 많다.
요시타케 저자가 엄청 소심한 사람이란 걸 알겠는데, 비오는 날 우산껍질을 벗길 적마다 사무라이가 칼집에서 칼을 뽑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하는 장면도 재밌다. 그런 그에게서 어떤 폭력성을 끄집어낸다면 좀 너무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중국집이 마감할 즈음에, 하루종일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간장통과 식초 그리고 라유통(?)들이 모여 뒤풀이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또 어떠한가. 요즘은 그놈의 배달앱 전성시대가 되면서 단지 플랫폼만 제공해 주면서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악당들에 대한 성토대회를 열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수수료가 과다하다는 느낌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에게 좋을 게 없는데 말이다.
구원하고 싶은 동시에, 구원 받고 싶어하는 양가적 감정을 가진 우리 인간에 대한 생각은 또 어떤가. 그 누구에게도 구속받고 싶어하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시타케 저자처럼 모든 결정은 아내에게 미루고 싶은 그런 사람도 존재하는 게 이 세상의 단편이 아니던가. 나처럼 일단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나는 내가 고른 책이 재미가 없다고 해도 꾸역꾸역 마지막까지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 여학생에게 카세트테이프를 빌렸다가 별 것 아닌 일에 막대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하긴 누군가에게는 어떤 행동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 싶다. 게다가 그 시절이 얼마나 또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이던가. 조금은 일본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드라마로 만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뭐 그런 내용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모든 게 즉석에서 처리되는 지금과는 다른 시절의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도 고부갈등이 있는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꼬맹이가 엄마에게 나중에 자기 색시를 괴롭히지 말라는 한 컷도 의미심장하다.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고 했던가.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지 어떻게 그 둘이 같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닌 건 아닌 것이지.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이들이 결혼이라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같이 산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이라는 걸 아이의 시선으로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이가 드니 점점 더 양보하고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친해지기 위해 몇 십 년이라는 정성이 필요하다니, 가족이 사치스럽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대학 시절 우리보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대학 친구가 술자리에서 가족이 웬쑤라는 말에 얼마나 충격을 먹었던가. 그런데 더 살아 보니, 꼭 우리 가족은 아니더라도 친척들 가운데 다양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가 저절로 되더라. 다들 그렇게들 사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있으려나 서점>에 비해서는 매운맛이 좀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에서 이런 상상력을 퍼 올릴 수 있다는 게 요시타케 상을 작가로 만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첨에 만난 매운맛이 너무 쎄서 그런지 이 책은 아무래도 좀 싱거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