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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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국내에 처음 소개된 <아름다움의 선>이 나온 지 3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앨런 홀링허스트 문학 세계의 시원을 알 수 있는 데뷔작 <수영장 도서관>이 나왔다.

 

<아름다움의 선>이 좀 세련되고 다듬어진 느낌이라면, 역시 <수영장 도서관>은 데뷔작답게 거칠고 직설적이라는 느낌이다. 홀링허스트 저자가 인도하는 런던에 사는 게이들의 삶은 정말 낯설게 다가온다. , 같은 저자가 번역을 맡아 주어 일관성 유지라는 점은 합격이다.

 

시대적 배경은 1983, 마거릿 대처 수상이 이끄는 보수당이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로 6월에 있었던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집권 여당인 보수당의 경제적 성과는 미비했다. 주인공은 25세의 매사에 자신만만한 남자 윌(리엄) 벡위스다. 딱히 직업은 없고, 부모 특히 할아버지 벡위스 경을 잘 만난 덕에 런던에 아파트에서 잘 먹고 잘산다. 홀링허스트 작가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학벌도 끝내준다. 풍부한 교육의 수혜자라고나 할까. 옥스퍼드 코퍼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한 윌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대신, 쾌락에 탐닉한다. 디테일이 너무 강력해서 놀랐다. , 그야말로 스트레이트 포워드하구만 그래.

 

자신보다 8살 어린 아서를 집에 들이고, 그가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스라이팅을 하기도 한다. 어째 그가 접하는 관계들이 나는 좀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다니는 코린시언 클럽은 쾌락주의자들의 사냥터이기도 하다. 특별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쾌락을 쫓는 젊은이를 위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살던 윌은 어느 날 공중 화장실에서 노인 한 분을 구조하게 되는데, 그가 소설의 지분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되는 찰스 낸트위치 경이다. 소설이 그리는 삶 가운데 우연은 필연으로 다시 등장하기 마련이다. 코리 클럽에서 윌은 찰스 경(83, 1900년생)과 조우하게 된다. 특유의 무심하면서도 예리한 판단력으로 윌을 관찰한 찰스 경은 무위도식하던 윌에게 자신의 회고록을 써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방탕에 가까운 자유로운 삶의 저해가 되는 요소들에 저항하기로 작정한 윌은 처음에는 찰스의 제안을 거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절친 제임스는 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 참고로 제임스와 찰스 경 모두 동성애자들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찰스 경과 엮이게 된 윌은 찰스 경이 써둔 방대한 지난 시절에 대한 기록들을 접하게 되면서 현재와 달리 게이들이 억압받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된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홀링허스트 저자가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디테일한 문학적 구사를 하는 이유가 무얼까 하고 말이다. 주인공 윌의 방탕한 라이프스타일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젊은이가 자기 나름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네들의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런 진 몰라도 저자의 적나라한 묘사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을 낯섦에서 오는 불편함이라고 해야 할까. 띄엄띄엄 건너뛰면서 반세기를 넘나드는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오롯하게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그들 세계의 이야기를 홀링허스트 작가는 독자에게 알리고 싶었던 걸까?

 

윌 벡위스는 우연히 알게 된 아서의 주소를 알게 되어 자신을 떠난 그의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 갔다가 스킨헤드족을 만나 무차별 폭행을 당한다. 아름다운 코뼈와 앞니 그리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다. 호모포비아라는 형태로 나타난 차별과 혐오였다. 그러면서도 윌은 찰스가 부탁한 회고록을 쓰기 위해, 그의 저널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60년도 전에 윌의 윈체스터 선배이기도 했던 찰스가 살아온 삶의 내력이 되살아난다. 문득 영국 특유의 사립학교 제도와 남성위주 클럽 시스템이 성적 소수자들의 발현과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애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낯선 로맨스의 전개와 노골적인 성애에 대한 묘사에 자꾸만 불편해진다.

 

윌이 당한 폭행에 더불어 이번에는 윌의 절친인 제임스마저 경찰에 체포된다. 오직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윌과 달리 제임스는 응급의로 타인에 대한 봉사만을 해온 사람이 아니던가. 잘나가는 윌의 자극을 받았는지, 자신만의 사랑을 찾겠다고 거리에 나섰다가 잠복근무 중인 경찰에게 체포되는 희비극을 겪게 된다.

 

찰스는 자신을 찾아온 윌에게 새로운 자료들을 건네주는데, 그 자료에는 찰스의 과거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어쩌면 찰스는 윌이 알게 된 그 순간을 위해, 이 모든 걸 셋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느린 속도로 전개되던 소설은 후반부로 가면서, 급발진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연소되어 버린다.

 

홀링허스트 작가가 <수영장 도서관>에서 추구하는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도가 나처럼 떨어진다면 아마 상당히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점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증되는 갈등과 긴장을 유지하는 작가의 솜씨는 대단했다. 윌의 시선과 찰스의 저널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는 내러티브 역시 일품이다. 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받던 시절을 거쳐 온 베테랑 게이 찰스와 게이 해방 시대에도 여전히 소수자로 핍박받는 존재로 스킨헤드 일당에게 구타당한 윌의 이미지는 기묘하게 공명한다.

 

나의 공감이나 이해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서사였지만, 대단한 작품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네 삶의 양태가 그러하듯, 그 또한 역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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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6-29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이 작가가 내용과는 별개로 문장이 굉장히 세밀하고 문학성이 있나보네요. <아름다움의 선>표지 때문에..안 읽었는데 또 부커상이니 땡기기도 하고 섬세한 묘사가 궁금도 하고~^^

레삭매냐 2021-06-29 13:11   좋아요 1 | URL
<아름다움의 선>보다 성적 묘사에 있어
한 술 더 뜨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컨텐츠도 충격적이었구요. 데뷔작답게
세련됨보다는 거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글발은 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