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열도의 게임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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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빌린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5>가 신축년 첫날에 내가 읽은 책이었다. 부제는 <열도의 게임>, 제목만 딱 들어도 어느 나라 이야기인 줄 바로 알겠지? 그렇다 바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썰이다.

 

5권의 전반부는 중국 강남 지방에서 열전으로 진행되던 태평천국의 난의 엔딩에 대한 이야기다. 천경(난징)에 버티고 있던 사이비 종교 지도자 천왕 홍수전에 이어 실질적인 2인자로 뛰어난 전략가였던 이수성은 당시 중국의 관문이었던 상하이 정복에 연연한다.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던 열강의 용병 형식으로 구성된 상승군(Ever Victory Army:ETA 바스크 독립운동 단체냐는 짤이 등장한다! 대단하다)과 증국번의 제자이자 중앙 관료 출신의 이홍장이 지휘하는 회군이 장발적군의 전략 거점인 쑤저우를 포위하자, 성내의 태평군 배신자들이 지휘관 담소광을 죽이고 관군에 투항한다. 그렇다고 이홍장의 회군이 반란군을 용서했을 리는 만무했다. 이홍장은 상승군 지휘관 고든의 안전 보장 약속을 무시하고 태평군 1만 여명을 모조리 학살했다.

 

태평군의 반란은 쑤저우 함락을 계기로 해서 망조의 징후를 보였다. 천경으로 복귀한 이수성은 증국전이 지휘하는 상군이 태평군에게 박살난 강남대영을 회복하고, 순차적으로 천경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186461일 천왕 홍수전이 사망하고, 719일 난징이 상군의 공격으로 함락되면서 십 수 년을 끌어온 태평천국의 반란은 종결된다.

 

천경이 상군에게 함락되던 당시, 탈출했다가 포로로 잡힌 이수성은 증국번에게 마지막 공작에 나선다. 한족 출신 관료인 증국번이 멸만흥한의 기치를 앞세워 앞선 왕조였던 명나라의 선례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당시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증국번이 혹할 만한 제안이었지만, 증국번은 냉정하게 자신의 처리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조정의 지배력은 강고했다. 중국 침탈에 열을 올리던 열강 역시 빈사의 사자 형태의 청나라 조정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증국번은 이수성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대신 그는 반란의 실질적 지휘자 이수성이 자술한 기록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자신에게 유리한 기록들을 첨삭하는 방식으로 태평천국의 난을 종결지은 것은 불문가지다.

 

다음 무대는 막말의 일본이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도래한 것은 1853, 에도 막부가 들어선 지 250년이 되던 해였다. 어느 정권이나 말기가 되면 내부모순의 폭발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막부 정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본의 경우에는 내적 요인에 앞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열강에 의해 강제 개항이 되면서 근대화에 내몰렸다고나 할까. 제국주의 팽창 시대, 개항에 이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다음 수순은 열강에 의한 속국 내지는 식민화였다. 물론 후자가 더 좋지 않은 경우겠지만.

 

한편, 막부의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는 미일 수호통상조약(1858)의 비준을 위해 방미사절단을 미군함에 태워 파견한다. 이 중에는 다이로가 신임하는 오구리 다다마사가 타고 있었는데, 핵심 문제는 환전 비율 문제였다고 한다. 그 외에 일본 호위함으로 간린마루도 파견했었는데 그 배에는 해군 전습소 출신의 후쿠자와 유키치도 탑승했다고 전한다. 미국에서 선진 문물을 보고 배운 방미사절단이 귀국할 당시, 일본 정가는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그런 상태였다. 18603,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가 존왕양이를 기치로 든 무사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중앙 막부의 권세가 개항을 계기로 쇠퇴하면서, 각지의 웅번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세키가하라 전투 이래, 에도에 적대적이었던 서남부의 번들이 군제개혁과 산업 진흥을 바탕으로 막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중에서도 모리 가의 조슈 번과 시마즈 가의 사쓰마가 존왕양이 이데올로기의 선봉이었다. 그 외에도 도사 번의 도사 근왕당 그리고 미토 번의 탈번 낭인들과 텐구당도 존재했다.

 

막부의 수장인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고작 15세의 병약한 쇼군이었다. 조슈나 사쓰마처럼 자신들의 실력을 키운 도막파 번들에 대항해서 등장한, 고메이 국왕을 얼굴마담으로 하고, 여전한 권력은 쇼군이 행사한다는 공무합체론은 막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조슈의 합리적 보수주의자인 나가이 우타가 제시한 항해원략책도 막부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었다. 개국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개항파들의 이상을 양이마저 아우르는 존왕의 대계로 삼자는 원대한 구상(물론 말로만!)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다음에 등장한 캐릭터는 바로 사쓰마의 권력자인 시마즈 히사미쓰다. 오랜 기간 권토중래하던 히사미쓰는 이복형 나리아키라가 죽은 뒤, 섭정의 자격으로 권력을 쥐게 된다. 사망한 형의 유지를 이어 받아, 부국강병책을 구사하면서 존왕양이파인 정충조 지사들을 중용했다. 히사미쓰는 유배 중이던 유신삼걸 중의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도 해배시켰다. 지역에서 충분히 실력을 키웠다고 판단한 히사미쓰는 번사들을 데리고 교토로 상경해서 조슈 번이 좌지우지하고 있던 중앙 정치에 도전장을 내민다. 역시 난세에는 무력이 최고라는 걸, 사쓰마 해적들이 증명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 다음 수순으로는 쇼군 상경, 조슈 번내의 이념 투쟁(좌막 개항, 도막 양이) 등등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1863년 하반기, 사쓰마 번사들이 철수하고 좌막파 아이즈 번이 교토에 도착하지 않은 동안 조슈 번에서 풀어 놓은 존왕양이 타이틀을 내건 지사들이 테러를 자행하면서 교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에도 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렇게 경계하던 통제받지 않은 사무라이들이 날뛰는 그런 시절이 온 것이다.

 

고메이 국왕과 에도 막부가 꿈꾸던 공무합체는 동상이몽이었다. 전자는 국왕이 다스리는 시스템을 원했고, 후자는 지금 이대로 막부 시절을 외치는 보수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 개항을 요구하는 열강의 압력에 막부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슈와 사쓰마의 양이지사들은 극렬한 저항에 나선다. 특히 조슈 번은 다른 번들은 몰라도 자신들만이라도 양이전쟁을 치르겠다는 기백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에 간몬 해협 양측에 포대를 설치하고, 서양 함선들의 자유로운 항행을 봉쇄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원명원 방화라는 실력을 보여 주었던 열강은 조슈 번에 화력시범으로 응징에 나섰다. 이웃 사쓰마도 나마무기 사건을 책임을 묻기 위해 영국에허 함대를 파견해서 번의 중심인 가고시마를 참교육시켰다. 영국 함대의 가고시마 포격으로 시내의 중요한 시설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교토에서는 사쓰마, 아이즈 그리고 왕실이 중심이 되어 조슈 번을 몰아낸 8·18 정변이 기획되고, 그에 맞선 조슈 번의 역습인 <금문의 변> 등이 잇달아 발생한다. 그야말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각 집단 간의 합종연횡이 무시로 이루어지는 격변의 시대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교토의 정쟁에 참가한 조슈, 사쓰마, 도사, 아이즈를 비롯한 막부는 모두 존왕양이라는 그럴싸한 대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는 천하의 대권을 잡기 위한 명분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앞줄에 내세우고 싶어하던 고메이 국왕은 단지 바지사장일 뿐이었다. 국왕을 앞에 내세운다는 게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도움이 되는지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슈 번사들은 무리를 해서 교토로 진격해서 국왕을 포로로 잡아 양이전쟁에 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막부에서는 병약한 이에모치를 대신해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가 서남의 말썽꾸러기 조슈를 정벌하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꾸미고 있었다로 5권은 끝난다.

 

일본 막부말의 시대상은 작년에 만났던 센고쿠 시대의 그것만큼이나 격렬한 정치투쟁의 무대였다. 어느 누구도 상대를 압도할 만한 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열되는 외세의 침략은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밑으로부터는 끓어오르는 250만 하급 사무라이와 고케닌의 불만을 잠재워야 하는 가운데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연합과 배신이 이어지는 배신의 드라마 같은 역사에 굽시니스트 선생은 방점을 찍는다. 어쩌면 올해는 그 시대를 다룬 책들을 만나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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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권 신미양요 까지 나왔네요. 일본사 만만치 않게 복잡한데 저도 만화로 습득을 ㅋㅋㅋ

레삭매냐 2021-01-02 17:50   좋아요 1 | URL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을 넘나 들며
종횡무진 구사하는 19세기 스토리가
무지 헷갈리네요.

여긴 태평천국인가 아니면 막말 조슈
인가 그것도 아니면 삼정의 문란에
시달리는 조선 땅인가. 쿵야~!

일단 재미 면에서는 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