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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뷰티 1
제이디 스미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인간으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성이 아닐까. 2005년에 발표된 제이디 스미스의 세 번째 소설 <온 뷰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신세대 작가답게 제이디 스미스는 뉴잉글랜드 출신으로 아버지(하워드 벨시 교수)의 고향 런던에 머물던 아들 제롬 벨시가 보낸 이메일로 출발한다. 거주지 문제로 곤란을 겪던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 같은 집안의 가장 몬티 킵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집의 아름다운 딸인 빅토리아, 비와 사랑에 빠진다. 왠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범이 떠오르지 않는가.
영국의 별 볼 일 없는 집안 출신의 하워드 벨시(백인)는 뉴욕에서 30년 전에 플로리다 출신의 아내 키키 시몬즈(흑인)을 만나면서 운이 트인다. 하워드는 처갓집 덕을 톡톡히 본 사내로 장모로부터 호시탐탐 노리던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까지 차지하고 인근 웰링턴 대학의 종신직 교수자리까지 획득하면서 빛나는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이다. 부수적으로 한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110KG를 넘는 과체중의 아내 몰래 가족의 친구이자 동료 교수인 클레어 맬컴과 하워드는 바람을 피웠다.
한편, 제롬이 저지른 원수의 딸 빅토리아의 불장난은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제 딴에는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런던으로 날아갔던 벨시 교수님은 봉변에 문전박대를 당한다. 지금까지 두 권의 책(<런던 NW>까지 포함한다면 세 권)을 통해 만난 제이디 스미스는 가족이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에 천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벨시 집안과 킵스 집안이라는 서로 상이하고, 적대적인 특별한 두 가족의 비교를 통해 시대상을 구현해 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하워드, 키키, 제롬, 조라 그리고 레비로 구성된 벨시 가족은 자유분방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가족의 전형이다. 아버지는 웰링턴 대학에서 학생들로 가득한 강의를 수행하는 인기 교수다. 비록 렘브란트 연구에서 최근에 숙명의 라이벌 몬티 킵스에게 밀리고 있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속칭 먹물이다. 키키 또한 간호사로 일하면서 세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젊어서는 대단히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제롬은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대학에 다니는 수재 청년이다. 조라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웰링턴 대학에 다니는 재기발랄한 대학생이다. 주말마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주급 35달러를 벌기 위해 버진 메가 스토어에서 CD를 파는 알바를 뛰는 레비도 소설을 다채롭게 하는 캐릭터 중의 하나다. 하워드의 부정으로 벨시 패밀리에 파국의 전조가 보이지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아 보였다.
서사의 중심에 떠들썩한 벨시 가족을 배치한 제이디 스미스는 대척점에 조용한 킵스 가문을 등장시킨다. 영국에 있던 킵스 가족은 몬티 경이 미국 웰링턴 대학으로 부임하면서 한판 대결 구도가 형성된다. 동료가 된 하워드 벨시 교수에 대한 킵스의 비판은 매섭다. 아카데믹한 차원에서 본다면 킵스 교수의 승리는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보수주의자인 킵스는 마이너리티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며 반대한다. 자신의 여동생 빅토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하워드를 상대로 실력행사에 나섰던 매력적인 청년 마이클은 런던의 증권가에서 일하는 소프트 엔지니어란다. 짜증날 정도로 매력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비는 조라에 버금가는 재능의 소유자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지는 킵스 부인.
영원할 것만 같았던 벨시 집안의 행복은 하워드와 키키의 결혼 30주년 파티를 정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발단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하워드의 외도 때문이었다. 클레어와 3주 간의 불장난을 없던 일로 하고 다시 가정으로 복귀하고 싶어하는 하워드를 키키는 온 몸으로 거부한다. 제롬으로 촉발된 스토리는 조라와 레비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그런 느낌이다.
외도 사건이 터지기 전에 냉랭한 집안의 분위기를 개선해 보고자 제롬이 주선해서 보스턴 커먼에서 열리는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를 들으러 간 벨시 가족은 거리의 시인 혹은 스포큰 워드의 달인 칼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랩이 현대 미국이 발견한 새로운 형태의 시라고 믿는 레비와 칼은 연락처를 교환한다. 한편, 조라는 클레어 맬컴 교수의 소수 정예 강의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클레어가 개인적인 이유를 자신을 내친다고 생각하고 당돌하게 학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가리 위한 카무플라주일 뿐 실상은 자신이 쫓는 욕망의 발현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워드는 아내 키키에게 동료 어스킨 교수처럼 젊은 학생들이 아닌 오십대의 클레어와 바람을 피우지 않았냐고 항의해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그가 부부의 오랜 친구와 바람을 피운 건 사실이 아니었던가. 늙다리와 관계한 게 변명거리가 되냐며 키키에게 가혹한 되치기를 당한다. ‘허영의 시장’에 나선 시인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젊은 날의 명성을 떨친 쾌락주의를 다룬 시에서, 자연주의 시인으로 변신한 지금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항상 젊은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지만, 이미 그 시절을 보내 버린 중년 교수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다만, 버스스탑에서 스포큰 워드 대결을 보며 학문적 분석을 시도하는 노력을 가상해 보였다.
어느 순간 제롬은 소설의 중심부에서 도태되어 버렸다? 아니 도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지? 대신 조라와 레비가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 당돌한 아가씨 조라는 자신의 주변에서 조우하게 되는 거리의 시인이자 능력자 칼을 애써 외면한다. 먹물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직 실력도 갖추지 않았으면서 타인을 재단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을 비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칼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아, 그리고 보니 레비의 초대로 벨시 부부 30주년 파티에 초대되었던 칼은 하워드에게 불청객 취급을 받았었지. 이런 식으로 제이디 스미스 작가는 인화성 강한 갈등 요소들을 곳곳에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주급 35달러를 벌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비용으로 쓰고 싶은 계획을 세운 레비는 케임브리지의 버진 메가 스토어에서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창업주가 이룬 엄청난 성취들을 동경한다. 하지만 레비가 만난 돈벌이 현장의 현실은 그가 품은 이상과 전혀 달랐다. 미국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도 나와서 일하라는 ‘명령’에 십대소년은 반발한다. 그리고 동료들을 조직해서 쿠데타를 시도한다. 레비 같은 소년들이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매니저의 협박에 가까운 말에 레비는 폭발한다. 이것은 어쩌면 레비의 계급적 각성일 지도 모르겠다.
전작 <하얀 이빨>의 화려했던 디지키언 스타일 대신 제이디 스미스는 집중과 선택을 통해 먹물 집안의 허위와 위선을 까발리는 작업을 선보인다. 무대를 자신이 나고 자란 영국 대신 미국으로 했다는 점도 신선했다. 이방인으로 관찰한 미국 사회의 단면을 해부한 적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전반전을 지나 후반전으로 돌입한다.